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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칼럼 014] 고객도 ‘사람’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연재] 안병민의 숨은 경영 찾기

*동아비즈니스리뷰 2019. 2월 267호에 실린 <안병민의 숨은경영찾기> 연재칼럼 입니다.  

 

▶고객은 숫자가 아니다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머리로만 쥐어짜낸 현실성 없는 전략으로는 고객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고객에게 물으며, 고객을 연구합니다. 고객이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안테나를 세우고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고객은 ‘데이터’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고객의 답변이 퍼센트로 표기되는 걸 보면서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숫자’로만 인식합니다. ‘구매의향 있다 65%, 없다 35%’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숫자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살아 숨쉬는 고객을 피상적인 숫자로만 이해하면 그 이해는 이미 과녁을 벗어난 겁니다. 고객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고객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몇 년 전, 설이었습니다. 파고다어학원의 신문광고를 보았습니다. ‘파고다 명절대피소’ 개설을 알리는 광고였습니다. 명절 연휴 동안, 친척 군단의 습격을 피해 우리 학원으로 피신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취업진로 진단검사와 온라인 모의토익시험을 무료로 제공하고, 덤으로 간식까지 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객을 단지 돈벌이 대상으로만 봤다면 나오기 힘든 아이디어입니다. 고객을, 우리 제품을 팔기 위한 숫자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아이디어입니다.


▶고객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만족’과 ‘고객행복’을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고객을 집합적인 추상명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객’이라 발음하는 그 단어에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을 느껴야 합니다. ‘체온’을 감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막을 내렸지만 MBC <무한도전>이라는 국민 예능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벌써 오래 전 에피소드입니다만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 편에서 유재석씨가 노량진 학원가로 거리 인터뷰를 나갑니다. 자기의 나쁜 기억을 적고 지우개로 지우면 그 기억이 사라진다는 설정입니다. 어느 취준생과의 상담이 시작됩니다. 취업준비 학원에서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어 어렵게 표현한 마음. 돌아온 반응은 거절이었답니다. 지금 처한 현실에서는 사랑마저도 사치라 생각하는 상대방이 건넨, 슬프고도 아픈 그 순간을 잊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공무원·자격증 시험을 위한 교육기업 자문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문회의 때 얘기했습니다. 우리 고객은 이처럼 사랑도 맘놓고 못하시는 분들이라고 말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의 그 분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지 얘기했습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분들의 성공을 도와 드리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관점을 달리하니 업무의 많은 부분들이 절로 바뀝니다. 직접 써보지도 않고 마냥 좋은 거라고만 얘기하던 영혼 없는 광고 메시지도 달라졌습니다. 해당 교재로 직접 공부해서 만들어낸 성과를 가지고 얘기하니 마케팅에도 힘이 실립니다. 진정성의 힘입니다. 

 

▶고객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기업의 역할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고객을 배려하고, 고객과 공감하며, 고객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기업이 성장합니다.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수술환자를 위한 1분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니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감이 극도에 달합니다. 그 상황에서 수녀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시는 겁니다. 중증환자 수술 때는 수술실 안에서도 의료진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서울성모병원은 고객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렇게 현장에서 실천합니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환자의 ‘삶’을 보듬어 안는 겁니다.

 

제가 주니어 시절 다녔던 광고회사, 50대 모 국장님은 청바지 브랜드 광고를 맡은 이후로는 항상 청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신촌과 대학로, 홍대 앞을 부러 찾아 다녔습니다. “젊은이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성공의 열쇠를 찾았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대목입니다. 고객의 관점과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바라보는 겁니다. 아니, 직접 고객이 되어보는 겁니다. 그게 성공하는 마케팅의 출발점입니다.

 

품질이나 기술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고객을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다’란 말은, 그래서 고전 속 박제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네 경영 현장에서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비즈니스 금언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동아비즈니스리뷰 2019. 2월 267호 http://dbr.donga.com/article/view/1202/article_no/9013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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