책 읽기.

해석의 재미를 가지는 시간

by 보통인

글쓰기가 가장 재미있어질 때는 옛날에 즐겨보던 책들을 되짚어 보며 끄적일 때인 것 같다. 오랜만에 쓸 주제를 선정하다 몇 편의 취미 시리즈를 나열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결국에는 나의 가장 오래되고 애착 가는 취미인 독서에 대해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책과 함께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잉태하는 순간부터 태교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많은 책들을 구비하기 시작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느 정도 아이가 몸도 가눌 줄 알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책 읽기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보면 그런 것 같아 나만의 일반론일 수도!).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가장 오래된 책의 기억은 몇 개씩 서로 어때 동무를 하며 서 있는 책장들과 자리가 모자라 몇 겹씩 앞이든 뒤든, 심지어 책장의 꼭대기층이든, 알록달록하게 부웅켜 안고 있는 책들의 나열이었다. 그 주변에는 항상 큰 책상이 하나 있었고, 독서대와 함께 아버지께서 읽고 계시는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한지에 먹이 스며들듯 그리 자연스럽고도 순식간에 나는 곧 애서가가 되었다 (활자중독이 된 건 덤).


어쩌면 내가 책과 독서를 운운하는 건 조금 우스울 수 있다: 우리 집에는 나보다 더한 다독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책을 읽어오셨고, 어머니께서는 은퇴하시고 도서관들을 드나들며 책을 골라 읽으시더니 이제는 나름의 독서모임도 생기고 거진 연간 한 100권은 최소 읽지 않으실까 싶다 (최근에 혼불, 태백산맥, 토지를 다 읽으신 것만으로도 몇 권인지...). 나의 형제들도 독서를 통해 다듬어진 지식들을 보유한 인물들로 워낙 나보다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다 보니 어쩌면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얘기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일 년에 몇 권 안 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는 편이기도 하고, 그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매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들을 읽어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건 독서노트나 독서 리스트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종종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다면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곤 했는데 너무 오래전 감명 깊게 읽었던 내용들이라 어디서 발췌를 해왔는지 읽어버려 후회하곤 한다. 다시 만들어야지 싶다가도 결국에는 포기해버리고 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왜냐하면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더라도 내 기억에 오래 새겨질 작품들이 몇 개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리스트는 분명 해가 가면 달라질 수 있고, 내가 놓친 작품들도 있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기록해두고 싶다; 이 작품들이 나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들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몇 권의 책들을 나열해놓고자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만약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장르 불문하고) 나는 꼭 알랭 드 보통의 Essays in Love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를 가장 먼저 언급한다. 사실 이 책은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서 읽어보고 독후감을 써오도록 주문받아 접하게 되었는 데 개인적으로는 가히 놀라웠다. 소설과도 같은 내레이션으로 모든 경험이 그림처럼 그려지면서 각각의 경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적어놓은 말 그대로의 에세이였지만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은 구성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500일의 썸머' 같은 영화를 책으로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랑에 대한 너무나도 선명한 만남과 헤어짐을 그려주고 그 과정에서 이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본문 중) Perhaps it is true that we do not really exist until there is someone there to see us existing, we cannot properly speak until there is someone there who can understand what we are saying, in essence, we are not wholly alive until we are loved." 어린 마음에 알고 있던 사랑은 풋풋한 그 감정이었다면 이 책이야말로 나름 성인으로써 사랑에 대해 한걸음 다가가는 현실적인 조언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


책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각자 책의 취향이 꽤 뚜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독서모임 같은 곳을 나가 책을 '강요'당하지 않는 이상, 나의 독서 폭이 넓어지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나는 독서모임을 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꽤나 많은 애독가들이 있다 보니 종종 책을 추천받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였다. 나였다면 고르지 않았을 책이었지만 누군가가 추천해줘서 고맙게 읽었던 책: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다. 역사란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진 한 국민으로서 우리 국가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지라는 막역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 두리뭉실한 '그림'을 한 순간에 확실한 '사진'으로 바꾸어준 작품이다. 결국 우리가 역사를 알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곧 온고지신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알고 다양한 인물들과 상황을 기록으로 접근하고 알아감으로써 현재에 이른 상황을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중)... '삶이 뭐 다 그렇지'라는 말 대신 '삶은 이런 거지'라는 말로 바꿔봤으면 합니다. 그런 귀중한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이전보다 더욱 충만하게 채워질 테니까요." 역사를 아는 게 개인으로써도 얼마나 하루가 달라지는 일인지를 작가가 몸소 보여준 것 같았다. 책을 읽다 보면 파생되어 생각나는 다음 작품들이 생각나는데 오랜만에 이 책을 손에 쥐어보니, 조만간 조선왕조실록을 붙잡고 역사여행을 시작해야지 싶다.


독서 취향을 묻는다면 나는 주로 한글로는 산문집/에세이를, 영어로는 논픽션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소설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 한글로는 주로 국내 현대 소설이나 해외 (일본/프랑스) 번역 소설을 즐겨 읽으며 영어로는 주로 클래식으로 간주되는 명작들을 읽는 편이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겁에 질려 읽었던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오늘 내가 언급하고 싶은 작품들이 몇 개 있다면 그것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Lee Minjin의 Pachinko, 그리고 Somerset Maugham의 Moon and Six Pence라는 작품들이다. 에밀 아자르의 이 작품은 로맹 가리가 다른 필명으로 발표해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받아버린 독특한 이력도 있지만 마지막 엔딩의 그 충격적인 모습은 내 머릿속에 아직까지도 그려져 잊히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없었던 그 모습을 삼 주간의 기묘한 동거로 마무리 지어버린 그 모습이 어쩌면 진짜 우리 모두들 어둠 속에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이민진의 소설은 꽤나 최근에 나온 작품이지만 이렇게 쉽게 읽히는 책은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장면이 순간순간 눈앞을 지나가며 그 순간 모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이 흘러넘쳐 심적으로는 사실 제일 읽기 힘들었던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정독하고 싶지만 조금은 마음이 무던해져야만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아들의 마음을 너무 뼈저리게 와닿아 그랬던 게 아닐까... Somerset Maugham의 작품은 조금 색다르게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데, 사실 이 책과의 첫 만남은 15살 때로 첫 몇 페이지 읽고 난해함으로 결국 덮어버렸었다. 20살 때는 나름 열댓 페이지를 넘겼으나 꽂히지 않아 다시 몇 년 책장에 묵혔었고, 25살 정도가 되어 책이 삭은 냄새가 솔솔 풍길 때에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꽂혀 술술 읽어버린 작품이었다. 이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책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그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너무 빨리 만나버리면 아직 내가 성숙치 못해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때도 있으며 때로는 너무 완벽한 순간에 맞이하여 바로 인생 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내 책장에 쌓여가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너'를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너'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오길 고대하고 있다고.


어떠한 장르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 저 안드로메다로!). 서두를 읽으며 의도가 뭔지는 알겠다며 시작을 하다가도 본론으로 넘어가다 보면 공감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다 결국에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하게 된다. 그 해석이 나만의 독특한 시점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의 은밀한 재미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면 '오! 아직 감이 살아있네'라며 안도하기도 한다. 그만큼 난해한 책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아하는 데 최근에 읽었던 작품으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하며 적어 내려갔던 보고서는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는데, 그 어떠한 광적이고 괴물 같은 악행이어도 그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었다. 모두들 나름의 일관된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악의 모습을 결국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이며 우리 모두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악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며, 내 행동과 말이 결국에는 악이 될 수 있다는 무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 것이다. 언젠가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진우 전 석좌교수가 이 책을 다루면서 언급한 단어는 "To Stop. On Think."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자 - 나조차도 어느 순간 악이 될 수 있으니.


이렇게 즐겨 읽었던 책들을 되돌아보면 꽤나 잡다하게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읽어야 할 쌓아놓은 책들도 꽤나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나의 기대 심리를 자극한다. 세상은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 나름대로 나의 관심이 가야 할 작품들도 수두룩하다고 느껴진다. 은퇴 준비 차원에서 츤도쿠 (tsundoku: people that just collect books)와 같이 읽고 싶은 책들을 아직까지는 쌓아두고만 있었는데 아껴두지는 말고 조금씩 읽어야겠다. 다양한 관점의 접근을 통해 나의 세계관은 커질 수 있고 그만큼 나는 해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음미해야겠다. 그렇게 나의 세계가 커지고 당신의 세계 또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책에는 힘이 있다.


손에 잡히는 종이책을 옆에 두고.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하여.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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