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16 재개봉] 냉정과 열정 사이

안병민의 영화읽기

예전에는 정말 그랬습니다. 스마트폰은커녕 벽돌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늘 기다려야 했고 항상 엇갈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앞에 있던 서점 보드판에다 간단한 메모를 써붙여 서로의 메시지를 전하던, 참 불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삐삐가 나왔고 곧 휴대폰이 나왔고 스마트폰이 뒤를 이었습니다. 전화로, 문자로, 메신저로 서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약속시간을 정하고 또 변경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기다릴 필요도, 엇갈릴 이유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둘의 이야기는 더 애틋합니다. 지난 세기의 사랑 이야기라서입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의 감성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신저인 이유입니다. 이탤리의 서정적 풍광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그 풍경 속에 보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동양의 그것이기에 우리 눈에 보이는 장면들은 이국적 매혹 속의 편안함입니다.


살짝 손발 오글거리는 90년대식 감성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슬며시 이십여 년 전 추억을 더듬어 보게 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일본판 '건축학 개론'이랄까요? 스무 살 첫사랑의 인연이, 그렇게 돌고 돌아 서른에 완성됩니다. 두오모 성당은 그 기적의 증인이자 현장입니다.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왠지 좀 착해진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은 바스러질듯 건조하게 메말라버린 내 감성도 한 때는 저렇게 순수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집에 가면 마눌님께 10년 뒤 우리 결혼기념일,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자 얘기해 보렵니다. 13년만에 다시 개봉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보고 집에 가는 길!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감성 폭발, 아름다운 밤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