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도덕경 80장은 노자형님이 생각하는 이상향에 대한 묘사다.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수많은 도구와 장비를 가졌더라도 쓸 일이 없게 한다.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지 않게 한다. 욕심이 없으면 많이 가질 이유가 없다.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굳이 도구와 장비를 쓸 까닭이 없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멀리 떠나야 할 이유도 없다.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다. 갑옷과 무기가 있지만 진을 쳐서 펼칠 일이 없다.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있지만 안 하는 거다. 알지만 안 하는 거다. 필요를 못 느껴서다.
사인부결승이용지(使人復結繩而用之). 백성들로 하여금 새끼를 꼬아 소통하게 한다. 예전에는 노끈이나 새끼 따위로 매듭을 지어 그 매듭의 수효나 간격으로 뜻을 표현했다. 결승문자다. 문명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순한 결승문자만으로도 삶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소박한 세상을 가리킨다.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저마다 음식을 맛나게 여기고, 저마다 옷을 아름답다 여기며, 저마다 사는 곳을 편안해하고, 저마다 풍속을 기꺼이 즐긴다. 남들보다 더 맛난 음식을 먹고, 남들보다 더 예쁜 옷을 입겠다는 욕심이 없다. 남들보다 더 근사한 집에 살며, 남들보다 더 화려한 명절을 보내겠다는 욕망을 버렸다. 탐욕이 없으니 시기도 없고, 질투도 없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래(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이웃과 왕래도 없으니 각박한 삶 아니냐고? 노자형님의 진의는 다른 데 있다. 저마다의 삶을 즐기니 서로 아옹다옹할 일이 없다. 함께 모여 다른 사람 손가락질하며 수군그릴 일도 없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니 자랑할 일도 없고, 주눅들 일도 없다. 왕이 누군지도 알 바 아니다. 내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니 그걸로 됐다. 내 할 일 다하며 나만 똑바로 살면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각자 자기 집 앞을 쓸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깨끗해진다. 각자가 자기 할 일을 다하면 사회가 할 일이 없어진다.” 독일 대문호 괴테의 말이다. 내 아내도 항상 내게 말했다. 당신만 잘하면 세상은 아무 문제없다고.
그렇다면 노자형님이 그리는 이상사회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도덕경에서는 그 답으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든다. 나라를 작게 만들고, 백성 수를 늘리지 않는 거다.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큰 나라를 만들려고 다들 전쟁을 일삼으니 정작 백성들은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 뿐이랴. 나라가 커지면 힘있는 통솔이 필요하다. 규정과 제도가 생겨난다. 백성들의 개별 상황을 일일이 참작하여 배려할 수 없다. 표준화된 법규를 기계적으로 갖다 대어 ‘맞고 틀림’과 ‘옳고 그름’을 판별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위적인 기준이 백성들의 삶을 옭아맨다. ‘대국다민(大國多民)’을 지향하는 정치의 폐해다.
소국과민은 결국 저마다의 삶을 존중하는 철학이다. 구체적인 일상을 귀히 여기는 철학이다. 개개인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품어 안는 철학이다. 소국과민에서 얻을 수 있는 이 시대 리더의 통찰? 첫째, ‘일상 혁신’이다. “직장인처럼 하는 거예요. 좀 일찍 나오고, 미리 맞춰보는 거죠. 일해서 돈 받으면 그걸로 소주 사먹고 아이들 피자 사주고. 좋은 연기자보단 그저 좋은 아빠,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어요.” 중견배우 성동일 님의 말이다.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를 바꾸겠다는 무거운 사명감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거창하고 화려한 수식어가 없다. 손에 잡히는 일상의 평화가 핵심이다. 둘러보면 다들 큰 얘기만 한다. 정의를 부르짖고, 공정을 역설한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도 얘기했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더 생생하고 진실해진다고.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움직임은 무의미해진다고.
기업들의 비전과 미션도 추상적인 개념들로 가득하다. 최고의 제품과 최상의 서비스로 세계를 선도하고 인류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식이다. 어느 기업이 얘기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표현이다. 구체성을 상실한, 헛헛한 얘기다. 그러니 직원들도 우리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 모른다. 고객들도 해당기업의 철학과 존재이유를 알지 못한다. 비전과 미션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손에 잡히는 일상의 언어여야 한다.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구글의 미션이다.
둘째, '권한 위임'이다.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제대로 된 소통은 힘들어진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주창한 ‘피자 두 판의 법칙’이 있다. 팀원 숫자나 회의 참석자 숫자가 피자 두 판으로 식사할 수 있는 규모 이상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그 이상으로 늘어나면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원활한 소통이 힘들어진다는 거다. 결론도 없는, 회의를 위한 회의만 늘어나서일까? 많은 기업들이 조직을 팀 단위로 쪼갰다. 처, 부, 과 형태의 위계조직을 팀과 셀 단위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잘게 나누었다. 조직 분사도 연이었다. 단위가 작아지니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조직에 묻혀있던 개인의 존재감도 그제서야 빛이 난다.
거대한 조직을 중앙에서 일사불란하게 운용하던 방식은 과거의 유물이다.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조직이 승리하는 세상이 아니라서다. 리더의 생각을 강제해선 안 된다. 리더의 판단을 강요해선 안 된다. 저마다의 창의와 개성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도전을 빚어내야 한다. 권한을 위임받은 소규모 분권조직이 부상하는 이유다.
끝으로 '다양성의 포용'이다. 원숭이와 펭귄, 코끼리와 늑대를 모아 놓고 나무를 잘 오르는 원숭 이만 상을 주면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 사과, 배, 귤, 포도, 수박, 복숭아 등 모든 과일은 나름의 특색이 있다. 어떤 건 영양가가 높고, 어떤 건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어떤 과일은 특유의 식감이 싱그러우며, 어떤 과일은 갈증 해소에 제격이다. 획일적인 기준은 위험하다. 저마다의 장점과 가치를 살려주는 리더가 좋은 리더다. 상대평가 제도를 폐지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는 건 그래서다. 혁신은 다양성을 먹고 자란다. 저마다의 생각과 저마다의 판단. 직원에게 그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
일상을 깨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내가 정의하는 '평화'다. 일상이 깨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고통이자 아픔이라서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맹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 해서 찾은 동네병원. 초음파 검사를 해보더니 맹장에 염증이 생겼단다.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결론은 수술이었다. 밤 9시에 수술실로 들어간 아이는 12시가 되어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어찌 지났는지 모를 폭풍 같은 하루였다. 일상이 어그러지니 모든 게 뒤죽박죽. 행복은 다른 게 아니었다. 일상이 부서지지 않는 것, 요컨대, 평화였다. 성당의 '평화를 빕니다' 인사는 그만큼 깊은 뜻이 있었던 거다.
'소국과민'의 철학은 결국 조직구성원의 평화를 지향한다. 어느 CEO가 내게 건넸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리더십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요. 해마다 연봉을 올려줄 수 있다면 그가 최고의 사장 아닐까요?” 구성원의 일상 평화를 빚어내는 리더. 그가 참리더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