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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3]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두 가지 조건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TV (#5분47초#중간관리자가사라진다

https://youtu.be/l4rtEPkoW5Q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는 높고 덕은 귀하다. 하지만 만물에 간섭하거나 군림하지 않는다. 만물이 절로 변화하고 이루어지도록 한다. 절로 그러하게 놓아둔다. 도덕경 51장이다. ‘스스로 그러함’. 세상은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게 운행된다. 자연의 이런 섭리는 인간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경영에 있어 리더십은 하늘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리더십은 간섭하거나 군림하는 게 아니다. 리더십은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 문장 ‘도’와 ‘덕’의 자리에 이처럼 ‘리더십’을 넣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도덕경을 제왕의 텍스트로 톺아 읽는 이유다.

 

통제의 시대는 갔다. 자율의 세상이다. 명령과 수행에는 시간 차가 난다. 시켜서 하면 늦다. 알아서 해야 한다. 비행기가 소용돌이 난기류에 휘말린 일촉즉발의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제탑의 지시만 기다려선 안 된다. 스스로 안정된 고도를 찾아 빨리 이동해야 한다. 상부의 지시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윈도우 속 인형들. 통제의 리더십이 빚어낸 슬픈 풍경이다. 까라면 까야 하니 뭣 하나 맘대로 할 수가 없다. 복지안동.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만 살핀다.

 

관건은 자율경영이다. 직원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자애로운 노자형님은 어김없이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한다. 첫 번째다.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세상을 왜곡하는 불완전한 감각기관의 문을 닫아걸어라. 죽을 때까지 근심 걱정으로 수고로울 일이 없을 것이다.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주관적인 나의 감각을 진실로 믿고 일을 벌이지 말라. 죽을 때까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눈, 코, 입 등 인간의 감각기관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착시 현상이 대표적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같은 길이의 선을 다르게 보기도 하고, 같은 색깔의 면을 다른 색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사과와 양파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우리 인간의 비루한 감각이다. 그걸 진실이라 믿고 결론을 내리니 오산이고, 오판이다. “내 눈으로 보았으니 틀림없어.” 천만의 말씀이다.

 

지혜로운 리더는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 끊임없이 회의한다. 간단없이 의심한다. “시 한 편을 퇴고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미 완성했고 문학 잡지에 발표했는데, 막상 시집으로 묶어 내려니 고민하게 되는 시들이 있다. 그 시를 사흘 밤낮으로 들여다보다 한 글자 고친다. 조사 하나 바꾼 거다. 그러고 나서 한 사흘간 또 그 시를 들여다보다 조사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끝낸다. 결과적으로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사실상 바뀐 거다.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박준 시인의 말이다. 태산 같은 신중함이다. 스스로에 대한 부단한 회의와 의심이 작품의 완성도를 하늘 위로 끌고 간다. 이게 실력이다. 이게 내공이다.

 

직원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의 답만 고집해선 안 된다. 나 역시 틀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내 생각만 강요한다? 폭력이다. 주먹으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다.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에서 신형철 교수는 폭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내 식대로 상황을 정의하고 꼬리표를 붙여버리는 행위 역시 폭력인 거다. 스스로에 대한 바보 같은 확신이 직원들에 대한 심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현장은 회의실이나 사무실에서 보는 모습과는 다르다. 자동차 운전석에 사각(死角)이 있듯 리더의 눈에도 사각은 존재한다. 어제의 상식과 오늘의 표준이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기 힘든 요즘, 사각은 더욱 커진다. 현장의 판단은 현장에 맡겨야 한다. 권한위임이다. 직원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신뢰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를 비우고 나를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입을 닫아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 많이 들을 일이다.

 

자율경영을 위한 노자형님의 두 번째 가이드는?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나에게 작으나마 지혜가 있다면 큰 길을 따라 걸을 것이다. 대도심이 이민호경(大道甚夷 而民好徑). 큰 길은 매우 평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탈진 샛길을 더 좋아한다. 큰 길은 곧게 뻗어 있다. 굴곡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샛길을 찾는다.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 아니라 깨진 바가지 물 새듯 여기저기 그릇된 길로 새나간다.

 

경영을 하는 리더에게 대도(大道), 즉 큰 길이란? 사업의 비전과 미션이다. 현존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롭고 가치있는 솔루션을 찾아내어 제시하는 것. 기업의 존재이유다. 비즈니스의 목적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Vision), 무엇을 할 것(Mission)인가? 우리 일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목적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자율이란 ‘규율이 없음’이 아니다. 무질서나 방종이 아니다. 음악가가 자유로운 영혼을 담아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음과 음표라는 음악적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서다. 미술가가 창의적인 관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선과 색이라는 미술적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서다. 음악을 음악이게 하고, 미술을 미술이게 하는 최소한의 약속. 그걸 지키니 그 안에서 무한대의 상상력이 춤을 춘다.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연주자들이 합을 맞춰보는 사전 리허설 없이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빚어낼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일의 목적을 공유하는 것은 자율경영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어깨 걸고 함께 나아가야 할 우리 비즈니스의 방향이 거기에 담겨서다. 방향만 맞는다면 나머지는 개인의 몫이다. 세부적인 방법까지 일일이 지정해주면 더 낫지 않냐고? 만만의 콩떡이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면, 아이의 자아가 사라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이 없어진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김형석 교수의 물음이다. 직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면, 직원의 영혼은 사라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이 없어진다. 그게 과연 리더십일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자.’ 디즈니의 비즈니스 목적이다. ‘전 세계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구글의 목적이다. ‘더 열린 세상을 만들자,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자.’ 페이스북의 목적이다.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 비욘드미트는 식물성 대체육을 생산한다. 식품 재료로 맛있는 소시지와 고기를 만들어 미래 단백질을 창조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동물 고기에서 식물 고기로 바꾸면 인간의 건강과 기후 변화, 천연자원 절약과 동물 복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욘드미트의 비즈니스 철학이자 방향이다.

 

큰 길, 즉 방향이 정해졌으니 조직은 이제 방향이라는 약속을 공유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 무엇을 들고 갈지, 무엇을 타고 갈지의 판단은 직원 몫이다. 누군가는 지시하고, 누군가는 따르는 위계 조직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실행하는 네트워크 조직이다. 개인의 탐욕때문에 샛길로 빠질 위험도 없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플랫폼의 주인이라서다. 자율경영의 완성이다.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장이자 군사전략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손무도 이야기했다. 승리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전쟁에 뛰어난 유능한 장수(將能)와 군사 지휘를 간섭하지 않는 현명한 임금(君不御)이 그것이다. 전쟁 승리의 요건이나 조직 성장의 비결이나 다를 바 없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게 할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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