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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010] 나는 유튜버다!

[국제신문 연재] 안병민의 세상읽기

국제신문 2020년 5월 14일자 18면에 실린 <세상읽기> 연재칼럼입니다.


또 말이 엉켰다. 벌써 세 번째다. 정돈된 머리 속과 달리 입으로 뱉어내는 언어는 자꾸 뭉그러진다. 마음 같지 않기로는 편집도 마찬가지다. 촬영한 영상을 자르고 붙이고, 자막을 넣고, 배경음악을 깔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이 모든 게 코로나19 ‘때문’, 아니 코로나19 ‘덕분’이다.


“유튜브, 안 하세요?” 지인들의 권유성 질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들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모모 기업들의 의뢰로 지금껏 꽤나 많은 동영상 강의를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혼자 떠드는 강의는 참으로 민망했다. 완벽한 혼잣말.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 위에 혼자 선 느낌이랄까.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함께 호흡하는 오프라인 강의와는 전혀 다른 문법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오프라인에서의 강의와 자문, 거기다가 써야 할 글과 책 등, 일은 많았다.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부러 할 이유가 없었다. 유명 유튜버 사례는 흥미로운 마케팅 연구주제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올 봄,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잇따르던 강의와 자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끊겨 버렸다. 섭외와 요청의 연락 대신 취소와 연기의 연락들이 이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다 이름 모를 어느 시대에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새로운 변화를 우리의 뇌가 불편해 해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들도 ‘경험의 감옥’에 쉬이 갇히는 이유다. 평화롭던 나의 일상이 어느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다. 답습의 결과이며, 혁신의 이유다.


“지금까지 매일 주인이 맛난 먹이를 주었으니 오늘도 그러겠지.” 칠면조의 생각은 틀렸다. 주인은 칠면조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알량한 경험에서 나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는 칠면조의 우화다.


“‘80년 노동’ 시대엔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자기발전을 하고, 재교육을 받고, 자기 자신에게 재투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일의 미래>의 저자,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말이다. 60살까지 일하다 80살에 삶을 마무리했던 건 옛날 얘기다. 바야흐로 ‘100세 수명 시대’. 이제는 100년을 살면서 80년을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직장에서 한 업무로 평생을 일하다 정년 퇴직하던 삶의 패턴은, 그래서 유효기간이 끝났다.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계속 추가해 나가야 한다. 특정 주제를 정해 3~4년을 공부하고 또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학습법이다. 어제의 나와 결별함으로써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혁신이다.


지금껏 '혁신가이드'를 자처하며 많은 기업과 조직의 리더와 CEO에게 혁신을 역설했다.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로 변화를 읽어내고, 유연하고 민첩하게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쓰고 말했다. 그런데 웬걸, 나 자신이 ‘어리석은 칠면조’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튜브를 외면했던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거다. 어제의 방법으로 오늘을 살면서 전혀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 사랑을 원한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혁신도 그렇다. 나를 가두고 있던 구습(舊習)의 상자를 깨부숴야 한다.


춘래불사춘.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 모든 것을 바꿔 놓아서다. 대면접촉의 비즈니스와 연관산업이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언택트(Untact)’ 세상에서 ‘콘택트(Contact)’만 고집해선 미래가 없다. 그래서 도전한 작은 혁신, 유튜브! 막상 해보니 또 못할 것도 없다. 준비물은 한 뼘 크기의 용기 한 조각. 가볍게 시작해서 즐겁게 이어가는 혁신 놀이다.


2020년 봄을 기점으로 세상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혁명적 변화의 결과다. 늘 그렇듯이, ‘변화’가 문제라면, 해답은 ‘혁신’이다. ‘○○ 때문에 억지로’ 해서는 혁신일 수 없다.  ‘○○ 덕분에 기꺼이’ 해야 혁신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오늘도 유튜브 바다를 신나게 헤엄쳐 다니는 이유다. 연구와 강의, 자문과 저술이라는 내 커리어에 또 하나 추가된 한 줄. 이제 나는 유튜버다. 코로나19 덕분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방구석 5분혁신-안병민TV]-코로나와 언택트, 네 가지 Biz 시사점은? https://youtu.be/DFrnlrtI3Ho


*국제신문 2020년 5월 14일자 18면 <세상읽기> 연재칼럼 https://bit.ly/3bzLdF8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혁신가이드안병민TV>를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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