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보 칼럼] ‘우리’는 ‘나’보다 낫다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사람과 공간> 칼럼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사람과 공간> 2019년 6월호(Vol 67)에 실린 경영칼럼입니다.

 

경쟁이란 늪에 빠졌었던 우리


2014년 여름,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일본, 중국, 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네 번째 개최다. 4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수학자대회는, 수학의 발전을 위해 수학자들의 정보 교류와 친교를 위해 만들어진 행사다. 그런 축제의 장의 한가운데서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쓴 글 한 편을 보았다. ‘세계수학자대회가 수학올림픽이 아닌 이유’라는 제목이었다. 수학자대회는 올림픽처럼 ‘경쟁’을 전제로 한 행사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다 모이니 그 중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불편해하는 내용으로, 수학이란 학문도 협조가 중요함을 강조한 글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을 경쟁의 관점으로만 보아왔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정글 문화가 우리 삶을 압도해서다. 세간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자 수학자로서 이런 글을 써야만 했을 김민형 교수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지금껏 역사 발전의 견인차는 ‘경쟁’이었다. 자원은 늘 희소하다. 소수만 누릴 수 있으니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필연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이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쟁의 DNA다. 그런 경쟁을 통해 세상은 발전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남들을 앞지르겠다는 생각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세상만사 어김없이 작동한다.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경쟁도 분명히 한계가 있더라는 얘기다. 일정 수위를 넘어서니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하다. 첫째가 ‘망각’이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 잊어버리는 거다.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유를 모른 채, 이기려고만 하니 방향이 흔들린다. 목적지를 잃은 여행과 다를 바 없다. 속도에만 매몰되어 방향을 잃어버린 격이다. 둘째는 ‘상실’이다. 주어진 경쟁환경에 맞추어 살다 보니 내 삶에 내가 없다.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발버둥을 쳐보지만 늪이다. 내 고유의 색깔과 결은 사라지고 나는 점점 가라앉는다. ‘자기상실’이다. 나를 잃어버린 내 삶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정신적 공허함이 빚어내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이제 정답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작금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핵심키워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말이다. 


경쟁이 아닌 협력을 바라볼 때


올림픽이 금메달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듯 경영의 이유 또한 경쟁사 타도에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을 위해 ‘무엇이 되어(Vision) 어떻게 할 것인지(Mission)’에 대한 리더의 철학이 담겨야 제대로 된 경영이다. 그런 철학에 직원은 마음을 열고 고객은 지갑을 연다. 여기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떠올린다. ‘상대’만 쳐다본 토끼가 ‘목표’를 바라본 거북이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던 얘기 말이다. 


세상은 이제 ‘상대’가 아니라 ‘목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런 현실을 웅변한다. 절대평가를 하니 학생들의 머리속에 ‘경쟁’이란 단어 대신 ‘협력’이란 단어가 싹을 틔운다. 교과서에 있는 정답을 적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적다 보니 시험에 대한 부담은 줄고 공부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다. “친구를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무언가를 알기 위해 공부한다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학생들의 대답은 경쟁과 협력에 대한 우리의 좁은 시각을 새삼 일깨워준다. 


비즈니스 현장도 다르지 않다. 인사평가를 통해 A, B, C, D등급으로 줄을 세우던 경쟁의 패러다임 역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장기적인 회사 경쟁력 제고와 성과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직원들의 적극적인 도전을 제한하여 오히려 혁신과 창의성의 걸림돌이 되더라는 것이다. 지금껏 직원평가를 통한 경쟁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이, 이제는 직원 각각의 역량을 하나로 묶어내려 노력하는 건 그래서다. 직원들도 달라진 모습으로 화답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를 앞세운다. ‘개인실적’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고객행복’을 실천한다. ‘각자도생’의 생존경쟁이 아니라 ‘고객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연결과 공유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협력이 만들어낸 마법이다.


시나브로 ‘협력’이고 바야흐로 ‘협력’이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듯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었던, ‘경쟁’을 통한 ‘독점’의 메커니즘이 오늘은 오답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능력과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빚어내는 ‘분산’과 ‘연결’이 시대적 화두라서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승자 혼자 모든 걸 독식하던 세상에 종언을 고한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도우며 함께 달리는 세상이다. 독점에서 분산으로, 고립에서 연결로! 시대정신의 변화이다. 이제 경쟁도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 아니다. 팀 대 팀의 경쟁이고,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의 경쟁이다.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애플의 생태계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혼자 살겠다는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한 상생을 꿈꾸는 제휴의 네트워크이다. 항공업계도 이에 발맞추어 재편 중이다. 싱가포르항공, 루프트한자 등 27개 항공사로 구성된 항공사 동맹 ‘스타얼라이언스’나 영국항공, 핀에어 등 13개 항공사로 구성된 ‘원월드’,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 등 19개 항공사가 멤버인 ‘스카이팀’ 등 개별 항공사들은 저마다의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연대하고 협력한다. 그래서 분산은 곧 연결이고, 연결은 곧 협력이다.


경쟁의 영어 단어 ‘competition’의 어원은 라틴어 ‘competere’다. ‘함께’라는 의미의 ‘com’과 '추구하다'라는 의미인 ‘petere’가 합쳐진 단어다. 그대로 옮기면 ‘함께 노력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하급수적인 변화의 시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승부가 망쳐놓은 세상을 치유해주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협력이다. 시나브로 협력의 세상이고, 바야흐로 협력의 시대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DBR칼럼 017] ‘관리’ 말고 ‘경영’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