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스마트 시대'다. 새로운 기사와 새로운 소식은 띵동 띵동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울린다. 무얼 먹고 있든, 무얼 듣고 있든, 무얼 하고 있든 상관없다. 홀린 듯 스마트폰을 열어 알람을 확인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러지 않으면 불안하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데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닐까 불안한 거다. 포모(FOMO) 증후군이다. 포모(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다. 혼자만 잊혀지는 것, 즉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선사시대부터 그랬다. 혼자 다니다가 맹수와 마주쳤다? 그건 곧 죽음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이기랄 게 없던 그 시절, 무리에 속해 있다는 건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었다. 우리의 DNA에 ‘함께’라는 명령어가 짙게 프로그래밍된 이유다. 어떻게든 무리에 끼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해서다.
그때 각인된 '소속'의 본능이 작금의 스마트 시대까지도 이어진다. 혼자서는 모든 게 두렵다. 함께여야 마음이 놓인다. 남들과 떨어져서는 안 되니 늘 남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둔다. 그들이 가면 나도 간다. 그들이 서면 나도 선다. 그렇게 나는 우리가 된다.
트위터에서, 인스타그램에서, 페이스북에서, 무언가가 유행이란다. 사람들이 맛있다는 건 나도 먹어 봐야 한다. 사람들이 근사하다는 곳은 나도 가봐야 한다. 사람들이 좋다는 건 나도 해봐야 마음이 놓인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다. 나만 뒤떨어진 느낌, 그게 불안하다. 낙오는 곧 나락이다. 이게 포모다. ‘고립 공포감’이다.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는 건 그래서다. 따라하기 위해서다. 아니, 따라 살기 위해서다.
포모를 사회병리 현상의 하나로 바라보는 논문들도 많이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문제이긴 하다. 내 삶을 살면서 내가 없는 삶을 살려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나로 살아야 주인인데 자꾸 남으로 살려 한다. 내 몸을 가지고 남의 생각을 살아주는 셈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다움'과 관련해서도 노자형님은 깊은 가르침을 준다. 도덕경 47장이다. 불출호지천하 불규유견천도(不出戶知天下 不闚牖見天道).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안다.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자연의 이치를 안다. 기출미원 기지미소(其出彌遠 其知彌少).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겨울 가면 봄이 오는 건 자연의 이치다. 이를 아는 이는 밖을 나가보지 않아도 얼음이 녹으면 새순이 돋는다는 걸 안다. 자연 존재와 운행의 원리인 도를 깨우치면 세상만사, 그 움직임이 명확하게 보이는 법. 여기저기 변죽만 울려봐야 힘만 든다.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도덕경은 다양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이 장은 '독립'의 텍스트로도 읽힌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라는 얘기다. 시류에 따르지 말고 시류를 만들라는 얘기다. 홀로 서라는 얘기이며, 나부끼지 말라는 얘기다. 나로 선다는 것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옴을 의미한다. 일탈이다. 일탈은 주류와는 다른, 나만의 생각을 연료로 삼는다. 생각 부재의 삶을 사는 이는 그래서, 주류의 흐름에 그저 묻어간다. 주류를 구성하는 하나의 숫자로만 살아간다. 왜 그런지 궁금해해야 한다. 왜 그런지 물어야 한다. 호기심과 질문이 생각의 씨앗이다. 그 씨앗이 새로운 판을 만든다. 그걸 우리는 혁신 혹은 혁명이라 부른다.
혁신가는 세상의 다른 측면을 보아낸다. 이 편을 넘어 저 편을 본다. 입체적인 시각이다. 관점이 바뀌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모습이 같을 리 없다. “나이프, 포크 회사와 디자인 회의를 한다고 치자. 그들은 끊임없이 나이프와 포크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그런 얘기를 잠깐만 멈추고 먹는 행위 혹은 식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말이다. 그의 시선은 다른 이와 다르다. 가지가 아니라 뿌리에 천착하는 그의 관점은 새롭다. 날카롭다. 세계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기존 관점을 깨부수고 나와 거친 광야에 홀로 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영도 다를 것 없다 싶다. 경영 그러면 다들 끊임없이 매출과 수익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한다. 그런 얘기를 잠깐만 멈추고 경영의 본질, 경영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마케팅 그러면 다들 끊임없이 고객을 유혹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한다. 그런 얘기를 잠깐만 멈추고 고객의 고통과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리더십 그러면 다들 끊임없이 직원을 수족처럼 부리는 기술과 방법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한다. 그런 얘기를 잠깐만 멈추고 직원의 성장과 리더의 성찰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카림 라시드가 빚어낸 디자인 혁신처럼 경영의 혁신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내 생각을 기반으로 산다는 얘기다. 무리로서 따르던 기존 생각과의 단절. 그래서 이제 ‘포모(FOMO)’가 아니라 ‘조모(JOMO)’를 이야기한다. 조모란 ‘Joy Of Missing Out’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단어다. 조모족(族)은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혼자만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남들을 살피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소셜미디어를 끊고, 이런저런 외부 모임을 끊는다. 스스로를 찾기 위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무작정 무리를 따라가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어리석은 레밍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 거다. 모방을 위한 헛된 시선이 성찰을 위한 참된 시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조모는 그래서, 소외와 고립의 즐거움을 가리킨다. 혁신가로서 누리는 기쁨인 거다.
혁신은 무리 속에 있지 않다. 혁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시각에 있다. 혁신가는 그래서,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다. 스스로 선택한 소외와 단절. 그 효용을 노자형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성인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성인은 가보지 않고도 안다. 보지 않고도 훤히 안다. 하지 않고도 이룬다. 우리는 나의 확장이 아니다. 나의 확장은 홀로 선 나로부터 시작된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게 아니다.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답은 내 안에 있다.
세계적인 안무가 리아 킴이 그랬다. “기획사에선 완벽하게 다듬고 포장한 하나의 상품을 원해요. 멤버들은 그 상품 안에서 주어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는 거고. 그래서 외국 가수들은 중간에 아무 안무가 없어도 자유롭게 즐기고 실수해도 개의치 않은데 한국 아이돌은 어쩔 줄 몰라해요. 그 짬을 메울 창의성이 없으니.”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짜고 가르쳤던 그다. 그의 말을 통해 ‘나로 홀로 서지 못함’의 한계를 본다. 내가 추는 춤의 주인이 되지 못하니 앵무새처럼 흉내만 내는 거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입력한 명령어대로만 움직이니 로봇과 다를 바 없다.
시험 잘 보는 학생을 우등생이라 칭찬해왔던 우리 사회다. 지금은 아니다. 기존 지식을 잘 외워 좋은 점수 받는 게 더 이상 경쟁력일 수 없는 세상이다. 답습의 스킬이 아니라 독립의 용기가 필요하다. 홀로 서야 한다. 나로 서야 한다. 단절과 고립을 무릅쓴 도전이다. 그러고 보니, 맞다, 테스 형도 얘기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 세계와 불일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는 이, 그가 진짜 혁신가요 그가 진짜 혁명가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