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자경영 41] 당신이나 잘 하세요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1.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한 마리. 파리가 와서 쇠뿔에 내려앉았다. 얼마 후 파리가 소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 너를 떠날 거야. 붙잡지 마.” 소가 말했다. “어, 너 누구야? 언제 왔어?”


#2.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거북에게 우물의 크고 넓음을 자랑한다. 거북이 말한다. “천 리의 넓이도 동해보다 좁고, 천 길의 높이도 바다보다 얕다네.” 이 말에 깜짝 놀란 개구리가 정신을 잃는다.


나는 내 생각만큼 그리 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만큼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 소를 떠나겠다는 파리와 우물을 자랑하는 개구리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어리석은 파리와 아둔한 개구리가 바로 내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노자형님도 설파한다. 지부지상 부지지병(知不知上 不知知病).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최고의 덕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성인불병 이기병병(聖人不病 以其病病). 성인에게는 이런 병이 없다.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이 없는 것이다. 도덕경 71장이다. 공자형님도 논어에 비슷한 말씀을 남겼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라고.


나는 나를 모른다. 내가 나여서다. 내가 나이니 남이 보는 나를 알 수가 없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또 다른 나가 필요하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얘기다. 나를 보는 또 다른 시선 말이다. 내가 '아는 것'과 '알고 있다 착각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메타인지의 효용은 나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없으니 문제가 생긴다. 내가 나를 몰라 생기는 문제? 과대평가다. 실제보다 나를 높고 크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 안주한다. 답습한다. 자만한다. 하루를 평생으로 사는 하루살이는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모습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인적 없는 뒷방에 들어앉아 혼자 왕 노릇 하는 셈이다.


“지금도 잘 하고 있는 ‘나’인데 고칠 게 뭐가 있을까? 그저 지금처럼만 하면 성공은 계속될 거야.” 부질없는 자기주문이다. 의미 없는 자기세뇌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도 한몫 한다.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일정한 경로에 한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 경로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고의 습관. 경로의존성의 사전적 의미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결정임에도 여태껏 달려온 관성 때문에 쉽게 바꾸지 못하는 거다. 세상만사, 시작이 어렵지 적응만 되고 나면 이후로는 거칠 것 없다. 뿌리만 내리면 안방은 내 차지다. 그 편하고 좋은 안방을 다시 내주라고? 안 될 말이다. 주판알이 익숙한 사람에게 컴퓨터가 불편한 건 그래서다. 익숙함이 불편함을 이긴다. 더 편한 선택지가 있지만, 이미 몸에 익은 걸 선택하는 거다.


활동적 타성, 바퀴자국에 끼인 자동차, 현상유지 편향, 닻 내리기 효과. 모두 관성적 타성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타성에 빠지면? 나락이다. 남들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깊이 깊이 가라 앉는다. 잘라야 한다. 끊어내야 한다. 어제의 나와 결별해야 한다. 혁신은 ‘새로운 처음’을 만드는 행위다. 새로운 처음은 매듭에서 비롯된다. 끝맺어야 다시 시작인 거다.


한때 일본바둑은 세계 최고였다. 지금은 아니다. 일본바둑의 키워드는 ‘능률’이었다. 능률의 바둑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다. 승리에 취한 일본바둑에서 능률은 진리였고, 법(法)이었고, 신(神)이었다. 능률로써 승리했던 일본바둑은 능률에 집착했다. 승리의 도구였던 능률이, 승리를 제치고 목표가 되었다. 일본바둑의 날개였던 능률은 그렇게 일본바둑의 족쇄가 되었다. 일본바둑의 몰락 이유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의 진단이다.


대부분의 기업들도 성장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장기적 정체의 늪에 빠진다. 매출의 정점에서 돌연 추락하는 거다. ‘프리미엄 포지션의 속박(Premium-Position captivity)’ 때문이다. 1등의 지위를 누리고 즐기다 보니 승리에 취하는 거다. 환경을 지배한다 착각하는 거다. 겸손한 이도 지속적인 성공을 맛보면 달라진다. 오만하고 방자해진다. 능력에 비해 과욕을 부린다. 스스로를 과신한다. 겸손과 자만의 차이는 종잇장 한 장이다. 나를 왕좌에 올려주었던 내 역량이 어느 순간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 겸손한 기업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은, 그래서 오만한 기업의 ‘핵심경직성(Core Rigidities)’이 된다. 성공의 저주다.


내 향기에 도취되면 혁신과 성장은 물 건너간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론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변화된 상황에 맞춤하는 새로운 승리방정식을 도출해야 한다. 한때의 승리에 취해 자기복제를 반복하던 일본바둑의 몰락은 답습의 위험과 혁신의 필요를 일깨워준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해법은 겸손이다.


‘내 분야에서만큼은 모르는 게 없다, 모든 걸 다 안다’는 생각이 들면 ‘학사(學事)’다. 시간이 흘러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쯤 되면 ‘석사(碩士)’다.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축하한다. 드디어 ‘박사(博士)’다. 학사, 석사, 박사의 차이를 표현한 유머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한 꼭지를 살짝 각색했다. 도덕경도 얘기한다. 지자부박 박자부지(知者不博 博者不知). 진정으로 아는 이는 두루 해박하지 않다. 해박하다 나서는 이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세상의 가장 큰 문제? 바보와 광신자들은 늘 확신에 차 있는 반면, 현명한 사람들은 늘 스스로를 의심한다는 거다. 20세기 대표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자신만만했다. 세상이 쉬웠다. 문제마다 답이 보였다. 그깟 인생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나이 마흔.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 생겼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큰 병이었다. 수술을 받고 열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회사를 관두고 독립했다. 시간이 흘러 완치 판정도 받았다. 물론 불행하지 않은 삶이다. 감사한 삶이다. 하지만 행복과 감사 여부를 떠나 의도했던 삶은 아니었다. 목표했던 삶은 아니었다. 반백 년을 살고 나니, 인생이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삶은 쉬운 게 아니었다. 아니, 어려웠다. 안다고 여겼지만, 아는 게 아니었다. 모르면서 아는 줄 알았던 거다. 그래서 이제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제는 신중해진다. 치켜들었던 머리를 그래서 숙인다. 나이와 함께 이렇게 철이 들어가나 보다. 이렇게 익어가나 보다.


안영은 중국 제나라의 명재상이다. 사마천이 저서 ‘사기’에서 “안영이 살아있다면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 밝혔던, 천하의 현신이었다. 그에게 마부가 하나 있었는데, 한 나라 재상의 마차를 끄니 기고만장했다. 이를 본 마부의 아내가 말했다. 안영은 재상의 지위에도 늘 사려깊고 겸손한데, 당신은 마부인 주제에 그리 건방을 떠냐는 타박. 이에 마부는 대오각성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이를 눈 여겨 본 안영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마부를 천거하여 대부로 삼았다. 현명한 아내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마부의 이야기다. 마부에게 아내는 스스로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아주는, 훌륭한 메타인지였던 셈. 그 마부, 부러울 것 하나 없다. 내 아내도 항상 내게 얘기해서다. “당신이나 잘 하세요.” 감히 오만하고 방자할 수 없게 만드는 냉철한 나의 메타인지. 결혼 참 잘했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진짜다, 험험.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자경영 40] '어쩌다 사장'과 보이스피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