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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48] 힘내어 다시, 혁신이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20년도 10월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경영수다> 칼럼입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민정 시찰을 종종 다녔던 조선조 어느 임금. 하루는 허름한 초가 움막집 앞을 지나는데,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물 한 사발 청하며 동정을 살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들의 표정이 밝고 맑다. "웃음이 그치질 않던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형편은 이래도 빚도 갚고 저축도 하며 살 수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납니다.” 혹여 숨겨둔 재물이 있나 조사를 했건만 허탕.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왕이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재차 물었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이 빚을 갚는 것이고, 내가 늙어 의지할 아이들에게 효의 모범을 보여주니 이게 저축이지요. 그러니 절로 웃음이 날 수 밖에요.” 집주인의 대답이었다.


행복은 재물과 권세에 비례하지 않는다. 동서를 막론한 고금의 진리다. 노자 역시 일찍이 이를 설파했다. 도덕경 12장에서다.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롱 오미영인구상(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화려한 색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화려한 음악이 사람의 귀를 멀게 하며, 화려한 음식이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 화려한 색깔과 소리와 음식은 말초적 쾌락이다. 실체가 아닌 허상이다.


노자의 고언은 이어진다. “치빙전렵영인심발광 난득지화영인행방(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말 달려 사냥하는 쾌락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얻기 힘든 재물이 사람의 행동을 망친다. 헛된 욕망에 대한 경계다. “시이성인위복불위목(是以聖人爲腹不爲目).” 고로 성인은 ‘눈’이 아닌 ‘배’를 따른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착시는 그 방증이다. 인간의 감각이란 그만큼 불완전하다. 반면, ‘배’는 실질이고 뿌리다.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림이 없다. 나로서 온전히 설 수 있다.


도덕경 12장의 메시지는 넓고, 깊고, 크다. 단순히 금욕하라는 교훈에서 멈추지 않는다. 리더라면 읽어내야 할 숨어있는 지혜와 통찰이 있다. 그 압축적인 표현이 마지막 문장 ‘거피취차(去彼取此)’다. ‘저것’(허상)을 버리고 ‘이것’(실재)을 취하라는 노자의 일갈이다. ‘저것’은 멀고 ‘이것’은 가깝다. ‘저것’은 부박한 욕망이자 허상이다. 실체 없는 개념이자 곁가지다. ‘이것’이 본질이고 실재이고 뿌리이고 핵심이다. 요컨대, 저기 멀리 있는 ‘껍데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내 눈 앞의 ‘알맹이’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리더 입장에서 초점을 맞추어야 할 ‘알맹이’는 크게 두 개다. 먼저, ‘내 삶의 주인, 나’다. 내 삶의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그냥 간다. 그저 간다. '이게 뜬다' 하면 이리 가고, '저게 뜬다' 하면 저리 간다. 남들 가는 대로 간다. 남들이 가라는 대로 간다. 내 생각이 없으니 남의 눈치만 살핀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며 사는 거다. 돈은 얼마나 많은가? 지위는 얼마나 높은가? 권력은 얼마나 강한가? 내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성공 기준이다. 성공하기도 힘들뿐더러 성공해 본들 내 것도 아니다. 나로부터 비롯된 기준이 아니라서다. 외부의 기준이 내면화되면 내 삶에서 나는 사라진다. 허깨비로 사는 삶이다.  


내 방향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게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거다. 주인 된 삶은 방향이 뚜렷하다. 성공의 기준 또한 명확하다. 성공은 ‘맞고 틀림’의 정오 개념이 아니다. ‘낫고 못함’의 우열 개념도 아니다. 내 삶의 목적이 완성되고 내 존재의 이유가 증명되면 그게 성공이다. 그러니 리더라면 생각해야 한다. 단지 권력을 누리고 재물을 취하려 리더가 된 것인가? 나의 진짜 목적지는 어디인가? 세상을 위해, 조직을 위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리더로서의 나의 방향이다. 리더의 방향은 곧 조직의 방향이 된다. 나아갈 방향을 아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은 시쳇말로 ‘클라스가 다르다’.


“좋은 메이크업은 무조건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메이크업의 시작은 ‘관찰’이에요. 우선 나부터 자세히 관찰해보면 어떨까요.”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원장의 말이다. 정원장의 ‘자기관찰론’은 비단 메이크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리더의 자기인식과 방향 설정에도 유용하다. 저마다 고유의 색과 선, 그리고 결이 있다. 그걸 살려내야 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리더의 길? 나로 사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울 정도로 팽팽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지도보다 나침반이 중요한 이유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북극성을 찾아야 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온 몸으로 증명해내는 것. 그게 내 삶의 북극성이다. 그게 내 삶의 ‘알맹이’다. 진북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갈 때 ‘껍데기’의 유혹은 힘을 잃는다. 그런 나의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 그들이 내 일과 삶의 고객이 되고, 동료가 된다.


리더가 취해야 할 두 번째 ‘알맹이’는 ‘지금 여기, 실재(實在)’다. 무쌍한 변화가 눈 앞에서 펼쳐진다. 변화에 마주한 사람들은 ‘지식’을 꺼내든다. ‘이론’을 뒤적인다. ‘경험’을 들먹인다. 지식과 이론과 경험은 오늘의 실재들이 쌓여 만들어진, 과거의 산물이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바라보니 아귀가 안 맞는다. 개념의 감옥에 갇힌 책상물림의 한계다. 혁신이란, 변화에 대한 응전이다. 변화는 미래를 향해 내달리는데 대응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이건 혁신일 수 없다. 결과는 봉변이다.


새로운 걸 얻으려면 가진 걸 버려야 한다. 과거를 버려야 미래를 얻을 수 있다. 이론을 버려야 실질을 취할 수 있다. 격변의 시대, 지식은 외려 저주다. 경험은 외려 족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없던 길이 생겨나고, 있던 길이 사라져서다. 우리가 네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는 이유다. 리더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고 있다. 허공을 떠다니던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밟고 서야 한다. 손에 잡히는 생생한 혁신은 오늘의 변화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암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딱 10년 전 일이다. 대장암 3기라 했다. 당시만 해도 생존율이 50%였다. 용케 알고 몇몇 지인들이 병문안을 왔다. 죽음의 문턱에 선 이에게 내일은 보장되지 않는다. 퇴원해서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 집중했다. 시간의 밀도가 높아졌다. 내일은 항상 오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 없이 내일은 없다. 그러니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야 한다. 눈 앞의 실재에 몰입할 일이다.


'내 삶의 주인 되어 나의 방향을 설정하라’, ‘지금 여기, 실재를 껴안아라’. 도덕경 12장에서 찾아 읽는, 혁신 리더 노자의 가르침이다. 덕분에, 희미했던 길이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힘내어 다시, 혁신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포춘코리아 2020년도 10월호 칼럼 보기 : https://bityl.co/3iH0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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