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오늘, 페북에 써 올렸던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회사를 휴직하고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사 가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조각들입니다. 그래도 암이란 놈이 제게 준 교훈이 있다면 이겁니다.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말입니다. 인생사,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반듯한 길과 시원하게 뻗은 다리가 늘 우리를 반겨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진흙탕을, 때로는 산비탈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또 그렇게 헤쳐나가는 겁니다. 넘어지는 게 실패가 아닙니다.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게 실패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그 뿐입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가는 겁니다.
오늘도 무쟈게 덥다고 합니다. 제 아무리 덥다 해도 제깟 여름도 한 철입니다. 한 쪽에서는 벌써 밤톨들이 익어가고있습니다. 다들 힘내시자는 말씀 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8월 6일 오늘은 '육군병장 안병장'인 제가 군에 입대한 날이기도 합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훈련받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합니다^^.
20110805 암이 선생님입니다.
꽤나 긴장되더군요. 좀 과장하면 대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평소보다 잠을 더 일찍 깼습니다. 오전 10시 반 진료이니 혈액 검사를 위해 피를 뽑기 위해서는 두 시간 전인 8시 반까지 병원을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7시 반에 집을 나서야 하지요. 오늘은 지난 주 찍은 CT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입니다. 지난 늦가을 시작한 12차례의 항암 주사 치료를 끝내고 올 봄에 촬영한 CT, MRI, Pet-CT 판독 결과, 새롭게 간 쪽에 암으로 추정되는 놈이 보인다더군요.
간으로의 전이. 제가 휴직을 결심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크기가 크지는 않다며 고주파 열 수술 치료 등을 검토하다 그냥 항암 주사 치료를 3차례 더 해보자고 해서 그거까지 끝낸 게 올 7월입니다. 2차에 걸쳐 총 15차례의 항암 주사를 맞은 것이지요. 다행히 다른 환자들만큼이나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한번 맞으면 2박 3일간 주사를 몸에 달고 있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각설하고. 오늘 다시 성적표를 받는 날입니다. 그 동안 제 몸 속에서 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의사가 얘기합니다. 지난 번 촬영 결과랑 비교하면 놀랄 정도로 아주 좋아졌다, 관련 의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어떤 의사는 암이 아니었던 것 같다라는 얘기까지 할 정도다. 그래도 뭔지 모를, 아주 자그마한 것들이 일부 남아 있으니 3번만 주사를 더 맞자, 라는 게 요지입니다. 나름 좋은 결과네요. 성적으로 치자면 A는 아니고 B플러스 정도랄까요. 그래도 또 주사를 세 번 더 맞을 생각을 하니, 에휴. 더군다나 8월 중순이면 이제 양평으로 이사를 가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더 고생을 해야 할 듯 하네요.
제 수술을 집도했던 외과 의사 분이 언젠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장애물 달리기랑 똑같습니다. 달리다가 장애물이 나오면 뛰어넘고, 또 달리다가 나오면 또 뛰어넘고. 암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이 보이면 수술하고, 그러다 또 생기면 또 수술하고 치료하고. 그러니 걱정 마세요. 반드시 고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며칠 전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은 간암 수술만 7번을 받으셨다더군요. 문득 우리네 인생도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이겨내고, 또 다른 역경이 찾아오면 또 극복하고. 그게 인생 아닐까요?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무릎 꿇지 않고 이겨내는 인생이 더 향기로울 거란 생각. 이 놈의 암이 마흔 줄에 들어 선 제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그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