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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38] 감동란이 감동을 더해주는 이유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편의점 대표상품 중 하나로 감동란이 있다. 이름이 왜 감동란이냐고?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맥반석 계란, 훈제 계란, 구운 계란 등 다양한 계란들이 나와있지만 감동란이 주는 감동은 압도적이다. 삶은 계란의 영원한 단짝은 사이다였다. 계란이 퍽퍽해서다. 하지만 감동란은 불멸의 그 조합을 완벽하게 깨버렸다. 사이다를 잊게 만드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 게다가 따로 소금을 찍어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의, 딱 있어야 할 만큼 있는 간. 그러니 감동을 안 할 재간이 없다. 호기심에 감동란 제조과정을 검색해보았다. 먼저 신선한 계란을 선별하고 검사한다. 통과된 계란을 무려 네 번에 나눠 삶는다. 특유의 간간함을 맞추기 위해 조미과정을 거친 후 다시 마지막 검사를 거친다. 그 과정에 5일이 걸린다. 그깟 계란 하나 삶는 게 대수냐며 얕잡아볼 일이 아니다. 별 것도 아닌 삶은 계란 하나지만 디테일이 더해지니 고객이 반응한다. 디테일의 힘!

디테일이 아름다운 건 달인들이 갖고 있는 장인정신의 외형적 특징이다. 남다른 기술과 재능을 가진 장인들이 자신의 작업에 최선을 다하는 건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대충 해놓고 끝낸다? 장인정신이란 이름 아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중의 하나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라고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다운 법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그는 수학여행 성지인 경주 불국사를 꼽았다. 강의 후 다시 찾은 불국사는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불국사 대웅전 정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옆면. 여인의 한복 저고리 소맷단을 본떠 만든 그 문양은 실로 기가 막히다. 살짝 하늘로 치켜 올린 우아한 곡선이 예술이다. 극락전 안양문에서 연화교를 내려가다 보면 연꽃무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이 또한 일품이다. 모르고 갔다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건축물 이면에까지 이토록 혼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었을까? 범인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장인의 경지다.

경영에서도 디테일은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늘 고심하는 ‘고객가치’란 놈도 실은 작은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웅변적 사례다. 이케아는 세계 최대의 가구 업체다. 북유럽풍의 실용적인 디자인에 더해진 획기적인 가격경쟁력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이케아의 집착에 가까운 원가절감 노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매장부터가 도심에서 멀다. 땅값이 쌀 수밖에. 완제품이 아니라 DIY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니 조립은 고객의 몫이다. 제조원가가 줄어든다. 플랫패킹이라 하여 모든 제품을 납작하게 포장했다. 물류비 절감을 위해서다. 이 정도는 약과다. 가구 조립설명서를 텍스트 대신 직관적인 그림으로 채워 넣었다. 자연스레 안내직원 숫자가 줄었다. 번역비용도 줄었다. 압권은 볼트다. 앞뒤가 뭉툭한 볼트를 깎아 한 쪽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자재 사용량이 줄어 원가가 절감됐다. 무게가 줄어드니 운반비 역시 따라 줄었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나사 기둥에도 홈을 팠다. 줄어든 0.1그램들이 모이니 연간 수 억원의 비용이 절감됐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볼트와 나사도 놓치지 않는 매의 눈. ‘더 낮은 새로운 가격’을 앞세운 이케아의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디테일에 있었다.

도덕경에서도 디테일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어려운 일을 하려면 쉬운 일부터 시작하고, 큰 일을 하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시이성인 종불위대 고능성기대(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그래서 성인은 큰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거다. 도덕경 63장이다. 큰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작은 일을 빈틈없이 계속해서 잘 해내는 게 큰 일이다. 작은 일은 그래서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일이 곧 큰 일인 거다.

경영이란 측면에서 디테일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두 개다. 먼저, ‘성공 조건’으로서의 디테일이다. ‘착안대국 착수소국’이란 바둑 용어가 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큰 흐름을 읽되 실행은 작은 것부터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허세 부려 될 일이 아니다. 승부는 디테일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디테일의 완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꾸준한 수련이다.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의 글씨를 보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글씨를 써도 되는 건가’ 싶다. 하지만 추사체를 천하 최고의 글씨체로 칭송하는 이유가 있다. ‘장인적 수련’때문이다. 그가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추사체는 뼈를 깎는 각고의 수련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이었던 것. 관건은 디테일을 챙기는 부단한 노력이다. 이에 대한 추사의 생각은 확고하다. “아무리 구천 구백 구십 구분까지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일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이 마지막 일분은 웬만한 인력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딴 것 없다. 더 노력하라는 일갈이다.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초인적 수련이 디테일을 완성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미쳐야 미친다.

경영에 있어 디테일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사전 예방’으로서의 디테일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1 : 29 : 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대형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관련된 수십 차례의 작은 사고들과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 법칙이다.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하인리히란 사람이 사고사례 분석을 통해 찾아낸 통계치다.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재해사건에는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을 입은 사람이 29명 있었고, 같은 원인으로 다칠 뻔한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거다. 요컨대, 큰 사고는 벼락처럼 갑자기 닥치는 게 아니다. 일정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경고성 징후들이 사전에 있다는 게 포인트다. 작은 일이라며 무심코 넘어가선 안 되는 이유다. 리더라면 디테일에 민감해야 한다. 일상에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놀랍게도 노자형님은 통계치도 없었을 그 시절에 비슷한 얘기를 했다. 도덕경 64장이다. 기안이지 기미조이모(其安易持 其未兆易謀). 상황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유지하기 쉽다. 별 다른 조짐이 없을 때는 뭔가 일을 추진하기가 쉽다. 기취이반 기미이산(其脆易泮 其微易散). 굳지 않은 것은 풀기가 쉽고, 아직 작아 드러나지 않은 것은 흐트러뜨리기 쉽다. 이어지는 제언이다.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일이 생기기 전에 타당하게 처리하고, 난리가 나기 전에 미리 살펴 미연에 다스려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처음부터 큰 일은 없다. 합포지목 생어호말(合포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다. 구층지대 기어누토(九層之臺 起於累土). 9층 높이의 거대한 누대도 한 줌의 흙으로 시작된다. 천리지행 시어족하(天理之行 始於足下). 천리나 되는 먼 길도 발 밑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엄청나게 커 보이는 것들도 시작은 다 작았다는 얘기다. 사건사고도 마찬가지다. 작은 사고가 자라고 쌓여 큰 재앙이 된다. 작다고 쉬이 흘려봐선 안 된다. 리더는 그래서 섬세해야 한다. 예민해야 한다. 천리 둑도 개미구멍에 무너진다. 100에서 1을 빼면 99가 남는 게 아니다. 100 빼기 1은 0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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