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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혁신의 CEO 노자:‘무위’가 곧 ‘혁신’이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노자 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혁신의 지혜와 통찰을 담은 책 <사장을 위한 노자> 머릿말입니다.

1. 꽤나 세월이 흘러 이젠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얼굴에만 흉터가 세 개다. 꼬꼬마 시절, 비슷한 덩치의 개와 싸우다(?) 생긴 상처, 이웃집 담벼락을 넘으려다 담장 위 뾰족한 쇠조각에 베어 생긴 상처, 키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들이다. 온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끊이질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잔나비’라 부르셨던 이유다. 그만큼 개구졌다. 그런 아이에게 규정과 규범은 따라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외려 도전의 대상이다. 그걸 왜 지켜야 되지? 금기는 없다. 그냥 한다. 그래서 많이도 다쳤고, 그래서 많이도 혼났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2. 그러다 노자를 만났다. 중학교 윤리교과서에서였나 보다.  세상의 틀에 맞추어 성실하게 살라며 모두들 뻔한 이야기를 하는데, 노자는 달랐다. 지금껏 배워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예컨대 공자가 반듯한 ‘본전(本傳)’이라면 노자는 살짝 비틀린 ‘외전(外傳)’의 느낌.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렸던 비주류의 향기. 이제 와 돌아보니 노자가 전하는 전복과 일탈의 혁신 메시지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갔었던 듯하다. 세상만사 따분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의 마음에 그만큼 특별하게 다가왔던 노자. 하지만 교과서는 많은 분량을 노자에게 할애하지 않았다. 우리의 인연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럼에도 그 이름만큼은 선홍빛으로 내게 남았다.


3. 개구졌던 아이는 이내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회사는 광고회사였다. 광고회사 업무는 매월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아니었다. 지난 시즌에 세탁세제를 광고했다면, 이번 시즌엔 신사복 광고를 맡는 식이었다. 지루하고 심심한 건 참을 수 없었던 성격이었기에 광고 일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만큼 다이내믹했고, 그만큼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케터’가 되었다.


4. 광고회사의 초보 마케터는 이후 인터넷 회사, 보험회사의 마케팅 리더로서 마케팅 일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니 직급도 올랐다. 교육회사, 나노융합소재 기술회사에서는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차별화’를 넘어 ‘혁신’을 해야하는 자리였다. 마케팅과 세일즈를 포함하여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아우르는, ‘경영’이란 개념에 눈을 뜨게 된 배경이다.


5. 더군다나 분초 단위로 변화가 일어나는 4차산업혁명의 세상.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뀌는데 ‘MZ세대’까지 속속 조직에 합류하니 수많은 리더들이 맨붕에 빠졌다. 거기다 ‘코비드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직격탄까지 맞았으니 혁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상식은 순식간에 오답이 되었고, 혁신은 생존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마케팅과 세일즈도 혁신해야 했고, 리더십과 조직문화도 혁신해야 했다. 변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변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상이었다.


6. 그 와중에 운명처럼 다시 노자를 만났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중학교 시절 아쉽게 끝났던 노자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대로 ‘노자앓이’에 빠졌다. 노자를 읽고, 노자를 듣고, 노자를 말하고, 노자를 썼다. 세상 모든 걸 노자와 이었고, 세상 모든 게 노자와 이어져 보였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전작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에도 노자철학의 향이 배어들었을 수 밖에. 그만큼 노자를 부둥켜안고, 노자와 함께 살았다.


7. 내 눈에 노자는 창의혁신의 CEO였고, 내 눈에 도덕경은 경영혁신의 바이블이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도전과 혁신의 지혜였고, ‘유무상생(有無相生)’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창의와 상상의 통찰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 싶었던 상식의 틀이 산산이 깨져 나갔다.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의 한 대목이다. 산산조각 나면 큰일난다 싶었는데 산산조각 난 내 생각은 더 커졌고, 더 깊어졌으며, 더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더 자유로와졌다.


8.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 손잡고 다니면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시장 바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다 엄마를 다시 찾는다. 감격이다. 고전 읽기는 시장 바닥에서 엄마를 찾는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길은 없다.” 성균관대 이기동 명예교수님 얘기다.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가치이던 산업화 사회. ‘표준’과 ‘획일’이 경쟁력이자 미덕일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변동성과 불확실성과 복잡성과 모호성이 커졌다. 늘 곁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엄마가 불현듯 사라져 버린 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담론이 필요했다. 노자는 그래서,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찾은 듯, 내게는 ‘유레카’였다.


9. 노자 도덕경에서 찾아낸 경영의 지혜와 통찰을 이 책 《사장을 위한 노자》로 엮었다. 물론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거니와 노자철학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학문으로서의 노자를 논하라면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내릴 수밖에. 하지만 경영이란 분야에서 실무와 교육과 컨설팅을 해 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겼으니 경영 리더를 위한 노자의 혁신적인 시선만큼은 공유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경영은 전략을 넘어 철학”이라 부르짖고 다니던 참이었으니, 딱딱 퍼즐이 들어맞았다.


10. 무지무욕(無知無欲). 아는 게 없으면 욕심도 없다는 뜻이다. 노자가 깊은 수양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갓난 아기'에 비유하는 이유다. 갓난 아기의 ‘개별성’을 극복하고 ‘인(仁)’을 가진 존재로서의 '보편성'을 지향하고자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역설했던 '공자'와 엇갈리는 대목이다. 공자 계열의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던 게 그래서 이해가 된다. 교육을 통해 타고난 악을 제거하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려는 이유였겠다. 노자에게는 이 모든 게 ‘무위’가 아닌 ‘유위’로 보였을 터다.


11. 뜨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써야하는 비행기와 달리 유유히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며 '성공(成功)'이 아니라 '공성(功成)'의 지혜를 깨닫는다. 공은 이루는 게 아니다. 이루어지는 거다. 그래서 '성공'이 아니라 '공성'이다. 문득 돌아보니 ‘무위(無爲)’를 강조한 노자 얘기를 이렇게 책으로 엮는 일 자체가 ‘유위(有爲)’가 아닌가 싶다. ‘공성’을 말하며 ‘성공’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내게서 드러난다. '바캉스'의 어원은 '바카티오'라는 라틴어로 '텅 비어있다'라는 뜻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 책 《사장을 위한 노자》를 통해 내 머리를 다시금 비워낸다. 또 다른 채움을 위해서다. 나의 유위를 꾸짖을 노자에게 늘어놓는, 구차한 변명이다.


12.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다. 보이는 대로 보는 거다. 그래야 세상을 품을 수 있다. 나의 진실을 세상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진실을 내가 품어 안는 것이다. 관건은 '마음 비움'이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뫼라 / 낙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뫼라 / 무심(無心)한 달빗만 싯고 빈 배 저어 오노뫼라" 세조의 맏손자이자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시조다. 잡은 고기는 없지만 배는 교교한 달빛으로 가득하다. 세상만사, 그저 무심할 일이다. '무심(無心)'이 곧 '무위(無爲)'이며, ‘무위(無爲)’가 곧 ‘혁신(革新)’이어서다. 무위하면 못할 일이 없다. 이 책의 독자들과 널리 나누고 싶은 노자의 가르침이다.


2021년 파릇파릇 밤송이가 익어가는 가을 초입에

혁신가이드 안병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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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t.ly/사장을위한노자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나노 융합소재 기술기업 엔트리움의 최고 혁신리더(CIO)로서 고객행복과 직원행복을 위한 일상 혁신에 한창이다.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도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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