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은 초로의 아들. 아들도 못 알아보는 늙은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아들은 급히 엄마를 찾았는데, 태연스레 병원 앞에서 눈을 쓸고 계신다. “뭐 하시는 거에요?”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 가야 하는데,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화면은 아들의 과거를 비춘다. 어릴 적 사고로 다리 한 쪽을 크게 다쳐 불편한 다리로 학교를 다녀야 했던 아들. 그런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아들이 넘어져도 혼자 일어나라며 손을 내어주지 않았던 엄마. 그런 아들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학교를 가는데, 이상하다. 비탈길 눈이 다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도대체 누가 매번 이렇게 눈을 치웠지?
그 궁금증이 근 오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풀린 거다. 엄마가, 바로 내 엄마가 그 눈을 치웠던 거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학교 가면서 비탈길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길을 쓸었던 거다. 머리가 허옇게 센 아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다 이내 흘러 내린다. 힘겹게 꺼내놓는 아들의 한 마디. “아들은 몰라요, 그거.” 하지만 엄마는 상관없다.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추우실 텐데 이제 그만 쓸라는 아들의 말에 엄마가 또 대답한다. “아니에요. 눈이 계속 오잖아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들이 다시 말한다. “아드님, 한 번도 안 넘어졌대요. 눈 오는데, 한 번도 안 넘어졌대요.” 아들을 못 알아보는 늙은 엄마는 그 말에 활짝 웃는다. “정말요? 아, 다행이네요.”
JTBC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이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안 넘어졌다면 그걸로 된 거다. ‘이 엄마가 이렇게 고생한 걸 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거다.
리더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생색 내려고 리더의 왕관을 쓴 게 아니다. 누가 알아주건 몰라주건 아무 상관 없다. 그저 리더로서의 내 할 일, 묵묵히 하는 거다. 성과가 나면? 좋다. 그걸로 되었다. 그뿐이다.
백성들이 친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 하는(親之譽之) 리더, 이게 좋은 리더다. 그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畏之) 리더, 그 다음은 백성들이 업신여기는(侮之) 리더 순이다. 여기까지야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첫 머리다. 최고의 경지는 백성들이 그 존재만 아는(下知有之) 리더라고? 요령부득이다.
다행히 노자는 다음 구절에 그 힌트를 놓아두었다. 공성사수 백성개위 아자연(功成事遂 百姓皆謂 我自然).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무리되고 나니 백성들이 말한다. ‘우리는 원래 이랬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다. 죽을둥살둥 피땀 어린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했더니 자기네들이 잘해서 그런 거란다.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보자. 리더의 공치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거다. 그렇게 보면 리더 입장에선 억울할 게 없다. 리더의 존재이유는 조직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서다. ‘누가 알아주고 말고’에 연연한다면 그는 이미 리더가 아니다.
‘공성사수 백성개위 아자연’이란 문장에는 노자의 이처럼 깊은 통찰이 숨어있다. 내 공을 몰라준다고 백성들 원망하지 말란 얘기다. 그래서 리더십은 짝사랑이다. 마침 여기에 맞춤하는 공자 말씀도 있다. 불환인지부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근심하지 말란다. 내가 남을 몰라볼까 근심하란다. 논어 ‘학이’편이다.
“야구는 감독의 스포츠”라 역설하던 야구감독이 있었다. ‘야신’이라는 별명에 빛나던 그는 팀을 맡는 족족 상위권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말년은 어두웠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이었던 그는 팀으로부터 쫓겨나듯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그의 야구는 몰 인간적이고 폭압적이고 비민주적이라고 비판 받았다. 필드의 선수들을 장기판의 졸로 바라보았던, 왜곡된 시각과 일그러진 고집 탓이었다. 현대 야구의 특징은 ‘관리야구’에서 ‘자율야구’로의 변화다. 프로선수는 감독이 차고 앉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하는 아마추어 학생이 아니다. 자기와의 힘든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냉철한 승부사다. 그런 그들에게, 철부지 아이 다루듯 ‘관리’의 프레임을 들이댄 거다. 주체성의 박탈이다. 열정의 거세다.
복잡다단한 세상, 리더가 모든 걸 챙길 수 없다. 리더 혼자 북 치고 장구 쳐봐야 헛일이다.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목표 달성은 물 건너간다.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하는 이유다. 권한 위임은 그래서 중요하다. 믿고 맡기는 거다. 하인은 시켜야 움직이지만 주인은 알아서 움직인다. 자발적으로 일한다. 선제적으로 일한다. 주인 된 직원들이 조직의 값진 성과를 빚어내니 그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이게 ‘아자연(我自然)’의 참뜻이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커다랗게 존재하는 거다. 그게 진짜 리더다.
리더의 존재감과 조직의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핵심은 리더 존재감의 크기가 아니라 조직 목적의 달성 여부다.
다시 ‘하지유지’로 돌아간다. 이제서야 노자의 깊은 뜻이 보인다. 있는데 있음을 잘 모른다? 그저 있다는 것만 안다? 그래, 물이었구나! 우리의 모든 걸 아우르기에 이것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이기에 그 중요성을 잊고 사는 거다. 이를테면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다. 물과 공기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하지만 평소에 물과 공기의 존재감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해서다.
태평성대에는 임금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저 임금이 있다는 것만 안다. 먹고 사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으니 날마다 실컷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삶이다. 최고의 리더십이란, 이런 거다.
내 일상에 들어와 내 일과 삶을 떠받치는 리더. 그 존재는 익히 알지만 그 존재감을 기억하기는 힘든 리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 있음을 뽐내지 않는 리더. 그래서 어디에나 존재하되 어디에도 없는 리더. 노자가 말하는 최고의 리더, ‘하지유지’의 리더다.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있으되 없어야 할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