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마케터 안병민의 [마케팅리스타트] 핵심 체크 02
*[방구석 5분혁신-안병민TV] 저자가 직접 하는 <마케팅 리스타트> 대해부
1985년 봄, 코카콜라에서 내놓은 야심작 '뉴 코크'.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펩시의 공격에 맞서 노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100년 가까이 고수하던 전통의 맛을 버리고 새롭게 출시한 역작. 무려 2년간 400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20만 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맛 테스트를 진행해 개발한 신제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 사람들은 예전의 맛을 돌려달라 아우성이었고 회사는 부랴부랴 '코카콜라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예전 콜라를 다시 내놓아야만 했죠. 소비자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 한, 단순히 입맛만 반영했던 마케팅 리서치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입니다.
관련 기사 :
Old Coke is Back 1985, 7, 11, 워싱턴포스트
시장조사는 말 그대로 시장에 대한 조사입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상품성이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한 조사도 있고, 이미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콘셉트 테스트를 위한 조사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 기회 창출이나 고객 가치 발굴을 위한 조사도 있죠. 기업의 마케터들은 이런 조사를 통해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시장조사가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 조사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여기죠. 그러니 뭔가 결정 내리기 애매하거나 답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그거, 소비자 조사 한번 해보지" 하며 마구 휘두릅니다. 그러나 이런 리서치를 통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의도를 가진 질문'과 '왜곡된 해석'입니다.
"누가 대통령으로 적합하다 생각하시나요?",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으시겠습니까?"와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습니까?"에 대한 답은 모두 다릅니다. 미세한 어감과 의미의 차이가 결과에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죠. 지난 대선 때 안철수, 문재인 단일화를 위한 설문 협의 과정에서 '적합도'냐 '지지도'냐 아니면 '가상 대결 결과'냐로 양측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질문이라 하더라도 해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위적 왜곡도 있죠. '데이터 쿠킹'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아전인수' 격 해석인데요, 딱히 거짓이라 얘기하긴 애매하지만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해석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설문 과정과 해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런 데이터의 오염은 의도적인 때도 있지만 사실 리서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소비자 조사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고객 스스로에서 비롯됩니다. 소비자 자신도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죠. 초콜릿은 단맛이 좋아 사 먹는 것이고,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볼까요? 단맛이 좋아서라면 왜 사탕이 아니고 초콜릿일까요? 아니, 초콜릿 중에서도 왜 하필 A 브랜드일까요? 취하기 위해서라면 왜 맥주나 양주가 아니고 소주여야 하며, 다른 소주는 왜 안 되고 B 브랜드여야만 하는 걸까요? A 브랜드가 맛이 더 좋아서, B 브랜드가 입맛에 맞아서라는 대답은 과연 사실일까요? 몇 번을 양보하더라도 100% 진실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눈만 가리면 각 브랜드의 맛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소비자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비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어떤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죠.
또 하나, 1980년대 후반에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고 가정해보죠.
"손바닥만 한 컴퓨터인데 늘 들고 다니면서 전화 통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구매하시겠어요?"
지금이야 온 세상이 열광하고 있는 스마트폰이지만 그 당시에 물었더라면 어떤 대답이 나왔을지 추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 질문을 접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상의 나래를 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평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케팅 리서치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당시로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기능들이라 생각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대답이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신뢰도를 확보하긴 당연히 힘들죠. 제품의 구매 의향을 물어보는 질문에도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구매하겠다' 대답합니다. 지금 당장 내 돈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 호기심 차원의 대답일 확률이 높죠.
그러니 "고객에게 물어보지 말라"라는 도발적인 표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마케팅 리서치는 무의미하다"고 역설했던 스티브 잡스는 실제로 고객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고객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직관을 통해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죠. 고객의 뒤만 좇아서는 고객을 앞서가는 혁신을 선보일 수 없습니다. 트렌드를 따라갈 게 아니라 트렌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젠 고객에게 묻지 마세요. 고객의 삶에 가만히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봅시다.
묻지 말고 관찰하는 것, 아마 그 편이 답을 찾는 방법으론 훨씬 더 나은 듯싶군요. 리서치는 정답을 찾아주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정답을 찾는 데 있어 단초를 제공해주는 보조 도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위 글은 <마케팅 리스타트>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보통마케터 안병민의 마케팅 리스타트
저자 안병민
출판 책비
[출처]1985년 출시한 '뉴 코크'를 아세요? _ 마케팅 리스타트 02 | 작성자책 읽어주는 여자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