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버려라, 비워라’ 역설했던 노자형님도 정작 따로 챙겨 놓은 보물이 있었다. 도덕경 67장에 나오는 고백이다. 아유삼보 지이보지(我有三寶 持而保之).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그것을 잘 지켜 보존한다.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약함이며, 셋째는 세상을 위한다는 구실로 감히 남들 앞에 나서지 않음이다. 노자의 보물답다. 이 셋은 경영에도 오롯이 당겨올 수 있는 것들이니 사장이라면 새겨야 할 내용이다.
먼저, 자애로움이다. 고객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지금껏 마케팅과 세일즈는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 매출과 수익을 올리는 수단이자 도구였다. ‘어떻게 팔아야 많이 팔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광고를 해볼까?’ ‘저런 이벤트를 걸어볼까?’ 늘 고심했던 이유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었다. 품질과 디자인, 브랜드와 이미지를 구매기준으로 삼던 사람들이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주목한다. ‘어떻게 팔까?’ 이전에 ‘왜 파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많이 팔아서 좋은 차 사고, 좋은 집 사려고요.” 이런 대답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줄 고객은 없다. 어차피 품질과 디자인은 별 차이도 없다. 전략을 넘어 철학이 중요한 시장. 고객이 사랑하는 회사의 리더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더 좋은 가치를 제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요.”
마케팅과 세일즈는 더 이상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기술이나 전술이 아니다. 고객행복의 철학이다. 고객이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 고통과 고민의 원인을 제거해줌으로써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마케팅이고, 이게 세일즈다. “이걸 고객이 사면 그의 삶이 개선될까?”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까?” 달라진 시장에서의 비즈니스 성공 기준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자애다. 고객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 ‘불쌍히 여김’은 곧 ‘어짊(仁)’이다. 리더에게 측은지심이 필요한 이유다. 기억해야 한다. 고객은 설득이나 공략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할 나의 파트너란 걸.
둘째, 검약함이다. 리더의 자기수양으로 이어지는 덕목이다. 연이 멀리 날지 못하는 것은 실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개가 멀리 뛰지 못하는 것은 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뜻을 널리 펼치지 못함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줄이 나를 묶고 있어서다. 다름 아닌 탐욕이다. 밥 한 공기와 물 한 그릇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이유? 귀한 음식과 비싼 술을 마시면서부터다. 다산 정약용도 그랬다. 세상에는 속여도 되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건 내 입이라고. “음식이 주는 기쁨은 하잘것없는 육신의 잠깐 사이의 즐거움이다. 그러니 먹어 배부르고 싶으면 더 먹지 말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 천주교 수양서 ‘칠극(七克)’에 나오는 내용이다.
욕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대부분 그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폭주한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 스스로도 멈출 수가 없다. 리더가 사치를 일삼으면 고통은 백성 몫이다.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위에서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민지경사 이기상구생지후(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통치자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려 해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봉기는 가렴주구를 일삼던 고부군수 조병갑 때문이었다. 리더가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을 못살게 구니 죽음을 무릅쓰고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거다.
“저를 작은 항아리로 만들어주세요.” 흙이 도공에게 얘기했다. “다들 크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너는 어찌해서 작게 만들어 달라고 하니?” 도공의 물음에 흙이 말한다. “작은 항아리는 금세 채워지기에 항상 만족하지만, 큰 항아리는 채우기가 힘드니 늘 불만이거든요.” 가진 것보다 욕심이 작으면 행복이고, 가진 것보다 욕심이 크면 불행이다. 그 욕심을 제어하는 게 검약이니 검약은 리더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끝으로, 감히 나서지 않음이다. 직원과의 관계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미덕이다. ‘나서지 않음’은 ‘고집하지 않음’이다. 겸손이다. 우리의 감각은 불완전하다. 그걸 믿고 내리는 내 판단이 정확할 리 없다. 승자의 환호는 곧 패자의 눈물이다. 내 자리에 가만 서서 내 시점으로만 바라보면 '환호'만 보인다. 자리를 옮겨가며 입체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눈물'까지 보이는 법이다. 내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위험한 건 그래서다.
나를 고집하지 않으면 상대와의 경계는 사라진다. 하나가 될 수 있다. 꽃을 보면 꽃이 되고, 산을 보면 산이 된다. 상대와의 조화다. 화합이다. 융합이다. 카리스마 리더가 힘으로 조직을 장악하려 들 때, 겸손한 리더는 소금이 물에 녹듯 자연스레 조직과 하나가 된다.
겸손한 리더가 빚어내는 긍정적인 영향은 작지 않다. 겸손한 리더는 열려 있다. 늘 배우려는 자세다. 상대를 존중하고, 다른 이의 강점을 칭찬한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려 노력한다. 학습하는 조직문화를 통해 높은 성과를 만들어낸다. 팀워크 또한 공고해질 수밖에. 밀레니얼 세대 역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전략(45%)과 도덕성(45%), 그리고 겸손(43%)을 꼽았다. 용기, 설득력, 회복탄력성, 포용력, 진정성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글로벌 경영컨설팀펌인 이곤젠더의 2019년 연구 결과다. 많은 기업들이 직원 채용과 승진에 있어 겸손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고려하는 이유다.
“세월도,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딥니까? 노래하려면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훈장 달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습니다.” ‘가황’ 칭호를 받는 국민가수 나훈아님의 말이다. 불감청고소원. 감히 청하지 못할 뿐이지 다들 갖지 못해 안달인 나라의 훈장을, 그는 사양했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로 몸을 물렸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외려 더 추켜세운다. 까짓 훈장이 대수인가? 국민들 마음 속에 그는 이미 노래의 황제인 것을.
용은 공격하기 전에 뒤로 몸을 움츠린다. 호랑이는 달려들기 전에 아래로 몸을 낮춘다. 물러섬은 패퇴가 아니다. 물러섬이 곧 나아감이다. 최고의 리더는? 두 말할 것 없다. 겸손한 리더다.
노자형님이 귀히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은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는 사장에게도 보배로운 길잡이다. 이 모두를 잘 지킨다면?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자애롭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넓어질 수 있으며, 앞에 나서지 않기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고객을 사랑하기에 불굴의 기업가정신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거다. 스스로를 경계하기에 탐욕의 늪에 빠지지 않고 더 큰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거다. 나를 고집하지 않으니 조직과 하나 되어 행복한 성장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갈 수 있는 거다.
A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면, A보다 더 나은 제품으로 제압할 수 있다. B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B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하지만 고객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리더, 사치를 거부하는 검소한 리더,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겸손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라면 풀이가 힘든 고차방정식이 된다. 경쟁사로서는 요령부득의 난제다. 두 손 들고 퇴각할 수밖에.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