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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35] 혁신의 전제는 ‘비움’이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19년도 9월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경영수다> 칼럼입니다.


끼니마저 때우기가 힘들었던 지독한 가난 속 한 아이.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운명처럼 권투를 만납니다. 이를 악물고 달렸고, 몸이 부셔져라 주먹을 뻗었습니다. 그러면서 찾아낸 혼자만의 순발력 연습. 날마다 철길에 나가 달려오는 기차를 최대한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피하는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지요. 마침내 그는 세계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3차방어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한 그는 절치부심합니다. 초심을 찾아 그는 다시 철길로 나갑니다. 조금 더, 조금만 더...달려오는 기차와의 거리를 그렇게 점점 좁히다, 아뿔싸, 기차에 치어 죽음을 맞습니다. “추락한 전직 챔피언,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 선수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들의 헤드라인이었습니다. 승리와 삶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한 의지를 불태웠던 선수가 순식간에 비관적 패배주의자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사라진 진실’에 대한 일상 우화 한 토막입니다.


누구나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진실은 보지를 못합니다. 진실이 눈 앞에 있음에도 못 보고 지나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재구성한 ‘대안적 진실’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적 진실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을 가장한 왜곡된 믿음입니다. 조작된 믿음입니다. 그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가 또 있습니다. 장자 내편에 나오는 우화 <혼돈의 죽음> 속 주인공 ‘혼돈’입니다. 여기, 글의 전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한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으므로,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논의해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7규(竅)-일곱 개의 구멍 즉 눈, 귀, 입, 코-가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에게만 없으므로 시험 삼아 구멍을 뚫자”고 했다.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숙과 홀은 혼돈의 대접에 감사하며 그 보답으로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어줍니다. 결과는 혼돈의 죽음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입니다. 대안적 진실에 사로잡힌 나를 고집해서입니다. 실체적인 진실 속 상대를 헤아리지 못해서입니다. 


‘권투선수’와 ‘혼돈’의 죽음에서 우리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아는 진실이 ‘우리 모두의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일부’만 보고 ‘전체’인 줄 착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습니다.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더듬고는 코끼리를 다 아는 냥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 댄 격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습니다. 그러나 단편적인 앎이나 지엽적인 앎은 오히려 독입니다.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입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려서입니다.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인간의 본원적 이기심과 그로 인한 진실의 실종을 지적합니다. 산길을 가던 사무라이 부부를 협박하여 그 아내를 겁탈하고 사무라이 남편을 살해한 산도적의 이야기. 


그러나 각자가 털어놓는 진실은 제각각입니다. “겁탈을 당한 여자는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했고, 나는 정당한 결투를 벌여 사무라이를 죽였다.” 도적의 말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말은 다릅니다. “나를 범한 도적은 도망가고, 남편은 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 경멸의 눈길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였다.” 이미 죽은 목숨인 사무라이는 무당의 입을 빌려 당시를 설명합니다. “도적은 아내를 범한 후 아내를 설득해 함께 도망가자 했다. 아내는 그에 동의하며, 대신 나를 죽이라 했다. 도적은 거절했고, 아내는 도망갔다. 자괴감에 나는 자결했다.” 


다들 살인(혹은 자살)을 자인하지만 속내는 다릅니다. ‘추한 살인’이 아니라 ‘명분 있는 살인’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겁니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거짓, 이른바 ‘라쇼몽 효과’입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한다며 모두가 거짓을 얘기합니다. 심지어는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는 나무꾼의 얘기에서도 거짓이 불거져 나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의, 모두에 대한 거짓”입니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입장으로 바라보니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진실은 하나지만 저마다의 해석에 따른 ‘나의 진실’은 세상 모든 사람의 숫자만큼 많습니다.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견뎌내기 힘들어하는 인간은 속단과 맹신의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살얼음 밟듯 신중해야 합니다. 세상은 모순이 공존하는 곳이라서입니다. ‘성인위복 불위목(聖人爲腹, 不爲目)’,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얘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눈은 ‘구분’을 의미하고, 배는 ‘본질’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감각과 판단의 오류를 경계하는 표현입니다. “확신하지 않는 힘이 내공”이란 말이 가진 통찰을 새삼 곱씹게 됩니다.


이런 통찰은 오롯이 기업경영으로도 이어집니다. 어느 조직이나 혁신이 화두입니다. 초연결, 초지능, 초경쟁 등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상전벽해의 변화가 한창이라서입니다. 마케팅과 리더십을 포함한 경영의 ABC가 송두리째 바뀌는 배경입니다. 하지만 변해야 산다는 절박한 외침을 가로막는 혁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그저 내 식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해석하고, 고집하는 겁니다. 내가 만든 나의 틀입니다.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틀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겁니다. 그 틀을 깨는 것을 우리는 혁신이라 부릅니다. 혁신의 전제는, 그래서 ‘비움’입니다. 내가 구축해놓은 ‘나’라는 성(城)을 부숴야 합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했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버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 알량한 나의 ‘눈’을 고집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서의 지엽적 판단은 진실을 왜곡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는 그 자리에 혁신의 씨앗이 싹을 틔웁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비극적 역사의 한 자락을 담았습니다. 사도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적 창의력을 한낱 "칼장난과 개그림"으로 치부해버리는 영조.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도의 한 마디는 "(과녁이 아니라)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입니다. 그리고 “공부가 그리 좋으냐?” 물어보는 아버지 사도에게 답하는 세손의 말. "공부가 좋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아버지가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저도 싫습니다." 빗나간 아버지 영조의 애정은 절대비극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이른바 ‘SKY캐슬 부모’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게, 부모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니 저렇게 뒤주에 갇혀 죽는 거 아냐.”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삽니다. 봐야 하는 대로만 보고 삽니다. 제대로 된 혁신이 요원한 이유입니다. 보여지는 대로 봐야 합니다.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부박(浮薄)하기 짝이 없는 ‘나의 진실’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을 거두어야 합니다. 명확하고 확고한 믿음은 절대 미래지향적일 수 없습니다. 결코 변화지향적일 수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다름에 대한, 변화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포용이 세상의 온전한 모습, 진실을 드러나게 합니다. ‘나의 성(城)’에 갇힌 채 맞는 변화는, 혁신의 기회가 아니라 봉변의 위기일 뿐입니다. 비워야 혁신입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포춘코리아 2019. 9월호 해당칼럼 보기 http://bit.ly/2Zt2hLL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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