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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5] 해 나오면 소금, 비 내리면 우산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벼락 맞은 대추나무’라는 카페가 있었다.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으면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의 심정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벼락처럼 세상에 불어닥친 변화 덕분(?)이다. 멀쩡하던 직업이 사라지고, 잘 나가던 기업이 죽을 쑨다. 아날로그로 이루어지던 모든 것들이 디지털로 바뀌는 혁명적 변화 때문이다. 설상가상,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까지 덮쳤다. 호모 마스쿠스(Homo Maskus)의 등장. 마스크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는 요즘이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다. 위기이다!


어떤 일이 그 진행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악화된 상황, 또는 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 고비. 사전은 위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야 한다. 이면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위기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말이다. 위기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위기는 가치중립적이다. 주어진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지, 위험의 수렁으로 만들지는 각자의 몫인 셈이다.


소금장수에게 비는 재앙이지만, 우산장수에게 비는 축복이다. 비는 그저 비일 뿐이다. 좋은 비, 나쁜 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맞지 않는 복장이 있을 뿐이다. 날씨는 계속 변한다.” 스코틀랜드 속담이다. 날씨 탓할 것 없다. 날씨에 맞춤하는 옷을 입으면 될 일이다. 해 나오면 소금 팔고, 비 내리면 우산 파는 거다.


노자형님도 그랬다. 만물부음이포양(萬物負陰而抱陽). 세상만물은 음(陰)의 기운을 등에 진 채 양(陽)의 기운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무 자르듯 쉬이 구분되지 않는 삶의 역설이다. 음과 양이 한덩어리이듯 기회와 위험의 뿌리 역시 다르지 않다.


위기를 빚어내는 무심한 변화.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나에게 우호적인 변화인지, 나에게 적대적인 변화인지 감별해야 한다.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다. 도덕경 58장이다.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행복은 재앙 속에 기대어 있다. 재앙은 행복 안에 숨어 있다. 정복위기 선복위요(正復爲奇 善復爲妖). 바른 것이 기괴하게 변하고, 선한 것이 요사하게 변한다. 숙지기극 기무정(孰知其極 其無正).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 끝을 누가 알 것인가? 그래서 중요한 게 '환경독해력'이다. 리더는 변화와 함께 변화의 방향을 읽어내야 한다. 내가 가진 역량을 무력화시킬 변화라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환경독해력’과 함께 위기 대처에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회복탄력성’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어느 누구는 툭툭 털고 일어난다. 어느 누구는 주저앉아 일어나질 못한다. 넘어진 건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다시 일어서지 않는 거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여기, 몇 개의 사례를 가지고 왔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탄력적 회복의 사례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스타벅스 매장. 누군가를 기다리며 주문 없이 앉아있던 흑인 두 명을 매장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수갑까지 채워져 연행됐던 이들.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논란은 커졌다. 당시의 현장 상황을 담은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 사건은 인종차별 논란으로 비화되었다. 시민들의 시위. 이어진 스타벅스 불매운동. ‘반(反)흑인커피’라는 낙인까지 따라붙었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스타벅스의 대응은 빨랐다. 케빈 존슨CEO가 직접 당사자를 만나 사과했다. 방송에도 출연해 거듭 머리를 숙였다.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역사회 리더들과 대책 협의도 이어갔다. 압권은 영업 중단이었다. 8천개 매장의 문을 닫아걸고 18만명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종 차별 예방 교육을 실시한 거다. 엄청난 매출과 수익을 포기한, 진정성을 담은 특단의 조치로 스타벅스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고객으로 하여금 스타벅스의 비즈니스 철학과 진정성을 알게 한 것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저가시계의 무차별 공세로 위기에 직면한 스위스 시계 산업. ‘스위스 시계’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의 스와치그룹은 특유의 역발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시계를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춰 착용하는 패션소품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살 수 있게 했다. 고가 시장도 포기하지 않았다. ‘3단 케이크’ 전략을 통해 저가에서 고가, 최고가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브랜드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지금의 스와치그룹은? 21개의 시계 브랜드를 거느린 세계 최대의 시계기업이다. 기회로 귀결된 위기였다.


실패가 병가의 상사이듯 위기는 경영의 상수이다. 위기때마다 뒤로 나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벗(pivot)’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피벗은 한 발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는 걸 일컫는 단어다. 농구 등의 구기종목에서 주로 쓰던 이 말이 지금은 경영 현장에서 더 많이 들린다. 이름하여 ‘비즈니스 피벗’.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방향을 틀어 새로운 변화를 꾀함을 가리킨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생존을 위한 혁신의 몸짓. 이게 피벗이다.


대표적인 사례? 유튜브다. 초기 유튜브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였다. 자신의 프로필을 비디오로 찍어 업로드하는 소개팅 사이트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로의 피벗이었다. ‘당신’을 가리키는 ‘유(you)’와 ‘텔레비전’을 가리키는 ‘튜브(tube)’가 합쳐진 단어 ‘유튜브’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텔레비전'이 되었다.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가 내 생각엔 최고의 서비스라고 생각되어도 포기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그만둬야 한다. 더 좋은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피벗의 효용을 강조한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의 말이다.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며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넷플릭스 역시 시작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DVD를 우편으로 빌려주었다. 구독료를 받고 연체료를 없앴다. 파격적이었던 이 모델을 경쟁사들은 금세 따라했다. 위기를 맞은 넷플릭스는 전혀 다른 차원의 피벗을 시도한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구매한 콘텐츠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하던 넷플릭스는 가입자가 급증하자 자체 콘텐츠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 해 콘텐츠 제작비만 17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하니 이젠 단순한 스트리밍 회사도 아닌 셈이다. 변화가 상수이다 보니 혁신을 위한 넷플릭스의 피벗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인스타그램도 있다. 인스타그램은 위치기반 서비스로 시작을 했다. GPS 기능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찍고 사진을 공유하면 포인트를 얻는 방식의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이용자들의 사용행태를 보니 위치 서비스는 뒷전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서비스의 무게중심을 ‘위치’에서 ‘사진’으로 옮겼다. 이후 10억 달러에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던 페이스북의 한 수는 신의 그것이었다.


결론이다. 거듭 역설했다. 위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못 살리는 게 문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위기를 위험으로 만드는 게 문제다. 윈스턴 처칠은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고 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변화(change)’ 속에 ‘기회(chance)’가 있다. ‘g’를 ‘c’로 바꾸면 될 일이다. 그 기회의 주인공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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