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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안이사의 포럼통신>, 그 마지막 호

독립을 하기 전 몸 담고 있던 경영직무·리더십 교육기업 휴넷(www.hunet.co.kr)의 마케팅이사로서 휴넷의 핵심 서비스 중의 하나였던 <휴넷CEO포럼>을 총괄하던 당시, 포럼 호스트로서 회원 분들께 <안이사의 포럼통신>이란 콘텐츠를 메일링했더랬습니다. 매주 1~2차례 비정기적으로 보내드리던 손편 느낌의 경영칼럼이었다고나 할까요? 나름 애정을 갖고 연재하던 글이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98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우연히 다시 제 눈에 띈 그 98호를 여기 옮겨왔습니다. 5년 전 오늘 띄워드렸던 이 글을 다시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다행히 작년 가을, 저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특히 제 마눌님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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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사의 포럼통신 #98 -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벌써 몇 시간째입니다. 식은 땀만 줄줄 흐르고 속이 울렁거려 침 삼키기도 힘듭니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어떤 자세로도 있기 힘들 정도로 온 몸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계속되는 구역질에 식사를 할 수도 없고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입니다. 하루 이틀 만에 몸무게가 3kg이 훌쩍 빠져버렸습니다. 작년 겨울부터 13차례나 항암주사를 맞아오면서 이상하리만치 별 다른 부작용이 없다 싶더니, 입이 방정이라고 그 놈의 부작용이란 게 이제 슬슬 시작되나 봅니다. 다른 환자분들이 세상 살면서 항암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하시는 게 무슨 얘긴지 이해가 안 되더니 아,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비가 제법 주룩이는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6시가 못 되어 눈이 떠졌습니다. 몸이 으슬으슬하여 겹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식은 땀을 줄줄 흘렸는데, 그래도 속은 메스껍기만 합니다. 제 기척에 선잠을 깬 와이프가 얘기합니다. “그럴수록 운동을 해야 된대요. 일어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운동해야 된대요. 그래야 속도 더 낫대요.” 하지만 몸은 한없이 바닥으로 쳐지기만 하고 집사람의 얘기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집사람이 한마디 더 합니다. 같이 나가서 걷기라도 하자고. 우산이라도 쓰고 걸어야 된다고. 그러면서 제 팔을 부축하고 스스로도 무거울 새벽의 몸을 털고 일어섭니다.


저는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아내는 우산을 손에 들었습니다. 비 오는 주말 새벽, 처량한 부부는 그렇게 아파트 운동장을 돕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새벽잠의 달콤함에 취해 있을 이 시간, 혹여 일어났더라도 비 오는 바깥을 내다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을 이 시간, 몸이 아픈 남편과 그 남편의 운동 벗이 되어 주기 위한 한 아내의 새벽 산책은 그렇게 비 속을 뚫고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됩니다.


그랬습니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옆엔, 저를 사랑하는 아내, 제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 문득 집사람이 큰 애를 임신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무 것도 먹지를 못 하겠다고 퇴근할 때 냉면이라도 좀 사다 달라고 하던 아내. 하지만 계속되는 축하 술자리에 귀가 시간은 늦어지기만 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저만 기다리던 아내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술 취한 저를 맞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나쁜, 철없던 신랑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게, 제 아내는 자신의 달콤한 새벽잠을 희생하면서 그리고 비 오는 이 날씨에 우산까지 받쳐들고서 십 년 전의 못된 신랑 옆에 같이 합니다. 아내에겐 부끄러운 이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고개를 외면합니다.


2008년 7월 시작했으니, 벌써 만으로 3년입니다. <안이사의 포럼통신>을 처음 시작하던 그 때를 떠올려 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휴넷 행복한CEO포럼” 회원 분들께 그나마 소소한, 입가에 미소가 피어 오르는 읽을 거리를 제공해 드리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한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새 신랑’의 의욕 같은 것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만 3년을 이어오면서 순간순간 나태했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해서 하루 종일 구역질을 하며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음에도, 술 먹고 밤늦게 귀가하던 철없던 배우자의 모습도 있었을 겝니다. 제 아내를 볼 면목이 없던 그 때처럼 참 부끄러운 순간입니다.


98호까지 이어진 <안이사의 포럼통신>을 이젠 조용히 접으려 합니다. 만 3년의, 나름 길었다면 길었던 이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모두(冒頭)에 말씀 드렸던 제 아내의 마음을 다시 새기고자 합니다. 자기가 좋아서라기보다, 배우자를 위해서 비 오는 주말에도 꿀맛 같은 새벽 잠을 물리치고 우산을 받쳐들고 병 난 배우자를 부축해 아침운동을 나가는 그 따뜻한 마음을요. 이 마음이 바로 회원 여러분을 생각하는 저의 마음이자 행복한 성공 파트너 휴넷의 마음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개인적인 건강 상의 문제로 <안이사의 포럼통신>은 오늘 98호로 막을 내립니다만 기회가 되는 대로 다음 번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릴 때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알맹이 없는 이 잡설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크고 작은 칭찬과 격려를 보내주셨음을 잘 압니다. 그 덕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100호 고지를 눈 앞에 두고 접어야 하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 번이란 약속은 제게 더 간절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안이사의 포럼통신>을 읽어주셨던 모든 분들의 가정에 평화와 사랑과 건강이 깃들기를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1. 7. 11


- 휴넷 [행복한 CEO포럼] 사무국 안 병민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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