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경영 11] 사장의 자격-뿌리로 돌아가라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대개 돈 벌려고 기업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이 단지 돈때문에 운동하고 예술하는 건 아니죠. 그게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잘할 수 있게 돼서 돈을 버는 겁니다. 기업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돈 좇아서 기업한 적 없습니다. 좋은 기업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돈이 따라왔습니다.” 어느 성공한 중견기업 CEO의 말이다.

세상만사 뿌리가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래서 뿌리는 근본이고 토대이며, 핵심이고 본질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이유다. 자란다고 해도 쉬이 휘어지고 쉬이 부서진다. 열매는 말 할 것도 없다.

노자도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덕경 16장에서다. 귀근왈정 정왈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歸根曰靜 靜曰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 고요함이라 한다. 고요함이란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 ‘상(常)’이고, ‘상(常)’을 아는 것이 ‘명(明)’이다. 세상에 나올 때 타고 태어난 나의 소명, 즉 나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섭리인 상(常)이니, 결국 뿌리로 돌아가라(歸根)는 얘기다.

경영혁신에도 뿌리가 있다. 핵심은 뿌리인데 다들 가지에만 집착한다. 집을 새로 고친다 가정하자. 도배를 새로 하거나 조명을 바꾸는 건 집의 본질적 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근원적 가치를 올리는 건 상하수도 공사 혹은 전기 배선 공사다. 이게 뿌리혁신이다. 그런데 뿌리를 놓친다. 보아내지를 못 한다. 땅 밑에 있어서다. 그걸 보아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짜 혁신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새로운 인재를 채용한다고 혁신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가지 차원의 개선으로는 비즈니스의 본원적 가치를 제고할 수 없다. 뿌리부터 혁신해야 한다. 다른 것 없다. 내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의 목적을 찾는 거다. “이 일을 왜 하는 거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내가 빚어내는 브랜드와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존재이유를 찾는 거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그러니 다들 외면한다. 어차피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넘어간다. 가지만 그럴 듯 하면 될 것 같아서다.

“똑같은 기계라도 정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목걸이 제조에 열 두 공정을 거쳐야 하면 경쟁사들은 아홉 공정만 하는 식이지요. 생산단가를 낮추는 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제품을 고객에게 선물하는 게 목표인데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이재호 리골드 회장의 말이다. 1985년, 홀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선진 체인 생산기술을 배웠다. 귀국하며 최신 기계 설비도 도입했다. 경쟁사 사장들을 초청하여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최신 설비 견학을 시켜줬다. 업계 품질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목적의 부재 탓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서 내 애인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이재호 회장이 얘기하는 일의 목적이다.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시장 1위 귀금속 생산기업 리골드를 일구어낸 비결은 다름 아닌 뿌리, 즉 일의 목적이었다.

“댄서에 대한 대우는 참 열악했다.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후배들에겐 다른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다.” ‘K팝 안무장인’으로 불리는 야마앤핫칙스 배윤정 대표가 말하는 일의 목적이다. 그가 오늘도 춤을 추고 안무를 짜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목적이 있으니 그의 일은 더 이상 일이 아니다. ‘배윤정’이라는 브랜드의 존재이유를 실재화하는, 신나는 도전의 여정이다.

2018년 미국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샌드라 오.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이민 2세대였던 그 역시 얘기한다. 아시안 친구들이 오랫동안 연기를 꿈꿀 수 있는 롤 모델이 되겠다고. 그게 내가 더 열심히 연기하는 이유라고. 세계 최고령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스시 장인 오노 지로는 그 정점이다. 죽는 날까지 어제보다 더 나은 스시를 만드는 게 인생의 목표란다.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도 마시지 않는 그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계절에 상관없이 장갑을 끼는 그다. 삶의 불편을 기꺼이 떠안는 이유는 하나다. 어제보다 더 나은 스시를 만들겠다는, 내 일의 목적을 위해서다. 이 정도면 그저 그런 스시를 만드는 요리사 클래스가 아니다. 예술의 경지를 노니는 명인이요 장인이다.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잡(job)은 일, 업무다. 크래프트(craft)는 공예다. 내 일에 의미를 더해주는 업무 재창조를 통해 일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거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송이가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마당을 쓸었습니다’ 중 한 대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마당을 쓴다. 하지만 왜 쓰는지 이유를 모른다. 목적이 없다. 그저 상사가 쓸라고 하니 억지로 쓰는 거다. 그러니 입이 이만큼 튀어나와 있다. 하지만 이 시의 화자는 다르다. 내 일의 목적을 안다. 마당을 쓰는, 아주 하찮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단지 마당을 쓰는 게 아니다. 지구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해주는, 높이와 깊이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그는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 나의 존재이유를 세상에 웅변하는 과정이라서다. 목적이 있냐 없냐, 목적을 아냐 모르냐는 이토록 차이가 크다. 그래서 목적이 뿌리다.

대도심이 이민호경(大道甚夷 而民好徑). 도덕경 53장이다.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하나 사람들은 비탈진 샛길을 자꾸 찾는다. 눈 앞의 욕심 때문이다. 내가 현대차를 사는 이유는 현대차 사장 돈 벌게 해주려 함이 아니다. 삼성TV나 LG냉장고를 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뭔가 내게 가치가 있으니 사는 거다. 나의 고객도 똑같다. 내 이익을 위해 하는 사업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줄 고객은 없다. 내 이익을 앞세울수록 고객은 저만치 멀어져 간다.

CEO라면 더 크게, 더 멀리, 더 높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뿌리가 보인다. 내 일을 통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가치를 제공하면 고객은 절로 나를 찾는다. 잘 산다는 건 결국 남을 돕는 경쟁이다. 어떻게 하면 남을 잘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내 가치는 남에게 쓰이는 만큼 높아진다. 나의 제품과 나의 서비스를 경험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고객을 떠올려보라. 그 상상이 행복한 사람만이 사장의 자격이 있다.

“나는 매일 우리 고객사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랬더니 우리 회사가 절로 잘 되더라는 겁니다.” 어느 B2B 비즈니스기업 CEO의 말이다. 어려울 것 없는 퍼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일의 목적! 뿌리가 있어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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