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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012] 이상하고 볼 일이다!

[국제신문 연재] 안병민의 세상읽기

국제신문 2020년 9월 2일자에 실린 <세상읽기> 연재칼럼입니다.


투명한 유리병 하나. 바닥을 햇빛이 좋은 창 쪽으로 향하게 뉘어놓고 벌 몇 마리를 집어넣는다. 밝은 쪽으로 가면 출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 똑똑한 벌은 빛이 비치는 바닥 쪽으로 몰려간다. 하지만 한참을 날아다녀도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반면 벌만큼 똑똑하지 않은 파리는 출구를 찾아 종횡무진 온 데를 날아다닌다. 벌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결국 병을 빠져나오는 건 파리다. 답을 ‘아는’ 벌과 답을 ‘모르는’ 파리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린다. 톰 피터스의 역저 <초우량기업의 조건>에 나오는 벌과 파리의 이야기다.


어떤 회사의 성공 전략이 다른 회사에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사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업종이 다르고, 맥락이 달라서다. 죽음에도 각자의 방식이 다르다. 사람은 무거운 돌덩이를 몸에 묶어 바다로 뛰어들어야 죽는다. 물고기는 반대다. 풍선을 몸에 묶어 물 밖으로 떠올라야 한다. 세상 78억 인구 중 나와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나란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뿐. 그러니 가장 나답게 행동할 때 가장 독창적일 수 있다.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방식이라서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쳐다볼 필요도 없다. 받아 든 저마다의 문제지가 다르다. 옆사람 것 보고 베껴 써봐야 결과는 꽝이다. 내게 맞는 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한 컵의 물과 금반지도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른 법. 무인도에 표류해 며칠을 굶은 이에게 금반지는 무용지물이다. 그에겐 물 한 컵이 훨씬 소중하다. 내 입장에서의, 내 관점에서의 주체적 판단이 필요하단 얘기다. 노자는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라 했다. 도덕경 2장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걸 나도 그렇다고 하면 나쁜 일이다. 세상 모두가 좋다고 하는 걸 나도 좋다고 하면 그 역시 나쁜 일이다.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함은 저마다의 기호와 취향이 있으니 일률적인 기준으로 칼로 무 자르듯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획일적 기준에 대한 노자의 비판적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숨기고 산다. 대세를 살펴보고 거기에 편승한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게 두려워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면 편하게 묻어갈 수 있어서다. 내 생각과 내 느낌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저 남의 눈치만 살핀다. ‘기준’은 그래서 권력이 된다. 기준에서 벗어나면 비난이 쏟아진다. 끊임없이 기준을 살피고 확인하는 이유다. 내가 튀어 보이지 않을까 두려운 거다. 남의 눈치 보며 남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자기검열의 삶에 나는 없다. 내가 없는 내 삶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외부의 지식과 경험, 기준으로 지어놓은, 마음 속 틀을 깨부숴야 한다. 노자는 그걸 ‘무위(無爲)’라 했다. 비우고 내려놓는 거다. 부질없는 틀을 깨고 나오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무위를 통해 만나는 ‘참나’다.


벤치마킹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다른 이의 성공 방식을 답습해봐야 별무소용이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사물의 성질은 변한다. 회남(淮南)의 귤을 회북(淮北)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 내 일과 삶의 경영도 마찬가지다. 남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건 나다운 삶이 아니다. 내 생각을 생산해야 한다. 내 정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 정답은 정해진 하나가 아니다. 내가 갈 길, 내가 만들면 그 또한 정답이다. 그게 내 삶의 주체로 사는 길이다. 남들 마음에 들자고 사는 인생이 아니다. 한 방향으로 달리는 일방적 궤도에서 살짜쿵 떨어져 나오면 나름의 재미와 의미가 쏠쏠하다.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면, 우리는 ‘이상(異常)하다’ 말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는 의미다. 기계적 일사불란함이 필요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개개인의 개성과 색깔, 창의가 필요한 세상이다. 이상함 속에 녹아있는 혁신의 씨앗에 주목해야 한다. 이상해야 '차별화'고, 이상해야 '혁신'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이상하자. 각자의 방향으로 이상하자. 내 일과 내 삶의 경영혁신? 이상하고 볼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자세한 내용은 <그래서 캐주얼>(bit.ly/그래서캐주얼)을 참조하세요.

#내가나로살지못하는좀비인생탈출법 #이상하자일탈하자도전하자행복하자 #내삶의경영혁신 #그래서캐주얼


*국제신문 2020년 9월 2일자  <세상읽기> 연재칼럼 https://bityl.co/3JEn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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