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4일 출간되었던 책 <샤오미처럼>의 감수를 맡으며 썼던 감수사입니다.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샤오미의 성장과 파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긴 합니다만 포인트는 '샤오미'가 아니라 샤오미가 보여주었던 '혁신'이란 생각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간만에 다시금 꺼내 읽어보는 샤오미 이야기, 아니 혁신 이야기입니다. <안병민 주>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193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여든이다. 직접 연출한 작품만 100편이 넘는다. 가장 최근작이 2014년에 발표한 <화장>이니 ‘노장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웅변하는 그다. 임권택 영화감독 이야기다. 국내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젊은 시절 직접 연출했던 수많은 영화들을 낯 뜨거워 못 보겠다 고백한다. 미국 서부영화를 흉내 내어 찍어내기 급급했던 영화라서다. 작가으로서의 영혼이 실릴 리가 없었을 터다. 그러나 그 시절의 모방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화해왔다. 특유의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 거장으로서의 작가적 역량은 어찌 보면 모방이란 토양에서 싹을 틔운 셈이다.
임권택 감독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애플의 짝퉁’이라 불리우는 샤오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2011년 8월 첫 제품을 출시했으니 샤오미는 이제 불과 다섯 살이다. 그럼에도 그 성과는 경이롭다. 2015년 2분기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순위는 삼성과 애플, 화웨이에 이어 4위다. 중국에서는 1위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모방임을 샤오미는 부인하지 않는다. 샤오미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애플이 이미 만들었다고 좋은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 없다고 역설하는 샤오미다. 많은 사람들이 샤오미를 과소평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오판이다. 샤오미의 모방이 단순한 모방으로 끝나지 않아서다. 샤오미의 모방은 진화 중이다. 이른바 ‘창조적 모방’이다.
샤오미의 ‘애플 따라하기’는 까마득한 후발주자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제한된 예산으로 고객의 머리 속에 빠른 시간 내 둥지를 틀기 위해 샤오미는 애플을 지렛대로 활용했다. 바로 ‘중국판 애플’이란 포지셔닝이었다. 고객들에게 시장의 리더인 애플과의 유사점을 내세워 손쉽게 기업과 제품의 카테고리를 알린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후 특유의 전략적 행보로 애플과 다른 점을 만들어 나갔다. 철저한 중저가 포지셔닝과 팬덤마케팅, 헝거마케팅, 인터넷씽킹 등이 그것이다. 시장개척자(Pioneer)로서의 부담은 영리하게 피했고,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의 수확은 그만큼 쏠쏠했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에 오른 샤오미는 이제 스스로를 애플과 아마존과 구글을 합친 회사로 규정한다. 세계 최고 파워브랜드로서의 애플과 혁신을 통한 박리다매의 유통강자 아마존, 인터넷 검색을 넘어 사물인터넷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구글의 총합으로서의 샤오미다. 샤오미란 기업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다. 창조적 모방은 그래서 그 자체가 전략이다.
샤오미의 오늘을 있게 한 또 하나의 열쇳말은 ‘혁신’이다. 샤오미의 역신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고 ‘역(逆)혁신’(Reverse Innovation)이다. '파괴적 혁신'은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파괴적 기술에 의한 혁신을 가리킨다. 주류(主流) 시장의 하위 시장에 자리 잡은 뒤 진화하거나, 주류 시장과는 다른 가치 기준을 갖는 새로운 시장에 뿌리를 내리는 게 '파괴적 혁신'의 특징이다. 처음 파괴적 기술이 시장에 선을 보이면 주류 시장의 주류 기업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성능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싼 로엔드(Low-end) 시장은 이익이 적다. 파괴적 기술이 나타나서 고객을 끌어가더라도 처음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결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기존 기업들이 상위 시장을 찾아 끊임없이 '도망'가는 사이 파괴적 기술을 앞세운 신규 기업들이 그 뒤를 쫓으며 서서히 시장을 장악해 나간다. 샤오미의 모습이 딱 이렇다. 이젠 성능 면에서도 큰 차이가 거의 없는 하이엔드(High-end) 사양의 제품들을 삼성이나 애플 가격의 절반 이하에 판다.
역혁신 개념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도상국에 조금 싼 가격으로 파는 것과 반대로 개발도상국에서 만들어낸 파괴적 가격의 혁신 제품을 선진국으로 다시 들여와 파는 게 역혁신이다. 쉽게 말해 좋은 제품을 조금 싸게 파는 게 아니라 좋은 제품을 파격적으로 싸게 파는 게 역혁신이다. 매출의 절대량이 아직 중국에서 일어나기에 찻잔 속 태풍으로 폄하되는 샤오미의 성과는 역혁신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서 이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
물론 샤오미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고 높다. 특허와 관련한 지적재산권 이슈, 바이두·텐센트 등 기존 강자들과의 치열한 승부, 샤오미의 방식을 모방하는 새로운 경쟁자들, 그들과의 저가 경쟁에 따른 수익률 저하 등이 그것이다. 물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하지만 샤오미의 노림수는 다른 데 있다. 샤오미가 뿌려놓은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한데로 엮어 만들어 낼 ‘샤오미 세상’이 그것이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단순 결합한 서비스 차원을 넘어 샤오미는 지금 거대한 사물인터넷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의 완성은 샤오미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인 미유아이(MIUI)에 달려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라는 OS를 통해 PC세상을 지배했다면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OS를 통해 모바일의 강자로 군림 중이다. 샤오미의 꿈은 미유아이를 통해 사물인터넷 시대의 거대한 플랫폼이 되는 거다. 이 꿈이 현실이 되면 우리는 샤오미 운동화를 신고 샤오미 밴드를 차고 샤오미 체중계로 건강을 관리하며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만나고 샤오미 TV 를 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샤오미’란 이름의 거대한 사물인터넷 세상의 시민이 된다는 의미다. ‘애플 짝퉁’이라며 샤오미를 더 이상 낮춰볼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했다. 그 안에 몇 개의 태풍과 몇 개의 천둥과 몇 개의 벼락이 들어있다 노래했다. ‘좁쌀’이란 뜻의 샤오미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수미산으로 겨우 막은 용왕의 거친 물결을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시켜 작디 작은 쌀 한 톨로 가라 앉혔다. 쌀 한 톨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들어간 자연의 공덕은 크디 크다. 쌀 한 톨이 수미산처럼 큰 존재라 불교에서 가르치는 건 그래서다. 샤오미라는 사명은 그래서 단지 좁쌀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처럼 엄청난 공덕이 들어 앉은 존재다. 그만큼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담고 있는 심오한 철학이 샤오미란 이름에 들어있다. 샤오미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두렵고 궁금한 이유다. 아무쪼록 이 책 <샤오미처럼>을 통해 그 내일을 대비하고, 나아가 또 다른 도전의 씨앗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감수자로서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되는 ‘샤오미처럼’, 잊어서는 안 될 이 시대의 비즈니스 금언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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