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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칼럼 019]불상현 사민부쟁-성장체험을 제공하라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연재] 안병민의 노장(老壯)경영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가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경영에 접목해 풀어보는 노장(老壯)경영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자와 장자의 통찰에 기반해 비즈니스를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동아비즈니스리뷰 편집자 주)
*동아비즈니스리뷰 2019. 12월 286호에 실린 <안병민의 노장(老壯)경영> 연재칼럼 입니다.  


직원 2만 명에 매출 1,110억 달러. 천연가스 유통회사로 시작하여 초고속통신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손꼽히며 미국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라간 회사는, 그러나 급전직하합니다. 역대 최악의 회계비리 사건을 일으킨 엔론 이야기입니다. 부실은 숨기고 수익은 부풀렸습니다. 결과는 파국이자 파산입니다. 폭스바겐 사례도 있습니다. 한 해 500만 대가 넘는 자동차를 팔았습니다. 드디어 토요타를 제치고 숙원이었던 세계 1위에 등극합니다. 생산능력도 ‘연간 천만 대 돌파’를 코 앞에 두고 있던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 순간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때문입니다.

 

엔론과 폭스바겐의 비극을 관통하는 요인은 ‘카리스마 리더의 탐욕’입니다. 제왕적 CEO가 무리하게 설정해 놓은 목표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리더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없었던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를 걷어차 버립니다. 스스로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없기에 선택한 고육지책입니다. ‘비즈니스 목적’ 상실도 커다란 배경입니다.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오로지 돈과 성과만을 향해 내달립니다. 엔론과 폭스바겐의 외형은 그렇게 키워낸 허상이자 허업이었습니다. 


불상현(不尙賢) 사민부쟁(使民不爭)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 사민부위도(使民不爲盜) 불견가욕(不見可欲) 사민심불란(使民心不亂). 도덕경 3장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똑똑함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며, 욕심날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라는 뜻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경쟁을 조장하지 말라는 노자의 통찰이 녹아있는 글귀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자꾸 반대로 내달립니다. 예전의 성공경험에 사로잡혀 과거의 카리스마 리더들을 재소환합니다. 그러면서 심화되는 내외부간 경쟁. 스페인 IE경영대학원의 크리티 쟌 교수는 직원 간의 비교평가는 부도덕성을 자극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상대평가 방식은 직원 간의 경쟁만 부추기고 단기성과에만 집착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과 성과 위조 등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내용입니다. 엔론과 폭스바겐 사례가 고스란히 겹쳐보이는 대목입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위기 때마다 꺼내드는 인센티브 카드도 그렇습니다. 인센티브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많은 학자들의 연구나 실험결과는 이 질문에 부정적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센티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겁니다. 반짝,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라는 겁니다. 인센티브에 대한 민감도가 금세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10만원만 걸어도 활기가 넘치던 직원들의 표정이 어느 샌가 시큰둥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20만원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도 잠시입니다. 직원들의 기준치는 끝없이 높아만 갑니다. 인센티브의 내성입니다. 

 

인센티브의 일상화는 직원의 ‘자율성’ 파괴로 이어집니다. 그저 돈만 보고 움직이는 겁니다. 꼭두각시 인형이 따로 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창의성’마저 질식시키는 게 인센티브입니다.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는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니 케케묵은 과거의 경험만 답습합니다. 혁신의 실종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의 목적’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고객행복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받으려 일을 하는 겁니다. 만약 이 둘 간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승리는 항상 후자의 것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행복 따위야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겁니다. 인센티브의 역설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덧붙입니다. 성인지치(聖人之治) 허기심(虛其心) 실기복(實其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성인의 정치는 사람들의 헛된 욕심을 비우고 근원적인 만족을 이루어주며, 허망한 뜻을 약화시키고 본질적 뼈대를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상사민무지무욕(常使民無知無欲). 결국, 백성들로 하여금 허상과 허업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 뿌리 차원에서의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게 성인의 정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시대의 경영리더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경영을 타사와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이기려고만 듭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당근을 흔들고 채찍을 휘두르니 부작용만 생겨납니다. 경영은 경쟁사를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고객가치 창출’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객가치를, 얼마나 잘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게 경영입니다.  


위무위즉무불치(爲無爲則無不治). ‘무위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노자의 통찰. ‘무위’는 나의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겁니다. 세상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겁니다. 일 역시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닙니다. 기꺼이 하게 만드는 겁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직원들의 업무를 ‘비윤리적 생존경쟁’이 아니라 ‘행복한 성장체험’으로 바꾸어주는 것, 이 시대 혁신리더의 역할입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동아비즈니스리뷰 2019. 12월 286호 https://dbr.donga.com/article/view/1306/article_no/9388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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