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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40] '어쩌다 사장'과 보이스피싱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1. 한적한 시골 마을, 버스정류소 앞 자그마한 동네슈퍼. 없을 건 없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다. 라면이나 계란말이 등 간단한 먹거리도 판다. 멀지 않은 유치원 선생님들이 한 끼 간단한 식사를 위해 오는 곳이다. 길 건너 주민센터 직원들이 과자와 음료수를 사러 찾는 곳이다. ‘짹짹이’ 할머니와 ‘까불이’ 할머니가 소주 한 잔 기울이는데, 우연히 들른 너털웃음 할아버지가 동석하여 말동무가 되어주는 곳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옆집 아이가 일 나간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슈퍼에서 키우는 개와 눈이 맞은 이웃집 개도 들락거리니 이 작은 슈퍼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 안부를 묻는, 온기 넘치는 동네 사랑방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과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 새라 옷깃을 세우고 걸음을 재촉하는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시골슈퍼의 일상은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편안한 판타지이자 따뜻한 힐링이다. KBS TV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얘기다.

#2. "고객님의 카드가 잘못 발급되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안전한 계좌로 이체해야 합니다." "여기는 ○○경찰청 지능범죄 수사대입니다. ○○○씨 명의로 통장이 발급되어 5천만원 돈세탁이 된 것을 적발했습니다." "서울검찰청입니다. ○월 ○일 법정 출석을 하지 않으셨네요. 사건 확인이 필요하니 성함과 주민번호를 말씀해주세요." 느닷없이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늘이 노랗다.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안고 수화기 저편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하고 나면 금쪽같은 내 돈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현실을 마주한 피해자는 망연자실. 사람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이런 범죄를 막고자 금융당국과 수사당국도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백신을 개발하면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나듯 사기수법 또한 따라서 진화한다. 창과 방패의 쫓고 쫓기는 싸움에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서글픈 불신 세상이다.

'신뢰'를 가운데 두고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두 개의 풍경이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의 단어는 '신뢰'와 '순박'이다. 반면, 익명의 시공간에서 나를 숨기며 사는 대도시 사람들의 단어는 '불신'과 '경계'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니 불안하다. 시골에선 담장도 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담벼락을 높이 쌓고 대문을 걸어 잠근다. 그걸로도 모자라 CCTV를 설치하고, 방범감시 서비스를 신청한다. 믿음이 사라지면 세상은 이토록 각박해진다.

도덕경 65장도 그 얘기를 한다.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예전 도를 잘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명민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순박하게 만들었다. 민지난치 이기지다(民之難治 以其智多).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자꾸 꾀를 쓰기 때문이다. 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그러므로 교묘한 거짓 꾀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의 재앙이 된다. 교묘한 거짓 꾀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의 복이 된다.

백성들이 멍청하면 통치하기 쉬우니 우민화 정책을 펴라는 얘기 아니냐고? 노자에 대한 오해다. 도덕경에 대한 오독이다. 임금이 믿음으로 백성을 대하면, 백성들도 믿음으로 군주를 따른다. 서로 믿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런데 꼼수를 써서 뒷통수를 때리면? 그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당한 상대는 표정부터 바뀐다. 다시는 당하지 않으려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상대의 마음은 알리바바의 주문으로도 열 수 없다. 리더가 잘못 끼운 단추 탓에 신뢰가 깨져버린 탓이다.

신뢰는, 그래서 자산이다. 믿지 못해 써야할 ‘안심 보장’의 구매비용을 없애주고, 줄여주어서다.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이라 했다. 진실한 말은 번지르르하지 않고, 번지르르한 말은 미덥지 않은 법이다. 선한 사람은 꾸며서 말하지 않고, 꾸며서 말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니 임금이라면 잔꾀 부려 백성을 속이려 들지 말고, 백성의 행복과 안위를 목적으로 진심 담은 정치를 하라는 것. 그게 도덕경 65장의 진의다. 요컨대, 신뢰 가득한 나라를 만들라는 거다.

비즈니스라고 다를 것 없다. 1등급 한우라고 해서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알고 보니 식용 얼룩소란다. 무게도 속여 팔았단다. 뉴스를 접한 고객의 경계심은 자연스레 커진다. 고기를 살 때면 전보다 더 살피고, 전보다 더 따진다. 불신하는 고객을 설득하고 증명해야 하니 파는 입장에서는 비용이 올라간다. 믿고 사던 제품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확인해야 하니 사는 입장에서도 성가시고 번거롭다. 신뢰가 깨지니 모두가 불편하고, 모두가 힘들다. '진정성'이 경영의 화두로 부상한 이유다.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유튜버 ‘뒷광고’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뒷광고는 광고임에도 광고임을 숨기는 광고다. 고객을 기만하는 광고다. 내 돈 주고 산 거라며 제품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길래 믿고 구매했는데, 웬걸.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았단다. 배신감이 치밀어 오른다. “돈 받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뒷통수를 치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런 배신이 없다. 진솔한 체험을 공유한다는 수많은 콘텐츠를, 대다수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유다. 자업자득. 유튜버들 스스로가 그리 만들어 놓은 거다. “광고는 광고라고 확실하게 말하라(Make it clear that ads are ads).” 빗나간 유튜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국 광고심의국 가이드라인이다.

모든 거래는 비용을 수반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 거래비용이 치솟는다. 내 일의 목적을 몰라 생기는 일이다. 일의 이유를 모르니 남는 건 탐욕이다. 어차피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이 참에 한몫 챙기겠다는 거다. 매일 아침 펼쳐 드는 신문에서 탐욕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넘쳐나는 건 그래서다. 일을 하면서도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미국 유기농 바디케어 기업인 닥터브로너스는 유기농 비누와 샴푸, 오일 등을 만들어 판다. ‘지구와 사람의 공존’이 사업의 목적이다. CEO도 ‘최고경영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가 아니라 ‘우주업무책임자(Cosmic Engagement Officer)’라고 부른다. 회사경영을 책임지는 것을 넘어 환경과 지구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의미다. 일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기에 해마다 회사 이익의 1/3을 기부한다. 직원 복지 비용도 아끼지 않는다. 사장 월급은 직원 월급의 5배를 넘지 않는다. “우리 직원들은 물론 원료를 공급하는 농부들, 유통업체 등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불필요한 이익을 의미 있는 사회적 운동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 또한 목표다.” 닥터브로너스 CEO인 데이비드 브로너의 말이다. 16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고객신뢰다. 일의 목적을 달성하려 무던히도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에 진실과 진심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신념과 철학의 실천! 필립 코틀러가 주창한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의 모범사례다.

‘구멍가게 마인드’가 필요하다. 시골마을 동네슈퍼 주인의 마음이다. 내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들의 오늘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동전 없는 손님들이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빼먹으라고 커피자판기 위에다 매일 아침 백 원 동전 몇 개를 올려놓는 슈퍼주인의 마음이 그것이다. 교언영색.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 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로는 고객과 직원의 영혼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있게 실천해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다.

훌륭한 경영자로서 조직의 성장을 이끌고 싶다면? 핵심은 고객과의 신뢰, 직원과의 신뢰다. 일의 목적부터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 경영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략을 넘어 철학! 내가 정의하는 경영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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