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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2] 가뭄을 만난 내 이웃에 손 내밀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나는 ENFP’니 ‘너는 ISTJ’니, 소셜미디어에서 열풍이 불었다. MBTI 검사 말이다. MBTI는 일종의 성격유형 검사다. 두 개의 태도지표(외향-내향/판단-인식)와 두 개의 기능지표(감각-직관/사고-감정)를 조합하여 나의 성격유형을 알려준다. MBTI 성격유형에 맞는 디자인과 컬러를 추천해주며 운동화를 파는 회사도 눈에 띄는 걸 보니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MBTI 뿐만 아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검사가 인기를 끌었다. 내가 나를 몰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권위 있는 연구소 검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가볍게 한번 해보는 거다. 계량화와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확인받으며 자랐던 젊은 세대 특유의 행동양식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봄으로써 스스로를 유형화하는 방식. 자기에 대한 레이블링은 결국 불안한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다. 김난도 교수팀은 이를 ‘진짜 나(Real Me)’를 찾는 ‘레이블링 게임’이라 명명했다.

예전에는 기업들도 MBTI 교육을 많이 했다. ‘아, 이 직원은 이런 유형이구나.’ ‘아, 저 고객은 저런 유형이구나.’ 함께 일하는 동료나 우리가 맞아야 할 고객의 성격을 파악하여 그에 맞춤하는 대응을 하면 경영성과가 오를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궁금하다. 상대의 성격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새로 입사한 직원이나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 매번 성격유형 검사지를 들이밀 순 없는 노릇이다. 설령 성격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머리 속에 그 결과를 기억해두고 상대에 따라 나의 말과 행동을 스위치 켜고 끄듯 바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양자택일 방식의 자기평가 검사가 내 성격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별해낼 지도 의문이다. 과학적 타당성에서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MBTI의 현실적 효용은 그리 크지 않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근원적인 깨달음을 제외하면 말이다.

A상황에서는 A’로 대응하고 B상황이 되면 B’로 해결하다. 상황이론의 골자다. 활용이란 측면에서 보면 MBTI도 상황이론의 범주에 들어간다. 주어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솔루션을 찾자는 얘기이니, 얼핏 보면 무척이나 합리적이다. 문제는 새로운 상황의 출현이다. 대응 시나리오에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멘붕’이다. 같은 상황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리 없다. 상황은 늘 다르다. 상황은 늘 변한다. 격변의 시대를 맞은 상황이론의 위기이자 한계다.

그걸 일찍이 깨달으셨나 보다. 노자형님도 강조한다.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득선야(善者善之 不善者亦善之 得善也). 덕이 있는 이는 덕으로 대한다. 덕이 없는 범부도 덕으로 대하여 덕을 알게끔 해준다. 그래서 세상에 덕이 가득하다.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득신야(信者信之 不信者亦信之 得信也). 미더운 사람은 믿음으로 대한다. 미덥지 못한 사람도 믿음으로 대하여 믿음을 알게끔 해준다. 그래서 세상은 믿음으로 가득하다. 도덕경 49장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했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얘기다. 이원보원(以怨報怨)이다. 원한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뜻이니 피비린내 나는 복수가 그칠 날이 없다. 영화 속 조폭 논리이자 현실 속 생활 원리이다.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거다. 더 받는 건 괜찮지만 더 주는 건 싫다는 거다. 세상살이가 강퍅한 이유다. 덕이 있든 없든 덕으로 대한다는, 미더운 이든 아니든 믿음으로 대한다는 노자형님의 가르침은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 시대 사장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타이밍. 성공의 조건이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받는 걸 좋아하는 ‘테이커(taker)’와 받은 만큼 돌려주는 ‘매처(matcher)’, 그리고 주는 걸 좋아하는 ‘기버(giver)’다. 요컨대, 테이커는 이기적이고, 기버는 이타적이며, 매처는 합리적이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이 성공할까? 테이커가 잘 될 리 없다. 내 것은 주지 않고 남의 것만 취하려 하니 욕심쟁이다. 탐욕의 본색이란 숨기려 해도 들통나게 마련이다. 합리적 호혜성을 따지는 매처들의 공격을 받고 결국 추락한다. 통념을 거스르지 않는 얘기다.


놀라운 건 이제부터다. 그랜트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기버였다. 협업, 존중, 경청, 배려. 누군가를 도우려는 기버들, 항상 베풀며 사는 기버들의 특기이다. 상생을 지향하는 이런 요소들이 긍정적 네트워크를 만든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이는 성공의 발판이 된다. 물론 테이커나 매처보다 수입이 적은 기버도 있다. 사기 피해자가 된 기버도 있다. 누군가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을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의 경우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공한 기버들은 게임의 구도를 제로섬에서 플러스섬으로 바꾼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함께’ 누리는 거다. 패자가 없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 플레이의 주인공이 바로 기버다.

이삭토스트의 김하경 대표는 전형적인 기버다. 세 평 남짓 작은 가게에서 토스트 장사를 시작했다. 토스트를 팔아 어려운 시절을 헤쳐 나왔다. “나도 토스트 장사로 일어났으니, 당신도 해보라.” 우연히 만난 딱한 사정의 부부를 외면하지 못하고 8천만원의 사비를 털어 가게를 내주었다. 전혀 의도치 않았던, 가맹점 아닌 가맹점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맹점이 지금은 전국에 800개가 넘는다. 가맹비는 없다. 인테리어도 업체와 직거래토록 하여 본사에서는 수익을 남기지 않는다. 2014년 중반까지는 가맹점주를 위해 물류대금도 후불로 받았다.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수억 원의 손실도 입었다. 그 손실이 결국 다른 가맹점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에 지금은 주문 입금 후 익일 배송 체제로 운영된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시작한 가맹점 사업이 아니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재료를 공급하는 것. 김하경 대표는 그게 프랜차이즈 본사의 역할이자 책임이라 믿는다. “매일 전쟁터 한 가운데 서있는 느낌이에요.” 혼자 장사할 때는 망해도 혼자 망하는 거였다. 지금은 다르다. 수많은 가맹점주와 회사 직원들, 그리고 그 식구들의 생계가 걸려있다. 비서도 없고, 차도 없는 김하경 대표는 토스트 가게를 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뭄을 만난 나의 이웃”이라고. 그래서 그는 오늘도 준다.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잡는다. 내가 있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라 믿으며.

성인지재천하 흡흡언 위천하혼심(聖人之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心). 성인은 세상에 있으면서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거두어 들인다. 세상을 위해 내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거다. 백성개속이목언 성인개해지(百姓皆屬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들 모두가 그걸 보고 들으며, 배우고 따른다. 성인은 결국 백성들과 함께 갓난아기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상대가 누구든 덕을 베풀며 믿음으로 대하는 성인. 그 역시 기버였다.

이제 보인다. 성공하는 기업의 비결? 주면 된다. 뭘 주냐고? 믿음이다. 고객과 직원에게 한결 같은 믿음을 주는 거다. 이 조건, 저 조건 야박하게 따지며 알량한 상황이론에 매몰되면 배는 산으로 간다. 상대의 성격을 따질 동안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면 될 일이다. 주어야 경영이고, 주어야 사장이다. 단언컨대, 경영은 전략을 넘어 철학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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