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머리와 손은 치열하고. 마음은 고요한

by 보통인

무엇에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 서촌 한옥집에 살 무렵, 홀린 듯이 걸어 들어갔던 공방에 학생 자리 한 켠 잡고 작업한 지 어느덧 6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길다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짧다면 아직까지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시간이긴 하지만 도자기를 취미로 자리 잡고 꾸준히 해온 것에 있어서는 도자기를 단순 작업으로 취급하지 않고 어쩌면 그 시간 속에 은밀히 즐길 수 있는 명상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도자기 작업이란 참 묘한 작업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와도 사뭇 비슷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또는 빠르게. 그렇네 내가 정성을 들이는 거에 따라 작품의 수준은 천차만별이 된다. 그렇게 훅 나의 일상으로 들어와 자리 잡은 도자기에 대해 오늘은 몇 자 끄적여볼까 한다.

KakaoTalk_20220423_161245514.jpg 단체 전시회 작품 - 그릇 세트


도자기 수업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면 참고할 수 있도록 나의 과정을 지극히 비전문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할까 한다: 어느 공방과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진행방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 인연이 여전히도 잘 유지되고 있다. 첫 몇 개월은 손작업으로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어린이 찰흙놀이와 굉장히 비슷하다: 작은 잔, 큰 잔, 접시, 그릇 등등을 만들어보고 최종적으로는 주전자 세트를 만들기까지 하면 어느 정도 기본 흙을 '다루는' 감각이 손에 익는다. 생각보다 흙이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과정이었다: 늘려보기도 하고 줄여보기도 하고 때때론 구멍이 나가거나 뜯겨나가기도 하는 것 보면 의외로 그릇을 하나 굽는다는 게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손작업의 개인적인 장점으로는 만드는 작품들의 형태에 손맛을 첨부할 수 있다는 것! 막상 굽고 나면 그 형태가 제법 멋있고 생각보다 더 잘 나오는 경우도 많아 가끔씩 물레 작업을 하다가도 돌아갈 때도 종종 있다.


흙으로 처음 빚어놓고, 말리는 과정을 겪은 후, 다시 다듬거나 깎는 작업을 거친다.

완성된 모습이 나오면 가마로 초벌 작업을 하고 그 위에 원하는 유약을 바르거나 씌우게 된다.

재벌 작업을 하면 나의 작품 완성! 가끔씩 의도치 않은 색상으로 나오는 것은 덤.


어느 정도 손작업이 손에 익으면 물레 작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요즘은 물레가 워낙 소형, 그리고 자동식으로 잘 나와서 발판으로 속도조절을 하고 스위치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나중에 수동 물레로 작업해보고 싶은데 엄청 힘들다는 후기를 들어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손작업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여러 종류의 다기를 만들면 어느 정도 물레 위에서 흙을 다루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처음 흙으로 형태를 만들 때 물레 방향은 오른쪽으로. 흙을 원에 붙일 때에는 물 없이 가운데로 (형태는 몽당연필 모양으로 다듬기), 위-아래로 흙을 끌어올렸다 내리면서 중심 맞추기. 맞춰지면 흙 양을 잘 잡아서 원하는 다기 만들기. 만들고 아래를 잘 정리하여 흙을 넉넉히 두고 자르고 떼어내기 (큰 작품이면 원판 붙이기. 안 그러면 떼어낼 때 망한다). 깎는 작업을 할 때는 물레 방향을 왼쪽으로. 중심을 잘 맞춰 물레 원에 잘 붙이고 깎기를 시작 (사각사각). 어느 정도 두께가 잡히는지 바닥이나 옆면을 두들기면서 소리와 울림으로 판단. 원하는 형태를 계속 상상해가면서 깎기. 그리고 완성. 나열하고 하다 보면 끝이 없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바라보고 고려해야 하는 몇 가지 단계가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던져보자면 외국에서는 첫 흙 작업 시, 물레 방향은 우리와는 반대로 왼쪽으로 돌린다는 것!

KakaoTalk_20220423_161220713.jpg 의도치 않든. 의도했든.

유약과 가마 작업은 가장 흥미로운 단계의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흙을 사용하고, 어떤 유약을 입히고, 어떤 가마 (심지어 어느 위치!)를 선정하느냐에 따라 나의 작품들이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단계를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기대 없이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심플하게 얘기하자면 자포자기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기대감이 없으면 실망도 없고, 잘 나오면 의외로 기분이 더 좋은 것 같아 그렇게 나 자신과 고도의 심리전을 치른다. 그렇게 나온 작품들이 어느덧 6년 치 양이 쌓여 1/3은 부모님 댁에, 1/3은 내 집 부엌장에, 1/3은 선물 주거나 버리거나 팔거나 했다. 계속 원 없이 만들고 싶은데 쌓여가는 작업의 결과물들을 어찌해야 하나; 소소하게 판매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나름 달항아리 예쁘게 만들어 책장에 놓고 구경하면 그만한 재미가 없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치열한 삶의 현장 느낌처럼 생각할 것도 많고 따라야 할 것도 많다고 느껴지면서도 지금은 습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도자기도 나름의 취미라고는 했지만 제2의 직업 느낌처럼 매주 1회 (많으면 2회) 다니면서 의무감으로 대하는 것도 분명 있다.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고 슬프지만 그 마음을 숨길 때도 있고. 이 처절한, 사춘기와도 같은 감정 기복을 겪으면서도 왜 계속 하나 생각해보면 태풍의 눈처럼, 그 치열한 순간 속에 찾아오는 고요함 때문이다. 온전히 한 행동에만 몰두하며 빠져드는 그 순간. 이 순간에 중독이 되어버려 손쉽게 도자기 작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짬밥이 생긴지라 간혹 선생님께서 볼일이 있으시다면 공방 한 켠 자리를 내어주시고 알아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런 날들은 나만의 은밀한 시간이 된다: 기분에 따라 음악을 틀고 흥얼거리며 작업에 집중하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은 나의 것이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Runner's High라는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찰나이지만 완벽하게 평온한 도취. 도자기 버전을 얘기한다면 Potter's High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이 순간을 겪어본 것이다.

KakaoTalk_20220423_162147344.jpg 내 밥상 그릇은 내가.

언젠간 해봐야지 다짐했던 도자기 작업을 20대에 시작하고 결국에는 중독되어 30대가 되어도 이어지는 요즘. 이 정도 기한 동안 학생으로서 작업을 했다면 슬슬 준비를 해서 직접 공방을 하나 차려 뻗어나갔음 하는 기대심리가 주변에서도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이 소소한 취미의 감성을 놓기가 쉽지 않다. 오늘은 계속 이 순간을 몰두라는 핑계로, 그리고 학생 신분의 즐거움이 있다는 이유로, 몇 년간은 더 여유 부릴까 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의 반려 취미가 되길 바라며 난 오늘도 손에 흙을 묻히고 물레 앞에 앉아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세상.

한 순간의 몰입을 통한 명상 시간.

그 복잡하고도 단순한 도자기 작업.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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