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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1] 화가는 그렇게 바다가 되었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장면 하나. 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느 바닷가를 찾은 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에 반한 그는, 생각 끝에 들었던 붓을 내려놓는다. 그저 바다를 보았고, 그저 바다를 들었고, 그저 바다를 느꼈다. 바다의 풍경을 화폭이 아니라 맘 속에 담았다. 화가의 그 모습까지 더해져 바다는 더 멋지고 근사한 풍경을 빚어냈다. 화가는 그렇게 바다가 되었고, 바다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

장면 둘.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다. 몇 달간 지지고 볶으며 연습해서 마련된 꼬마들의 재롱잔치. 일찌감치 도착해서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촬영모드로 돌입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웬걸, 카메라에 아이 모습을 담기 바빠 정작 내 눈에는 아이를 제대로 못 담았던 것. 살아 숨쉬는 날 것 그대로의 아이 움직임 대신 카메라 렌즈로 걸러진 허상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다.

지혜로운 화가에 대비된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다.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위해 현재를 챙겨두려는 욕심때문에 눈 앞의 실재를 놓쳐버린 꼴이다. 가짜만 남고 진짜는 사라진 거다. 가짜를 위해 진짜를 희생한 거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공간에 함께 녹아들지 못해 생긴 일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더하고 채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비우고 덜어낸다. 더하고 채우면 가득 찰 줄 알았는데, 그 반대다. 비우고 덜어내야 제대로 채워지는 법이다. 도덕경 48장에서 노자형님은 비움과 덜어냄을 갈파한다.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더해진다. 도를 행하면 날마다 줄어든다. 손지우손 이지어무위(損之又損 以至於無爲).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결국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무위(無爲)해야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치달린다. 유위(有爲)한다. 있는 그대로를 가만 두고 보지를 못한다. 의도를 가지고 자꾸 개입한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 때문이다. 나는 주체이고 너는 객체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기준 때문이다. 나를 중심에 둔, 너와 나의 구분이고,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다. 나를 중심에 둔, 해와 달의 구분이고, 바람과 비의 구분이다. 나를 중심에 둔, 높고 낮음의 구분이고, 많고 적음의 구분이다.

우리가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이유? 높이 쌓기 위해서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축적하여 하늘에 닿기 위해서다. ‘나의 확장’이 목표인 거다. 그래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뭔가를 더해가는 과정이다.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지식을 내 머리 속에 채워 담는 행위인 거다. 하지만 노자는 그 너머를 이야기한다. 자그마한 컵으로 바닷물을 퍼 담아봐야 광대한 바다를 아우를 수 없어서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인간의 얄팍한 지식 체계로는 세상만물의 원리를 모두 다 품어안을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바다를 아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다와 하나가 되는 거다. 세상을 품어안는 가장 좋은 방법도 다르지 않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거다. 비결은? 비움이다. 지식을 높게 쌓아 하늘까지 도달하려는 게 학문의 목적이라면, 내 속의 아집을 비워 하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게 도를 행하는 목적이다. 비우고 덜어내어 하늘과 하나가 되는 거다. 노자형님이 구분의 지식 대신 포용의 지혜를 강조했던 이유다. 비움으로써 껴안는 것이고, 껴안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거다. 비움은 그래서 ‘하나 됨’이다.

한 알의 소금 알갱이와 한 컵의 물이 있다. 소금은 소금이요, 물은 물이다. 구분이다. 소금 알갱이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서서히 물에 녹는다. 급기야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나를 비운 거다. 나를 버린 거다. 하지만 소금은 없어진 게 아니다. 소금은 이제 물이다. 물은 이제 소금이다. 물에서 짠 맛이 나서다. 소금은 나를 비우고 덜어내어 물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물이 되었다. 소금으로서 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다. 물로 스며들어 물과 하나가 된 것이다. 진정한 ‘나의 확장’이다. 이게 무위다.

조직의 새로운 리더로 승진발령을 받은 A. 그는 내 능력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다. 그것도 빨리다. 급선무는 조직의 환골탈태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이것도 고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 모든 걸 다 바꾸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직원들에게도 역설했다. 지금 이 대로라면 희망이 없다고. 하지만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요지부동이다. 리더인 A가 유위해서다. 유위하는 리더는 군림한다. 명령한다. 지시한다. 간섭한다. 통제한다.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한 나의 도구일 뿐이야. 그러니 암덩어리는 도려내야 해. 좀 아프겠지만 새 살이 돋을 거야. 그게 혁신이지.” A의 생각이다. 안타깝지만 오산이다. 나를 주체로, 너를 객체로 구분해서다. 혁신은 찍어 누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절로 넘쳐 흐를 때 혁신은 만들어진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영혼 모아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 리더라면 새겨야 할 포인트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공식처럼 똑똑 떨어지지 않는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톤앤매너 역시 중요하다. 명령하는 이에게는 반발해도 부탁하는 이에게는 마음을 여는 법이다. 녹아들어야 한다. 스며들어야 한다. 나의 존재감을 누르는 거다. 비우고, 버리고, 덜어내고, 내려놓는 거다. 그래야 품을 수 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다. 리더는 점령군 사령관이 아니다. 리더와 팔로워는 한 마음이어야 한다. 소금 알갱이가 리더에게 주는 교훈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쯤 되면 여기저기서 질문이 나온다. 리더가 비우고 버리면 조직이 살아나냐? 물론이다. 카리스마로 무장한 리더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세상 문명의 표준이 바뀌는 작금의 세상, 리더는 더 이상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리더라고 모든 걸 다 알 수가 없는 세상이라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과거에 매몰된 ‘꼰대리더’의 이런 생각이 조직을 망친다. 전문적인 역량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게 지원하고 도와주는 사람, 그가 바로 리더다.

노자형님 얘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취천하상이무사(取天下常以無事). 항상 무사(無事)해야 한다. 그래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무사는 무위의 다른 표현이다. 억지로 일을 꾸미지 말라는 얘기다. 작위적인 나의 의도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얘기다. 맥락 없는 지시는 튕겨 나오게 마련이다. 존중과 공감을 통해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움직이고 영혼이 움직인다.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자라게 해주면 되는 건데, 자꾸 키우려 한다. 그래서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언 6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기에도 무위의 진리가 녹아있다. 아무런 지시와 통제가 없어도 개미는 스스로 움직인다. 이런 조직이 강한 조직이다. 키워드는 ‘렛잇비(Let It Be)’다. 스스로 그러하게 두어야 한다.

규칙과 규정은 ‘스스로 그러함’을 억누르는 장치다. 복종의 조직에는 영혼이 없다. 혁신도 없다. 리더라면 나를 비우고, 나를 버리고, 나를 덜어내고,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그저 보는 거다. 들리는 것을 그저 듣는 거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지우고 오롯이 함께 하는 거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사라지고, 나는 우리가 된다. 무위, 무사, 무심이란 그런 거다.

성인상무심 이백성심위심(聖人常無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항상 무심하다. 나의 마음을 고집하지 않는다. 백성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 성인이 성인인 건 그래서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희미하나마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무위하면 못할 일이 없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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