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뇌-나도 혹시 권력중독? (안병민TV) https://youtu.be/xP6Klr0RtAQ
공격적이다. 쉽게 흥분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사교적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타인을,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여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다. 소시오패스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주로 환경적인 결핍 요인에 의해 발현된다. 문제는 이런 소시오패스가 아주 가까이, 우리 조직안에 있다는 거다. 창궐하는 직장 내 소시오패스는 ‘갑질’이란 이름으로 마각을 드러낸다.
사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내 맘대로 하면 편할 텐데 상대를 챙기고 살피자니 힘든 거다. 함량 미달의 상사들이 자신의 감정을 여기저기 배설하듯 풀어놓는 이유다. 그렇게 당한 직원은? 만만한 상대를 찾는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 위에서 시작된 갑질이 아래로 확산되는 과정이다. 선배에게 맞던 후배가, 후배를 때리는 선배가 되는 거다.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 욕하면서 닮아간다. 리더의 갑질은, 그렇게 조직 전체의 문화가 된다. 갑질의 일상화다.
최근 언론을 통해 불거진 직장 내 갑질 사례는 부지기수다. 폭언과 폭행뿐만 아니다. 무시와 협박, 성희롱과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행태 또한 다양하다. 난무하는 갑질은 구성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일상이 되어버린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꽃다운 목숨까지 버린 어느 간호사. 내가 죽어도 우리 병원 사람들은 안 왔으면 좋겠다는 유서 내용이 참담할 따름이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인간을 오만하게 만든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뜨린다. ‘승자의 뇌’의 저자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진단이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과도한 권력을 가지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시야도 좁아진다. 오직 목표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권력중독’이다. 중독의 폐해는 또 있다. 권력에 취한 리더는 직원을 대상화한다. 사물로 바라본다. 자유를 빼앗고 학대한다.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도 얘기했다. 자신의 시선으로 제멋대로 남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세상에서 ‘타인은 지옥(Hell is other people)’이라고. 수많은 직장 내 갑질은 권력중독자에 의해 벌어지는 가슴 아픈 참사다.
회사 상황은 악화일로. 직원 월급도 제 때 못 주는 판에 사장은 자신의 차를 업그레이드한다. 회삿돈으로 더 비싼 차를 타고 다닌다. 직원들은 피가 거꾸로 솟지만, 악질 보스는 자기의 악행을 알지 못한다. 안다고 하더라도 이유를 댄다. 합리화한다.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리더에게 부단한 성찰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말 안 듣는 직원들을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 질문부터가 잘못됐다. 그들이 바뀌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나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시켜서 하는 억지 노동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직원의 헌신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권력중독을 미연에 방지코자 하는 리더에게 도덕경 61장은 필독의 텍스트다. 대국자하류 천하지교 천하지빈(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드니 천하를 품어 안는 암컷이다.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암컷은 항상 수컷을 이긴다. 특유의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낮추어서다. 대국이하소국 즉취소국(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그러니 큰 나라가 자신을 낮추어 작은 나라를 대하면 작은 나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낮추니 모여들고, 낮추니 이기며, 낮추니 얻는다. 리더가 배워야 할 겸손의 지혜다. 권력중독을 막기 위한 성찰의 지혜다. 맞다, 겸손이 밥 먹여준다.
노자형님의 겸손 찬양은 도덕경 66장에서도 이어진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강과 바다에 온갖 하천의 물이 몰려드는 까닭? 강과 바다가 스스로를 기꺼이 낮추기 때문이다. 강과 바다가 세상 모든 계곡물을 품을 수 있는 이유다. 욕상민 필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백성들 위에 서서 그들을 어우르고 싶다면 반드시 몸가짐을 낮추어야 한다. 백성들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고 싶다면 반드시 스스로를 뒤로 물려야 한다. 낮추어야 어우를 수 있고, 물러서야 이끌 수 있는 거다.
탁월한 리더가 단상 위에 서서 아래에 있는 우매한 대중을 리드하던 시대는 끝났다. 높이의 차이는 사라졌다. 리더를 능가하는 무림 고수가 조직 내에 즐비하다. 그들을 대상으로 내 권력을 남용한다? 실패를 재촉하는 길이다. 직장은 이제 상생을 위한 협업의 공간이라서다. 개방과 공유의 즐거운 놀이터라서다.
‘겸손’과 함께 권력중독 예방을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진실’이다. 경찰에 검거된 연쇄살인범. 동네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평소 행실을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는 거다. 감쪽같이 사람들을 속인 결과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이다. 나에게 진실해야(be true to myself)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진실의 이야기들 사이로 거짓과 가짜 스토리들이 독버섯처럼 돋아나서다. 불신의 시대. ‘스토리텔링(story-telling)’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다. ‘스토리두잉(story-doing)’해야 한다. 입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논어에도 나온다.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
그래서 ‘신독(愼獨)’을 이야기한다. ‘삼갈 신(愼)’에 ‘홀로 독(獨)’. 신독의 ‘독(獨)’은 ‘홀로 있음’이다. 다른 이와 함께 있더라도 남들은 모르는 내 마음이 ‘독(獨)’이다. 신독은,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혼자 있을 때도 말과 행동을 삼가라는 의미다. 보는 이도 없는데 굳이 그래야 되느냐고? 물론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안다. 디지털로 인해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세상이 되었다.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홀로 서 있을 때에도 나의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홀로 잠을 잘 때에도 덮고 있는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CCTV 한 대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다 생각하면 쉽다. 리더가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다.
권력은 우리 눈을 멀게 한다. 마약이나 다름없다. 해결책은 권력에 대한 공고한 감시와 견제의 시스템이다.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차선책은 ‘리더의 절제’다.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이라 했다. 백성을 다스리고 자신을 닦는 데에 ‘절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절제는 도를 따르는 행위다. '도를 따름'은 곧 '덕을 쌓음'이다. 중적덕 즉무불극(重積德 則無不克). 끊임없이 덕을 쌓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성인은 자신을 알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만 귀히 여기지 않는다. 다투지 않으니 천하에 그와 맞싸울 이가 없다. 무심한 달항아리를 빼닮은 절제의 미학이다.
권력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래, 답이 나왔다. 낮추어야 한다. 삼가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