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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7]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잡는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TV (#5분47초) #중간관리자가사라진다

https://youtu.be/l4rtEPkoW5Q


양로원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시간 계획을 ‘스스로’ 짜게 했다.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원하는 영화도 볼 수 있게 했다. 비교그룹은 ‘주어진’ 시간표대로 생활하게 했다. 정해진 음식을 먹어야 했고, 정해진 영화만 보아야 했다. 생활의 통제권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자신의 환경과 생활에 통제권을 행사한 그룹은 비교그룹보다 훨씬 활기찼다. 훨씬 행복해했다. 내 일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니 무력감과 절망감이 줄어든 거다. 자기효능감이 커진 거다. 심리학자 랭거와 로딘의 실험이다.


내 일과 삶의 통제권은 사람을 하늘로 날아오르게도, 수렁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시켜서 억지로 하게 해선 안된다. 스스로 신나서 하게 해야 한다. 조직 내 권한위임이 중요한 이유다. 현실은 정반대다. 열정 충만한 직원을 뽑아놓고는 시키는 것만 하란다. CEO마인드로 일하라 해놓고 CEO처럼 일했더니 ‘네가 CEO냐?’며, 시키는 거나 잘 하라고 타박하는 형국이다. 통제권을 빼앗긴 직원은 무기력한 방관자로 전락한다. 그저 숨만 쉬며 눈치만 살핀다. 리더 혼자 난리쳐봐야 소용없다. 기업의 성공은 직원에게 달렸다. 그들의 의욕에 불을 지펴야 한다. 직원들의 가슴에 활활 불을 붙여야 할 사람들. 그들이 오히려 찬물을 끼얹으며 불을 끄고 다니니, 이게 문제다. 조직의 성장엔진 스위치를 꺼버리는 거다.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정치가 너그러우면 백성은 순박해진다. 정치가 혹독하면 백성은 교활해진다. 도덕경 58장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힘을 받는 대상이 힘의 주체에게 역으로 가하는 힘. 반작용의 정의다. 주는 만큼 받는 법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세세한 규정들로 백성들을 옭아매어 못살게 굴면 백성들도 제 살 길 찾게 마련이다.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 나선다. 순박한 백성들이 간교한 미꾸라지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이 나온다.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작은 생선을 굽는데 이리 뒤적이고 저리 뒤척이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다. 생산살이 다 부서진다. 먹을 게 없어질뿐더러 볼품도 없다. 근사한 만찬은 물 건너가는 거다.


약팽소선의 철학은 오늘날 경영으로도 이어진다. 직원의 자율성에 무게를 두는 거다. 탄력근무제, 자율출퇴근제 등이 그 산물이다. 미국 최대의 가전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성과집중형 업무환경(Results-Only Work Environment)’ 제도를 도입했다. 업무방식과 업무시간을 직원 스스로가 정하도록 했다. 휴가 승인 과정도 없애 버렸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자율성을 부여했다. 업무가 제대로 진행된다는 전제 하에서다. 결과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일할 때보다 생산성이 향상됐다. 이직률도 줄었다. 물론 성과집중형 업무환경 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직원 자율에 초점을 맞춘 리더의 철학만큼은 톺아볼 필요가 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노동의 시간으로 기여도를 평가했다. 세 시간 일한 사람보다 다섯 시간 일한 사람이 후한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아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다. A가 종일 걸려 해야 할 일을 B는 10분 만에 끝낸다.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서다. 성과는 업무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함께 모여 일했다. 지금은,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한 공간에 모여서 일해야만 성과가 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무실 없는 근무환경의 점진적인 확대는 이를 웅변한다. 요컨대, 성과와 시공간의 함수는 사라졌다. 관건은 직원의 자발적 몰입이다. 그럼에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라 한다. 원활한 직원관리를 위해서다. 21세기 디지털 시공간에서 19세기 농경 방식으로 일을 하는 셈이다.


조직의 위계는 관리를 전제로 한다. 직원들이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도록 규제하고 감시하는 것. 관리자의 역할이다. 그 일을 해야 할 관리자도 근무에 태만할 수 있다. 그러니 관리자들을 관리할 또 다른 관리자를 채용한다. 관리를 위한 관리의 범람이다. "조만간 사라지게 될 직업 중 하나가 중간 관리직이다. 그들은 주로 조직의 위계 서열 시스템 하에서 지시 사항과 정보를 아래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모든 조직원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더 이상 중간 관리 직급이 필요가 없어진 거다.” ‘일의 미래’ 저자 린다 그래튼 교수의 말이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잡는다 했다. 아무리 세밀하고 깐깐한 규정으로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해도 작정하고 일 안 하려 들면 방법이 없다. 몰입은 규제와 감시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다. 자율이 중요한 이유다. 자율의 전제는 신뢰다. 직원을 믿어야 한다. 못 믿으니 감시하고 못 믿으니 통제한다. 그런 리더가 보는 사무실 풍경은 진짜가 아니다. 직원들이 벌이는 ‘쇼’일 뿐이다. 그 쇼를 보고 ‘열심히 일들 하고 있구먼.’ 안심하는 리더라면 함량 미달이다. 지시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해를 시켜야 한다.


‘후츠파(Chutzpah)’는 이스라엘 창조혁신의 열쇳말이다. 원래는 무례함, 뻔뻔함, 철면피 따위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였다. 요즘은 용기, 배포, 도전이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 전 세계 벤처투자 자금의 30%가 이스라엘로 몰려드는 것은 ‘후츠파 정신’ 덕분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외국기업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 기업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조직 내 ‘후츠파 정신’을 키우는 비결? 계급장 떼는 거다. 권위를 내려놓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상명하복은 군대에서나 미덕이다. 군대가 아님에도 말 한 마디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위험하다.


세계적인 혁신전도사 게리 해멀 교수는 조직에 공헌하는 인간을 6단계로 나눈다. 위에서부터 열정(passion), 창의성(creativity), 선제적인 추진력(initiative), 지식(intellect), 근면(diligence), 순종(obedience)의 순서다. 근면과 순종은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 열정과 창의는 다르다.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직원들이 조직을 성장시키던 건 예전의 빛 바랜 기억이다. 창의 가득한 열정 인재가 조직을 승리로 이끄는 요즘이다. 순종하는 직원을 선호하는 리더라면 애당초 글러 먹었다. 직원들의 창의와 열정을 이끌어내야 진짜 리더다. 그래서 가져온 문장이다. 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성인은 바르고 점잖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예리하고 뾰족하되 남을 찔러 상처를 주지 않는다. 솔직하되 제 멋대로 굴지 않는다. 빛나되 눈부시지 않다. 리더가 나를 고집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살아난다. 조직에 활기가 돈다. ‘후츠파’는 리더 하기 나름인 거다.


직원을 쪼지 않으면 조직이 제대로 굴러 가겠냐고? 노자형님이 보증한다. 도덕경 73장이다. 스스로 그러하게 만들어주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고(不言而善應),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법이다(不召而自來). 당장 나부터도 그랬다. 믿어주는 상사와 일할 때는 최선을 다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상사에게는 시키는 대로만 해줬다. 아니, 잔꾀도 많이 부렸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성글어 보이지만 새나갈 방법이 없다. 삶의 이치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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