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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스케치 042] '플랫폼도시'에 사는 우리

안병민의 [통찰을 스케치하다]

벼락거지’. 자신의 소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무주택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청포족’. 부동산 청약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줍줍족’. 청약통장 없이 미분양된 물량을 계약하는 매매인을 가리킨다. ‘몸테크’. 시세차익을 위해 불편한 주거환경을 몸으로 버틴다는 의미다. 최근에 생겨난 부동산 관련 신조어들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영원한 화두다. 유동성이 어떠니, 금리가 어떠니, 다양한 이유로 가격은 널을 뛰듯 춤을 춘다. 얼마 안 되는 주식을 사고 팔면서도 주식 공부를 한다. 부동산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 강연 스케치다.

 

2012년 5월과 2019년 9월. 시차를 두고 한 곳을 찍은 두 장의 사진. 익선동이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 한동안 우리는 경리단길을 즐겨 찾았다. 경리단길은 젊음의 핫플레이스였다. 그 영광이 경리단에서 익선동으로 넘어간 거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①성장 주기가 짧아진 상권과 ②알지 못했던 상권의 급격한 부상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문제. 2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에 듣도 보도 못한 익선동이 새로이 핫플레이스에 등극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는 세 가지다. 먼저 지하철 접근성이다. 익선동에 가려면 굳이 자동차를 갖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도심 대중교통망을 통한 접근성이 좋아서다. 다음은 산업적 배경이다. 익선동은 예전 유명한 요정이 있던 곳이다. 한복과 국악, 다시 말해 패션과 음악 등의 관련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산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종로 3가 주얼리 단지도 한몫했다. 마지막으로 차별적 공간경험이다. 익선동이 가진 역사성은 도심 내 한옥 밀집지역이란 데서 드러난다. 그런데 한옥이 그냥 한옥이 아니다. 힙한 카페와 가게들이 들어서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선하다. 예쁘다. 모던하다. 새롭다. 지하철로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도심 공간에 이토록 색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있었다니. 사람들이 열광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던 공간에 사람들이 몰린다? 이는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젊은 층이 그런 변화를 주도한다. 이면에 숨어있는 요소들을 짚어보자. 첫째, 플랫폼의 출현이다. 플랫폼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공간과 도시를 이미지와 비주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이란 어플이 인기를 끌면서 경험과 관련한 사람들의 행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례로, 카페는 이제 맛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관건이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해야 하다는 말이다. 사진으로 찍었을 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여 자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지 안 되는지가 구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했다는 얘기다.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와 ‘인스타그래머블 시티’ 등의 표현이 늘어나는 이유다. 얘긴즉슨, 공간이 바뀌고, 그 안의 콘텐츠가 바뀐다는 거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내 집에서 볼 수 없는 차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이미지도 고정되면 안 된다. 끊임없이 바꿔줘야 한다. ‘팝업도시’ 개념이다. IT 플랫폼의 핵심수요자인 MZ세대가 오프라인 공간 소비의 행태를 바꿔 놓은 셈이다. 


그러니 플랫폼기업들도 따라 변한다. 온라인 공간에 자리 잡았던 플랫폼 기업들이 오프라인 도시공간으로 내려온다. 리버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역(逆)디지털화다. 디지털기업들의 오프라인 진출을 일컫는 말이다. 아마존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마존북스가 그렇고, 아마존고가 그렇고, 아마존의 홀푸드마켓 인수 사례가 그러하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던 아마존이 오프라인 곳곳에 거점을 만들어간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라이프렌즈샵과 카카오프렌즈샵 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국내 대표적인 플랫폼기업들이 구축한 오프라인 거점샵이다. 지금이야 캐릭터 샵이지만 제품군이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플랫폼경제가 도시 공간을 바꾸는 것처럼 도시의 역사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패러다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18-19세기 산업혁명은 새로운 유형의 도시를 탄생시켰다. 이름하여 ‘산업도시’다. 이전의 도시에는 주거지와 상점 등의 상업시설만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을 맞아 도시에 공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럽만 해도 도시 중심지에서 외곽까지 걸어서 40분 거리의 작은 도시들이 태반이었다. 거기에 공장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인구가 급증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했던 중세 도시의 주거 인프라에 사람들이 몰리니 주거환경은 열악해졌다. 인구가 폭증하니 주택난이 심해졌고, 환경과 공공 위생 문제는 심각했다. 골목길엔 배설물이 넘쳐났고, 이는 우물과 지하수로 스며들었다. 그래서였을까, 19세기에도 팬데믹은 차고 넘쳤다. 콜레라였다. 산업화가 빚어낸 도시화는 잿빛 풍경이었다. 지저분하고 열악한 도시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로 몰렸다. 도시의 처참한 풍경을 뒤로 하고, 돈을 가진 부자들은 외곽 전원에 집을 지어 도심에서 탈출했다. ‘산업도시’에 대한 반발이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지식산업의 중요성이 커졌다. ‘불꽃산업(FIRE Industry)’의 부상이다.  ‘불꽃산업'은 금융업(Financing), 보험업(Insurance), 부동산업(Real Estate)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다. 이런 산업은 지식 베이스 산업이라 대규모 기반 시설이 필요 없다. 교육받은 사람들만 있으면 돌아가는 산업군이다. 이런 인력은 도심에 집적해있다. 불꽃산업 오피스들이 도심으로 들어온 배경이다. 금융회사만큼의 임대료를 낼 수 없었던 제조공장들은 자연스레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도심 안에 새로운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이 융성하면서 도시의 모습과 특징이 달라진 거다. ‘산업도시’에서 ‘서비스도시’로의 변화다.  


20세기 ‘서비스도시’의 특징? 주택과 상가는 여전히 존재한다. 산업시설이 외곽으로 빠지면서 그 자리에 금융업 등 새로운 오피스 산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30년대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중심부에 금융회사와 로펌들이 몰렸다. 초고층 오피스를 만들어 산업을 집적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엘리트를 위한 도시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우리에게도 비근한 사례가 있다. 구로디지털단지다. 1990년대 이후 구로공단에 있던 공장들이 시흥 등 경기도 외곽으로 빠지면서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로 변신했다. 공단에서 오피스 타운으로의 변신이다. 

 

이제 21세기다.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 오프라인 리테일의 붕괴다. ‘서비스도시’의 균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오프라인 리테일은 코로나 때문에 붕괴된 게 아니다. 시작은 이미 2015년부터였다.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의 성장 때문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광군제는 해마다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 중이다. 국내 상황도 다를 바 없다. 백화점의 매출과 이익은 동반 추락했다. 대형마트는 그나마 온라인 부문만 선방 중이다. 아마존, 다우지수, 오프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부동산회사 사이먼 프라퍼티의 주가상승률을 비교한 그래프를 보면, 온라인쇼핑을 대표하는 아마존의 압도적인 성장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유통매장 전체 카테고리 중에서 편의점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업종은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고급백화점 체인그룹인 니먼마커스의 파산은 충격적이면서 상징적이다. 고급백화점의 파산은 곧 고가 명품브랜드의 위기를 의미한다. 짐보리, 아베크롬비, 게스,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코치 등의 브랜드가 상당수 매장을 폐점했다. 리테일 대란이다. 오프라인 붕괴가 따로 없다. 

 

산업도시’의 태동과 ‘서비스도시’로의 변화. 이처럼 도시의 변화는 기술혁명, 교통혁명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바야흐로 ‘플랫폼도시’ 시대다. 기술 중에서도 플랫폼과 관련된 요소들이 도시 전반을 바꿔놓고 있어서다. 플랫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플랫폼은 세 가지 속성을 가진다. 확장가능성과 유연성, 그리고 빠른 속도다. 플랫폼은 거래와 소통의 장을 제공해준다. 어떤 플레이어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확장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커진다. 그래서 유연한 거고, 그래서 변화속도 또한 빠른 거다. 플랫폼의 이런 속성들이 오프라인으로 들어온다. 아마존 사례는 웅변적이다. 아마존 경쟁력의 원천은 물류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가 그 핵심이다. 이틀 무료 배송, 프라임 나우를 통해 비용 지불 시 2시간 배송, 스트리밍 음악과 비디오, 기타 혜택이 포함된 서비스다. 이를 따라간 국내기업이 쿠팡이다. 특별한 것 없다. 배송 서비스에 브랜드를 입힌 거다. 

     

과거 중국집만 봐도 그렇다. 밸류체인 제일 꼭대기에 있던 사람은 중국집 사장이었다. 그 밑에 주방장이 있었고, 그 밑에 배달원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배달서비스가 ‘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으로 편입되면서 가치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중국집 사장 입장에서는 이제 배달플랫폼 네트워크에 들어가지 못하면 생존이 힘들어지는 거다. 플랫폼이 오프라인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고, 이는 또 도시의 변화로 이어진다.      


21세기 ‘플랫폼도시’에도 주택과 오피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새로 생겨나는 게 있다. 공유경제를 중심으로 한 물류 중심의 기반 시설(공유주방 같은 류)들이다. 여기에서 빠지는 건? 쇼핑몰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과 배달 서비스를 아우르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도시 안에서의 배달 혁명을 만들어내기에 생겨나는 변화다. 

 

앞으로의 변화? 점치기 어렵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물류창고 규모의 비행선을 하늘에 띄운다. 일종의 공중 물류센터다. 드론이 센터를 오가며 제품을 배송한다. 하늘로부터의 배송 서비스. 아마존이 2016년 4월에 등록한 특허내용이다. 물류마저도 이렇게 하늘로 올라가면 오프라인 공간에 물류 기반 시설 또한 있을 이유가 없다. 이는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 낼 거다. 드론택시의 일상화를 대비해 영국 런던의 평평한 주택 지붕이나 옥상을 장기임차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드론택시 시대의 승하차장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플랫폼기업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이 바뀐다. 이런 변화 안에서 부동산의 가치와 인식도 따라서 바뀐다.

 

4차산업혁명과 공간혁명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부모세대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최초의 세대인 MZ세대는 가성비를 따진다. 공유주거, 공유부엌 등 공유경제 플랫폼의 성장이 예상되는 이유다. 미니멀리즘의 부상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좁은 공간에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살 수는 없어서다. 하지만 공용 공간은 바뀔 거다. 인스타그래머블해야 해서다. 차별적 경험을 좇는 MZ세대를 붙잡기 위해 위워크 같은 오피스 인테리어가 힙하게 바뀐다. 공유오피스가 근사하다면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그래서 늘어난다. 공용공간의 리테일화다. 결국 혁명적 기술 변화가 고객의 삶과 소비 패턴을 바꾸고, 이는 부동산 유형의 활용도 변화로 이어진다. 공간이 바뀌고 부동산이 바뀌니 도시공간도 달라진다. 

     

요약하자면, 플랫폼기업의 성장에 따라 오프라인 리테일은 쇠퇴한다. 역디지털화 영향이다. 공간의 성격도 달라진다. 차별적, 과시적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체험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져서다. 그러니 팝업공간으로서의 도시 개념이 생겨난다. 힙한 공유경제 공간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도시와 부동산의 패러다임? 나무뿐만 아니라 숲을 보아야 한다. 보다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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