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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스케치 025] 인생, 이렇게 사용하세요

안병민의 [통찰을 스케치하다]

춥다. 그것도 매우. 새벽에 일어나 이불 속을 박차고 나오기 참 힘들었던 날이다. 툴툴거리며 새벽을 달려 나온 오늘의 강연 타이틀은 “인생 사용 설명서”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거 같다. 좀 늦은 건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아무렴 어떠랴. 지금이라도 잘 배워 잘 쓰면 좋을 테니. 그 길잡이는 김홍신 작가다. 잘 따라오라 키워드들로 디딤돌을 놓아주니 더 반갑다.


▶ 휴머니즘


장면 하나. 어느 대학교 정문 앞에 있던 철 구조물. 지나가던 막일꾼 두 사람이 고철 더미인 줄 알고 그걸 실어다 26,000원에 고물상에 팔았다. 그러나 그건 다른 캠퍼스로 옮기려고 내어놓았던 3천만원짜리 조각작품. 이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장면 둘. 시골로 가던 중국의 어느 시외버스. 인적 없던 어느 곳에서 차를 납치한 폭력배들. 기사를 칼로 찌르고 승객들의 돈을 뺏은 뒤 가려다 승객 중 젊은 여자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겁탈하려 한다. 그 때 강하게 항의한 어느 청년은 그들의 칼에 찔려 크게 다치고 결국 그녀는 강간을 당한다. 폭력배들이 도망친 후,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려 했던 그 청년만을 남겨둔 채 승객들이 탄 그 차를 직접 몰고 가더니 천 길 벼랑 끝으로 떨어져버린다. 방관자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분노였다.


“두 가지 이야기에서 저는 휴머니즘이란 화두를 먼저 던져드리고자 합니다. 과연 그 여자는 그렇게 모두를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게 최선이었을까요? 물론 그녀의 분노와 절망에 공감은 하지만 ‘휴머니즘’이란 측면에서 보면 정답은 아닌 듯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은 그 사람들을 잡아다 그 조각작품을 이전하기 위한 해체 및 조립, 그리고 운송 과정에서의 보조 인력으로 그들을 쓰는 걸로 처벌을 대신했다 합니다. 중요한 건 휴머니즘입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직 덜 깬 머리, 빨리 정상 모드로 돌려야겠다 싶다. 김홍신 선생의 말이 이어진다.


▶ 재미


“양치질 다들 하시죠? 보통 3분을 하라고 하는데, 실제로 시계 놓고 시간 재면서 양치질 한번 해보세요. 3분? 무지하게 긴 시간입니다. 여간 해서는 양치질로 3분을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지요. 그런데 노래방 가서 춤추고 노래할 땐 어떤가요? 그 땐 한 시간도 금세 지나갑니다. 그야말로 쏜살같지요.” 


듣고 보니 그렇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재미’다. 재미있으면 시간은 짧게 느껴지게 마련. 그러니 회사 출근하는 것도 다르게 생각해보라는 게 선생의 말이다. 


“회사 출근하면서 오늘 하루 신나게 한번 놀아보자, 내게 주어진 일거리 가지고 한번 실컷 놀아보자, 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면 월급도 줍니다. 나는 놀았는데 돈까지 주니 얼마나 좋아요? (웃음)”


▶ 명답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정답이 있다 생각하니 우리네 삶,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명답이 있는 거지요.”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뭔가 울림이 있다. 정답이 아니라 명답!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아마 ‘정답’은 이런 것일 겁니다. 잘 생긴 외모, 똑똑한 머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돈,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명예, 근사한 배우자에 훌륭한 자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명답’은 뭘까요? 간단합니다. 다시 태어날 수 없는 단 한번 뿐인 삶,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거죠.” 


듣고 보니, 정말 명답이다. 그 동안 참 힘들게 살아왔다. 직장 구하느라, 집 장만 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이런저런 이유로 참 힘들게도 살아왔다.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들이다. 그러고 보니 마음 편하게 제대로 놀아본 적도 거의 없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이 잘 안 난다. 


▶ 돈


“노래방엘 가면요. 내가 돈 내고 노는 데도 참 재미있습니다. 시간, 잘 가지요. 근데 돈 벌려고 노래하고 춤 추는 가수들, 그렇게 재미있을까요? 아니죠. 그건 노동입니다. 재미있을 수가 없지요.” 


듣다 보니 골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추운 겨울에도 눈비 맞으며 필드로 향하는 골퍼들은 행복하다.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도 마음은 즐겁다. 하지만 그 옆을 따라다니는 캐디들도 과연 그럴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오늘의 라운딩은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일 뿐일 테니. 


▶ 생각 쓰레기


“자, 가정을 한번 해봅시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께 꽃다발을 하나씩 드린다면 그건 누구 걸까요? 맞습니다. 여러분께 드렸으니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 거지요. 이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그 꽃다발, 들고 가시겠지요. 근데 만약 제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더미를 하나씩 드린다면 그건 누구의 걸까요? 아니, 왜 웃으세요? 그것도 여러분께 드린 거니 여러분 거죠. 아닌가요? (웃음) 자, 중요한 건 생각입니다. 실제 드린 것도 아닌데 왜 꽃은 받고 싶고 쓰레기는 받기 싫을까요?”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별 필요도 없는 생각 더미들을 다 버려야 한다. 근심, 걱정, 화, 짜증 등 우리네 인생을 재미없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원자재들. 이런 생각의 쓰레기들을, 힘들긴 해도 다 버리란다. 생각을 바꾸란다. 생각 바꾸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바꿔보고 아니면 다시 되돌리면 되니 위험부담도 없단다. 김홍신 선생의 이야기에 어느새 완전히 빠져들어 있다. 


▶ 바보


그렇다면 근심, 걱정 이런 거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홍신 선생의 대답은 명쾌했다. 바보가 되란다. 고등동물일수록 고민이 많다는 그의 말. 맞는 말이다. 병원에서도 살이 찢어진 환자를 치료할 때 외모가 좀 고급스러워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마취제를 평균보다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세상사, 단순하게 생각하자. 복잡할수록 나만 힘들다.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연세가 80대인데 위암이랑 척추때문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건강하게 지금도 잘 살고 계세요. 비결이 뭔지 여쭤봤더니 이렇게 암세포들에게 말을 건네셨답니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잖아. 그러니 함께 같이 잘 살자.’ 라고요.” 


그렇다. 떼 쓴다고 될 일도 아닐 터. 단순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이렇게 배짱 내밀며 사는 것. 인생, 그게 잘 사는 방법이다.


▶ 인연


김홍신 선생의 또 하나의 이야기. 언젠가 비행기를 탔는데 목적지에 다 와서 착륙하려다 일기 상황이 안 좋다며 30분 정도 근처 상공을 돌고 있는 비행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란다. 그럴 만도 한 상황이다. 그 때 생각나는 사람? 바로 나의 배우자다. 그런 순간이면 항상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함께 떠오르는 나의 사랑. 그렇다. 그런 애틋한 사람과 나는 오늘도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거다. 인연이란 건, 좁쌀 씨눈이 하늘을 떠 다니다 어느 바늘 끝에 내려 않는 거라지 않나. 그런 소중한 인연, 잘 갈무리하며 살아야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그런데 옷깃이 어딘가. 옷 자락도 아니고 소매 끝도 아니다. 앞섶이다. 가슴과 가슴 사이에 있는 것이다. 서로 끌어안아야만 닿을 수 있는 게 옷깃이다. 육신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끌어안아 닿을 수 있는 옷깃의 인연은,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 마음


“연극 배우 박정자 선생을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이 맡는 역할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더라”라는 말을 하더군요. 쉽게 말해 착한 역할을 맡으면 몸도 가볍고 얼굴에도 화색이 돈답니다. 이른바 신체 나이가 젊어진다는 거지요. 반대로 악한 역할, 비참한 역할을 맡으면 기분도 진짜 우울해지고 컨디션도 안 좋아진답니다. 처음엔 안 믿었지요. 그런데 손숙 선생이나 안성기나 다들 같은 말을 하더군요.” 


놀라운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어느 외국 배우가 소름끼치는 악역을 맡아 절정의 연기를 펼쳐 보이고는 촬영이 끝난 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자기가 부르는 노래 가사대로 운명이 따라가더라는 가수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항상 감사하며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 열등감


행복은 내 맘 속에 있다. 남이 가진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열등감 때문이다. 동남아로 여행 갈 때는 식당에서도 우리 말로 막 큰 소리 치며 주문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엘 가서는 조용히 주는 대로 먹는다. 이게 열등감이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동메달을 딴 선수는 기뻐한다. 다음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는 은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동메달을 딴 선수란다. 더 놀라운 것은, 동메달도 못 따본 선수가 나중에 최고의 명코치나 명감독이 되더라는 사실. 외모 콤플렉스가 가장 심한 집단이 연예인 그룹이란 사실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열등감을 버려야 합니다. 내 과거는 정말 비참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So what? (그래서 뭐?) 저도 공부는 못 했지만, 안 했지만 제가 나온 대학에서 최고로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웃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아니면 제대로 해야지요.”


▶ 중심


“지구의 중심이 어디인 줄 아세요? 어딥니까? 지구는 둥글잖아요? 그래서 내가 서 있는 여기, 바로 이 자리가 지구의 중심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주인은 누구죠? 네, 바로 나지요.” 


말 된다.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세상의 주인인데 뭐가 두려우랴? 주인답게 살아야 될 이유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렇게 힘들고, 화나고, 짜증나고, 피곤하고, 외로워도 지금 천국으로 인도해주겠다는 천사의 손을 외면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라는 가능성을 믿기에 오늘의 고통과 힘겨움을 견디는 것이다. 그 희망을 우리는 다른 말로 ‘행복’이라 부른다. 재활용할 수 없는 나의 삶. 그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게 김홍신 선생이 이야기하는 인생사용설명서의 핵심이다. 


1회용 휴지. 다 쓰고 나면 버리지, 그걸 다시 재활용해서 쓸 사람은 없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늘 단 한번의 기회가 있을 뿐이다. 내게 주어진 이 기회, 나는 세상을 끌고 가고 있나? 끌려 가고 있나? 마침 새해다. 습관처럼 심드렁하게 맞았던 새해, 올해는 새해를 맞는 내 마음도 좀 바꿔볼까 싶다. 왜 사는지, 누구와 함께 사는지, 내가 원하는 행복이 뭔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련다. 그보다도 오늘은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김홍신 선생의 책, 「인생사용설명서」를 빌려 들어가련다. 올해는 왠지 내 인생, 한 뼘은 더 행복해질 듯 하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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