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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05] 신문을 읽다

[국제신문 연재] 안병민의 세상읽기

*방구석 5분혁신-안병민TV : 글을 잘 쓰기 위한 3가지 방법? 읽고 쓰고 고치고!

https://youtu.be/RK29lhSgDk0


국제신문 2019년 9월 5일자 30면에 실린 <세상읽기> 연재칼럼입니다.


기획과 프레젠테이션. 기업 업무의 꽃이다. 이 꽃을 피우는 도구가 있다. 파워포인트(프레젠테이션용 소프트웨어)다. 직장인의 능력은 파워포인트 구사 능력으로 판별된다. 파워포인트의 달인은 곧 조직 내 능력자고 에이스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워포인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부실한 내용을 화려한 파워포인트 디자인으로 커버하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보이는 것에 신경 쓰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를 놓치는 일이 많아져서다. 많은 기업들이 파워포인트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이유다. 슬라이드 뒤에 숨지 말고 글로 승부하라는 얘기다. 아마존도 그런 기업 중 하나다. 제프 베조스는 세련된 파워포인트 기술 대신 서술형 문장을 요구했다. 포장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 

 

파워포인트의 실각, 권좌는 글쓰기의 차지가 되었다. 글을 잘 써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후죽순 생겨난 ‘글쓰기교실’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수강료도 하나같이 비싸거니와 효과 또한 ‘글쎄’라서다. 글은 두어 달 배우고 익힌다고 확 늘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서다. 내 영혼이 탄탄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내 삶, 그 자체라서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생각’이다. 내 생각을 ‘적으면’ 글이 되고 내 생각을 ‘소리 내면’ 말이 된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말’을 하려면 먼저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 좋은 생각의 마중물은 무엇일까? 요리를 하려면 재료가 필요하듯 생각도 마찬가지다. 재료가 있어야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기존의 개념과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이어서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방향이 제각각인 팩트들을 새로운 관점과 맥락으로 편집하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생각의 관건은 그래서 다양한 ‘생각씨앗’, 그리고 그 씨앗들의 창의적 조합이다. 신문은 그런 싱싱한 생각씨앗의 보물상자다. 

 

신문에는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전문가’와 ‘편집’이라는, ‘선별’의 시스템으로 걸러낸 이야기들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채굴한, 세상 변화를 머금은 원석들이다. 그러니 신문은 생각의 소재를 찾고 캐는 발견의 장이다. 재료가 풍성하면 요리가 맛나듯 글감이 풍성하면 글도 좋아지게 마련이다. 

 

신문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은 글의 완성도다. 신문은 동시대의 표준문법을 준수한다. ‘미문(美文)’은 없을지언정 ‘비문(非文)’ 역시 없다는 얘기다. 사실을 어떻게 묘사하고 주장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눈 여겨 읽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나의 문장도 딴딴해진다. 신문에는 건조한 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문학작품 못지않은 유려한 글도 많다. 책이나 공연에 관한 문화면 기사들이 그렇다. 이면의 해석과 미래의 전망을 담은 칼럼들도 있다. 그런 칼럼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은 덤이다. 그래서 신문은 내 생각을 벼리기 위한 재료의 보고이고, 내 생각의 표현을 갈고 닦을 수 있는 문장들의 집적이다. 

 

이런 신문기사를 웹과 앱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접하는 기사는 말초적이고 단편적이다. 독자의 관심을 낚기 위한 선정적 헤드라인에 따라 조회수가 널을 뛴다. 아날로그로 얻는 오프라인 상에서의 교육 효과는 디지털과 그 차원을 달리 한다. ‘검색’해서 얻은 지식으로는 ‘사색’으로 쌓은 지혜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너나 없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전철 안, 매고 있던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읽는 이유다. 관심 가는 기사에 밑줄을 치고 별표를 그리고 메모를 한다. 신문을 찢어 주제 별로, 키워드 별로 분류하고 스크랩을 한다. 그런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오롯이 뇌로 전달된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사색이다.   

 

이렇게 톺아읽는 글들을 소재로 검증을 하고, 연구를 하고, 분석을 하고, 사례를 찾고, 기획을 하고, 편집을 하고, 스토리를 입히면 그게 곧 나의 요리, 즉 나의 생각이 된다. 그 생각을 ‘쓰면’ 글이 되고, 그 생각을 ‘뱉으면’ 말이 되며, 그 생각을 ‘살면’ 삶이 된다. 그 사람의 삶이 곧 그 사람의 말과 글이 되는 건 그래서다.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신문부터 읽을 일이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국제신문 2019년 9월 5일자 30면 <세상읽기> 연재칼럼 http://bit.ly/2LxK0mS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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