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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칼럼 008]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연재] 안병민의 숨은 경영 찾기

*동아비즈니스리뷰 2018년도 6월 250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숨은경영 찾기> 칼럼입니다.


“2022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을 달성함으로써 유통업계 1위 자리를 굳히겠다.” 최근 롯데그룹이 온라인사업 강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매출 40조원의 18% 수준인 온라인 매출을 2022년에는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작업이 ‘온라인몰 통합’입니다. 엘롯데, 롯데마트몰, 롯데닷컴, 롯데아이몰 등 계열사 별로 흩어져 있던 온라인몰을 통합하여 운영함으로써 ‘옴니채널’을 완성하겠다는 겁니다. 요컨대, 기존 유통 채널에 IT·모바일 기술을 융합하여 온·오프라인의 경계와 채널을 넘나드는 혁신적인 쇼핑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게 골자인데요. ‘개별 회사 단위’를 기준으로 운영해왔던 유통 비즈니스를 ‘온오프라인 채널’을 기준으로 재구성한다는 복안입니다.  


롯데의 금번 전략 발표를 접하며 츠타야서점이 떠올랐습니다. 책을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다이칸야마의 그 서점 말입니다. 가정·살림, 건강·취미, 경제·경영, 국어·외국어, 여행, 역사, 예술, 인문 등등. 대부분의 서점들이 채택하고 있는 도서 분류 기준입니다. 츠타야는 이런 분류체계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예컨대, <헬싱키의 건축>이라는 책과 <헬싱키의 음식>이라는 책은 전혀 다른 서가에 꽂혀 있을 겁니다. 건축과 음식은 기존 분류체계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헬싱키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에게는 둘 다 필요할 수 있는 책입니다. 공급자 입장에서 만든 일방적인 기준에 맞추어 뭔가를 팔려고 하니 기꺼이 지갑을 열어 구입을 하는 고객 또한 드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서점은 ‘판매’를 위한 장소이지 ‘구입’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게 츠타야의 판단이었습니다. 이에 츠타야는 고객을 중심에 둔 새로운 분류체계로 책들을 재분류합니다. 기존 경계의 틀을 넘어 연관된 내용의 책들을 한데 모읍니다. 그러니 각기 따로 놀던 책들이 정돈된 주제와 테마를 가지고 고객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책’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는 제안’을 파는 겁니다. 츠타야서점을 운영하는 ㈜CCC의 마스다 무네아키 CEO는 이런 능력을 ‘지적자본’이라 얘기합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롯데그룹과 츠타야서점의 사례에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관점의 변화’입니다. 같은 사물, 같은 상황도 어떤 각도로 볼 것이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집니다. ‘계열사’ 별로 진행하던 온오프라인 사업을 ‘채널’ 별로 재구성하고 ‘도서분류표’에 따른 기준으로 보여주던 책들을 ‘고객의 관심사’에 따라 재분류한 겁니다. 왼쪽에서만 쳐다보던 걸 오른쪽에서도 바라보고 위에서 내려다만 보던 걸 아래에서 올려다도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므로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좋고 나쁨 또한 맥락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며칠을 굶었을 때의 밥 한 공기와 잔칫상을 비우고 나서의 밥 한 공기가 같을 수 없습니다. 시사점은 ‘유연함’입니다. 금(金)이 스스로의 속성만 고집하면 금송아지나 금사자가 될 수 없듯이 기존의 시각이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알고 늘 상대 개념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컨대, 이성이 있으면 감성이 있고, 씨줄이 있으면 날줄이 있고, 리더가 있으면 폴로우어가 있고 갑이 있으면 을이 있는 법입니다.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이라 했습니다. 있음과 없음, 어려움과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도덕경 2장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면 안 된다는,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 노자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은 이런 대립과 모순이 공존하는 시공간입니다. 그러니 맹신하지 말고 속단하지 말 일입니다. 용감하지만 무모했던 장비에 비해 현명하면서도 신중했던 관우에 대한 평가가 훨씬 높은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의 기준에 매몰되는 순간, 균형추는 순식간에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하면서 ‘기준’의 효용에 의문을 던집니다. 죽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금의 세상에서 명확한 기준과 그에 대한 확신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 머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이념과 기준, 선입견에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획일화된 기준의 상자를 깨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씨줄만 보이던 세상에서 날줄을 읽어낼 수 있고 가로로만 보이던 세상을 세로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무위(無爲)’입니다. 특정한 기준과 이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나만의 통찰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겁니다. 지식에 지배되지 말고 지식을 지배하라는 노자의 통찰이 롯데와 츠타야의 혁신 사례에 이렇게 녹아 있습니다.


최근 패션피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가 ‘삭스 스니커즈(socks sneakers)’입니다. 신발과 양말이 하나로 합쳐진 디자인입니다. 이리 보면 양말이고 저리 보면 신발입니다. 노자는 ‘해(日)’와 ‘달(月)’을 구분하는 얄팍한 지식을 경계했습니다. 해는 해고 달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하나로 합쳐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현명함(明)’이라 보았습니다. 최근의 ‘융합’, ‘복합’,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등의 단어를 새삼 거론치 않더라도 노자의 철학이 작금의 세상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존의 관념을 덜어내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혁신이 보입니다. 롯데의 온라인사업과 츠타야의 도서분류에서 노자를 봅니다. ‘유무상생’과 ‘무위자연’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창의혁신의 비즈니스 현장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동아비즈니스리뷰 2018. 6월 250호 http://dbr.donga.com/article/view/1206/article_no/8658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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