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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4] 혁신이 문제라면 아이가 스승이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작위적인 계획이나 의도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니 삐걱대지 않는다. 물 흐르듯 쉬이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의식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날 것 그대로의 편안한 표정이자 몸짓이다. 눈치 채셨겠다. 맞다, 아이의 모습이 이렇다. 무욕(無慾), 무위(無爲), 무언(無言), 허(虛), 유(柔)의 덕목을 중히 여기는 노자형님은 아이를 성인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본다. 도덕경에 아이를 귀히 여기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오는 이유다. 아이 특유의 천진함과 무구함을 높이 사는 거다. 도덕장 55장이 그러하다.


함덕지후 비어적자(含德之厚 比於赤子). 덕을 두텁게 품고 있는 이는, 비유컨대 어린 아이 같다.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蜂虺蛇不 猛獸不據 攫鳥不搏). 벌이나 전갈, 독사도 물지 않는다. 사나운 짐승도 덮치지 않고, 힘센 새도 채가지 않는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서다.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니 어색함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말한다. 따로 놀지 않는다. 자연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니 위해를 가할 이가 없다.

 

아이의 이런 모습은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먼저, 동심이 빚어내는 놀이정신이다. 호모 루덴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놀이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아이에게서 두드러진다.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지루한 걸 못 견딘다. 재미를 좇는다. 동심이다. 동심은 예술로 이어지는 창의의 원천이다.  

 

장면 하나. 열 살을 조금 넘겼을까? 두려움과 호기심, 설렘으로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창 밖으로 도망치려는 탈출의 장면. 자세히 보니 창틀은 액자다. 액자 속 그림으로부터 현실 세상으로 빠져나오려는 모습이다. 액자인 줄 알았던 프레임부터가 이미 그림이다. 그림의 제목?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이란다. 제목에서부터 세상을 비틀어 보는 재미 요소가 가득하다. “너희가 뭔데 감히 나를 비평해? 그래봐야 쓸데없는 짓이야. 난 지금 이 그림에서 탈출할 거니까.” 아이의 앙다문 입술에서 화단의 무시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작가 페레 보렐 델카소의 놀이정신이 반짝인다.

 

트롱프뢰유. '눈속임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액자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그림의 경계를 무너뜨린 그림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은 트롱프뢰유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로는 솔거가 있다. 신라의 화가였던 솔거가 벽에 그려놓은 나무. 그 나무가 진짜인 줄 알고 새들이 날아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는 얘기. 착시를 이용한 트롱프뢰유에 담긴 근원적 감성은 재미다. 사람들을 깜짝 놀래 주려는 장난끼 말이다. 눈 앞의 실재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들. 보는 이도 재미있어 하고, 그린 이도 재미있어 한다. 놀이정신이 빚어내는 재미다.

 

엄격한 형식미를 갖춘 그림들과 달리 서민의 풍속을 묘사한 우리의 민화에도 재미 요소는 차고 넘친다. 일상 속 삶의 조각들을 스냅샷처럼 생생하게 포착해서 그려낸 그림들. 순수하다. 소박하다. 그 한 켠에 풍자와 해학이 녹아 있다. 아이들 특유의 장난끼가 살포시 더해지니 보는 이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풍속화,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자. 음력 5월 5일인 단옷날, 계곡에서 몸을 씻고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숨어있는 재미 요소? 몸을 씻는 여인들의 벗은 몸을 훔쳐보는 네 개의 눈동자다. 저 편 바위 틈새로 보이는 동자승 둘. 신윤복이 포착하여 담아낸 풍자와 해학의 재미 요소다. 도화서 화원으로 있다 저속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쫓겨났던 신윤복이다. 고루한 회화의 틀을 와장창 깨부순 혜원의 놀이정신은 장르를 답습하지 않았다. 장르를 창조했다. 재미가 일구어 낸 혁신이다. 놀이정신의 쾌거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작금의 경영환경에서 과거의 답습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다른 관점과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혁신의 씨앗을 보아내는 새로운 렌즈? 놀이정신이다. 전통과 규범이란 틀을 깨고 부수고 비트는 재미 요소가 빚어내는 혁신의 미학이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Every child is an artist).”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기억해야 한다. 어린 시절, 재미를 좇았던 우리는 모두가 예술가였음을. 모두가 혁신가였음을.

 

비즈니스 리더가 아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영감? 솔직함이 만들어내는 도전정신이다. 아이는 솔직하다. 꾸밈없다. 내가 어떤 처신을 해야 할 지, 얄팍한 계산이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바보 같은 행동을 따끔하게 지적한 이는 학식 높고 경험 많은 어른이 아니었다. 아이였다. 임금님이 옷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보이는 대로 얘기한 거다.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 아무 말 못하고 끙끙 속을 끓이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는 시원하게 내지른다. 사이다가 따로 없다.

 

아이는 형을 형이라 부르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른다. 문제는 진실의 눈을 억지로 가려 호부호형을 못하게 했던 당시의 제도였다. 썩어빠진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우리의 홍길동이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이유다. 혁명이었다. 아이의 솔직함은 세상을 향한 이토록 뜨거운 도전이다. 스스로에게 진실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이라서다. 세상의 시선이 허락하든 말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쓰고, 그리고, 노래하려는 영혼의 아우성이라서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 하나로 온 세상을 말춤 열풍으로 뒤집어 놓았던 싸이 역시 홍길동 과(科)다. 싸이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 원색의 욕망 덕이다. 솔직하고 건강한 삶의 에너지 말이다. 싸이는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위선을 벗어 던졌다. 무대 위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친 듯이 놀았다. 아는 척, 있는 척, 가진 척, 우아 떨지 않았다. ‘3류 딴따라’를 자처했던 그의 솔직함은 주류음악에 대한 도전이었다. 무모해 보였던 그 도전이 음악의 기존 틀을 허물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욕망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만들어낸 혁신이었다.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 또 다른 인물이 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이다.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천만에. 앤디워홀은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예술을 산업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고상한 것만 예술이라는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만화와 광고, 코카콜라와 캠벨수프, 앨비스 프레슬리와 마릴린 먼로 등 대중소비의 상징을 모티브로 삼았다. 실크스크린, 스텐실 등 혁신적인 기법으로 이를 표현했다. ‘공장(factory)’이라 이름 붙인 작업장에서 ‘예술노동자(art worker)’들을 고용하여 공산품처럼 작품을 찍어냈다.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부와 명예에 대한 본인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던 앤디워홀의 말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도식적인 예술의 정의를 산산조각 내어버린 그는 현대미술의 전설이 되었다.

 

금기에 도전하는 아이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도덕경에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는 온종일을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고.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終日號而不 和之至也). 온 몸이 이루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조화가 최고의 경지에 달해서란다. 이유를 아는 도전, 목적을 가진 도전은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를 기업가정신이라 부른다.

 

동심, 놀이, 재미, 창의, 순수, 조화, 솔직, 도전, 열정. 아이의 모습에서 찾아낸 혁신 키워드들이다. 도덕경 55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세상 모든 것은 강해지면 곧 늙는다. 도를 따르는 모습이 아니라서다. 도를 따르지 않으면 이내 끝나버린다. 오래 된 화석은 딱딱하기 그지없다. 유연하니 생명이다. 혁신이 절실한 리더라면 아이를 보고 배울 일이다. 아이가 스승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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