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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리더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5가지 대화의 열쇠

[방구석5분혁신.리더십]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인구 감소와 100세 수명시대. 정년 연장은 정해진 미래입니다. 지금도 세대간 소통이 힘들다 말씀하시는 리더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더할 겁니다. 리더십 붕괴 위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것 없습니다.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목적적 존재로서의 존중. 그리고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에 대한 각성. 그게 다입니다. 그래서 좋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피드백'의 힘을 소개합니다. 리더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현명하고 지혜로운 피드백 말입니다.


“우리는 몇 살까지 살까요?” 강의를 여는 첫 질문이다. 55세를 평균으로 잡고 시뮬레이션 해보았단다. 재수 없으면 135세까지 산단다. 그나마 재수가 좋으면 128살이면 끝낼 수 있을 거란다. 시작부터 웃음이 터졌다. 조직 내 소통을 주제로 한 김경일 교수의 강연이다. 


▶ 50년 터울의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할 60년대생 


지금의 55세라면 대략 66, 67년생이다. 이들이 태어나던 해, 세상엔 106만 명이 태어났다. 올해 출생자 수는 25만이다. 4년 뒤 2026년에는 출생아 수가 20만을 밑돌 거라는 전망이다.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2037년이 되면 전업주부들도 매년 15만 명씩 사회로 복귀해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계산이다. 


지금 55세라면 몇 살까지 일을 해야 할까? 시뮬레이션 결과치는 87세다. 지금의 20대는 90대 후반까지 일해야 한단다. 인구가 1/5토막 나서다. 이렇게 가다가는 50대 남성의 군대 재입대도 정신 나간 소리만은 아닐 수 있다. 현재의 60만 병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말이다. 한 해 20만 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절반이 여자다. 방법이 없는 거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요즘이다. 앞으로 오십 년 동안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거다. 지금의 50대는 치매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거다. 80대 후반까지 일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거다. 나랑 50살 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일하게 될 첫 번째 세대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영화가 있다. ‘인턴’이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이 영화의 부제다. 맞다. 경험은 절대 늙지 않는다. 그 소중한 경험을 나보다 훨씬 어린 세대와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못하는 사람은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정해진 미래다. 


영화 ‘인턴’은 70대 중반의 로버트 드니로가 40년 차이 나는, 자기 딸보다 일곱 살 어린 앤서니 해서웨이가 CEO로 있는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생기는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40년 차이였지만 현실에서는 50년, 60년 터울이 날 거다. 


90년대생이 온다는 건 벌써 옛날 얘기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이 2003년생이다. 3년만 있으면 ‘외계인’이 입사한다. 그때가 되면 느낄 거다. ‘밀레니얼 세대는 내 편이었구나.’ 2003년생들에게 ‘2002 월드컵’은 역사 속 살수대첩 이야기나 다름 없다. 이런 친구들과 한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거다. 


끝이 아니다. 이런 친구들을 노인네 취급할 지금의 중학생들, 또 이들을 노인네 취급할 유치원생들과도 함께 일해야 하는 거다. 50년 터울의 직원들과도 일해야 하는 첫 세대. 그게 바로 1960년대생들이다. 


▶ 피드백-내가 만드는 변화가 즉시 내게로 돌아오다 


어릴 적 처음 TV를 접할 때의 황홀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다 몇 년 후 더욱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인베이더’라는 오락 게임이었다. TV는 보여주는 대로만 보는 거였다. 선택이라고는 기껏해야 몇 개 방송채널을 옮겨다니는 것뿐. 하지만 게임은 달랐다. 내 동작에 모니터가 반응하는 거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 움직임을 반영해서 그 변화를 다른 매체로 보여주는 것. 이게 바로 피드백이다. 우리가 게임에 그렇게나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게임 행위 자체의 재미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변화가 모니터상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경험 때문이었다. 즉, 피드백 때문이었다. 그러니 ‘인베이더’라는 게임을 해보았다면 게임 1세대, 피드백 1세대다. 


그전까지 우리 인간은 그저 평가만 받았다. 그것도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그런데 게임을 접하게 된 6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피드백이란 걸 알게 되었다. 피드백의 힘은 세다.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 분당 200타를 치게 되게 된 것도 피드백 덕분이다. 타자연습 게임이 주는 성취감의 피드백, 이거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키보드를 쓰다가 마우스를 만나게 되었을 때도 다르지 않다. 도스를 쓰다가 달라진 윈도우 환경을 만나니 ‘드래그앤드롭’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 수렁에서 우리를 건져준 것도 지뢰 찾기 게임과 카드 게임이었다. 그 게임들 자체가 재밌었다기 보다는 그 게임들이 주는 피드백에 매료되었던 거다. 피드백에 의한 스킬 업이었다. 

실제 뇌를 MRI로 찍어보면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나신 우리 부모님 세대와 50대는 뇌의 반응이 다르다. 50대는 피드백을 주면 재미없는 행동에도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몰입한다. 맞다, '게임'이 아니라 '피드백'이다. '게임 산업'이 아니라 '피드백 사이언스'다. 


게임은 절대 뇌가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쾌감 중추나 보상 중추가 자극받지 않는다. 오로지 인지 중추만 활동한다. 도박은 다르다. 도박은 인지 중추는 활동하지 않고 쾌감 중추만 가끔씩 반응한다. 오광이 떴을 때, 쓰리고에 피박이었을 때, 잭팟이 터졌을 때 반응하는 거다. 


뇌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도박은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고. 우연한 확률에 의해서 좋은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뇌가 쾌감을 느끼는 게 도박이라고. 반면 게임에는 쾌감이 거의 없다. 피드백을 계속 받기 때문에 끊임없이 인지 중추를 활용해서 몰입하는, 그래서 그 행동을 익숙하게 만드는 게 게임이다. 


그러니 머리를 쓰면 치매가 예방된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끝난 사안이다. 그러면 고스톱 치면 치매가 예방될까? 아니다. 고스톱 잘 치는, 치매 걸린 노인 되는 거다. 


▶ 피드백이 빚어내는 우리 삶의 모습들 

얘기인즉슨, 우리나라 50대는 피드백을 경험한 1세대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변화를 만들어냈는데도 이걸 모니터링하는 매개체에서 그 변화를 반영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는 이유다. 체중을 무려 10kg이나 뺐음에도 신체검사 판정 결과가 여전히 ‘비만’으로 나올 때가 그런 경우다. 


가령 160의 키에 90킬로 몸무게를 80킬로로 뺐는데, 여전히 비만이란다. 그때도 비만이고 지금도 비만이면 죽기살기로 내가 뺀 10킬로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지 못하니 동기는 사라진다. 


우버의 성공 요인도 피드백에 힘 입은 바 크다. 우버를 통해 차를 부르면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그런 피드백 시스템이 우버의 핵심 성공요소다. 배달의민족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20분 후에 음식이 도착한다는 걸 알면 우리는 15분 걸리는 샤워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걸 모르면 20분은 죽은 시간이다. 그러니 실시간 정보를 주는 모든 서비스에 우리가 열광한다. 


어플이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때의 상태바가 기억나는지? 그 역시 다운로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피드백의 또 다른 형태다. 


지금의 50대는 그렇게 피드백 1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피드백 4세대, 5세대, 6세대를 만나게 되는 거다. 일터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곳곳에서. 


▶ 노동을 게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최근 MZ세대의 퇴사가 이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워라밸이 무너진 임원들의 삶을 보니 앞이 캄캄해서다. 입사가 간절했던, 오래 일하고 싶었던 직장일수록 불행한 선배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행복하지 않은 리더는 앞으로 점점 더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번째는 피드백을 주지 않는 문화 때문이다. 매 번, 매 순간 피드백을 주라는 게 아니다. 피드백을 촉진시킬 수 있는 두앤돈트(Do & Don’t)가 있다는 거다. 


여기서 퀴즈 하나. 노동을 게임으로 바꿀 수 있을까? 답은 ‘물론’이다. 두 개의 피드백만 주면 된다. 삽질을 한다 가정하자. 삽에다 붙여놓은 센서가 스마트폰과 연동된다면? 의미 없고 지루한 삽질을 세 번 할 때마다 내 스마트폰에서 ‘뿅’하고 벽돌이 생긴다. 뭐지? 세 번 더 해본다. 세 번 할 때마다 벽돌이 생긴다. 이것 봐라. 벽돌 쌓는 재미가 생겼다. 한참을 하다 보니 지친다. 그럴 때쯤 팡파레가 울린다. 벽돌 100개가 쌓였단다. “개집 완성.” 그럼 500개가 쌓이면 뭐가 나오는 걸까? 삽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여기에 센서를 하나 더 붙여볼까? 이번 센서는 내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인터넷망에 연동된다. 내가 삽질을 하는 순간, 내 실적이 전 세계 랭킹으로 바뀌어 스마트폰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삽질을 열심히 하니 랭킹이 올라간다. 10만 수준의 랭킹에서 만 단위로 올라가니 디지털 아이템이 선물로 주어진다. 그러니 미친 듯이 삽질하는 거다. ‘스코어’와 ‘랭킹’이라는 두 개의 피드백만으로 이렇게 삽질이란 노동은 몰입감 쩌는 게임이 된다. 


▶ 리더가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1-과정을 언급하라 


교육(education)의 시대가 저물었다. 바야흐로 학습(learning)의 시대다. 교육이 수동적이라면 학습은 능동적이다. 교육이 주어진 커리큘럼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거라면, 학습은 호기심을 기반으로 스스로 찾아다니는 거다. 일터에서도 다를 바 없다. 일방적인 지시는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피드백은 그 열쇠다. 


50대 리더들이 기억해야 할 대화의 다섯 개 열쇠. 첫 번째는 재능과 노력의 구분이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예전의 동기부여 메시지였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면 진짜 ‘조금만’ 한다. 노력이 아닌 재능에 대한 칭찬이어서다. 재능을 칭찬받으면 절대 노력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성과를 내면 재능이 없다는 뜻이 되어서다 


여기서 또 질문 하나. 젊은 직원들과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접근성이다. 중요한 건 두 번째다. 공정해서다. 게임은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서다. 요즘 아이들이 농구를 잘 안하는 이유와 같다. 농구는 재능이 중요해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이클 조던의 재능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다. 


어떤 일이든 초창기에는 노력이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과정이 결과를 만드는 거다. 100년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모두가 노력 장인들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우사인 볼트처럼 재능이 있어야만 금메달을 딴다. 지금 아이들이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몸을 쓰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다. 나는 일곱 시간 동안 연습했는데 쟤는 한 시간만 하고도 나보다 잘해서다. 그게 공정하지 않다 생각해서다. 


그런데 게임은 여전히 일곱 시간 한 내가 한 시간 한 쟤보다 잘한다. 공정함을 무너뜨리는 이른바 치트키가 발견되거나 개발되면 그 게임이 무너지는 건 그래서다. 


그러니 과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지금의 30대, 20대, 10대한테는 불공정한 거다. “잘했어”는 불공정한 칭찬이다. 과정을 언급해야만 공정한 칭찬이 된다. 과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소통이 아닌 거다. “니가 일곱 시간 걸려서 이 다섯 개의 꼭지를 이 세 개의 포인트를 짚어내면서 했구나. 잘했어.” 이게 공정한, 게임적 소통이자 게임적 대화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리더가 나한테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잘했다”라고 얘기했어도 차원이 다른 거다. 


▶ 리더가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2-인격 부여 여부를 판단하라 


두 번째는 인격 부여 여부다. 두 개의 칭찬을 비교해보자. 


A : “철수야, 연구계획서 너무 좋네. 특히 서론 부분 아주 훌륭해. 철수, 대단한데.”

B : “연구 계획서 작성이 잘 됐군.” 


맞다, 주어가 바뀌었다. B의 칭찬에는 사람이 없다. 젊은 친구들은 이 차이를 느낀다. 그래서 칭찬에는 인격을 넣어야 한다. 반대로 질책할 때에는 인격을 빼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작은 차이지만 중요한 변수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지휘자 카라얀이 그랬단다. 훌륭한 연주에는 사람의 이름을 넣어 칭찬해주고, 불만족스런 연주에는 사람 이름은 빼고 ‘3번 바이올린’ 식으로 질책했단다.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었던 연주자들의 얘기다. 이야기를 할 때 인격을 부여할까 말까? 이것만 잘 판단해서 실천해도 좋은 소통이 된다.

 

▶ 리더가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3-의도 없는 행동도 칭찬하라 


셋째, 의도 없는 행동에도 칭찬하라는 거다. 많은 리더들이 얘기한다. “좀 알아서 움직여줬으면…” 게임에서는 엄청난 노력으로 맞추든, 소 뒷걸음 치다 맞추든 똑같은 1점이다. 어쩌다가 운 좋게 맞혔다고 점수 안 주는 게 아닌 거다. 이른바 우연성의 강화다. 우리 실생활로 치자면, 별 뜻 없이 한 행동에 받는 칭찬이다. 지시받은 건 아니지만, 그냥 한 행동인데 칭찬으로 돌아오는 거다. 


이게 왜 중요할까? 자율적인 직원을 원한다면 시킨 일을 잘 해왔을 때에만 긍정적 보상을 해줘서는 안 된다. 별 뜻 없이 한 행동 혹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한 행동인데도 조직에 도움되는 행동이라면 놓치지 않고 칭찬해줘라. 직원들이 달라진다. 책임감을 갖고 자율적으로 일한다. 


시킨 일을 잘해올 때만 칭찬하면 시키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은 일임에도 조직에 도움이 된다면 아낌없이 칭찬해야 한다. 자발적인 열정과 헌신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 리더가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4-관계주의 문화를 이해하라 


네 번째는 관계주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관계주의 문화가 강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와의 관계로 나를 인식하고 표현한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를 세 페이지나 썼는데도 자기 소개가 없다. 내 소개서임에도 시작은 늘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다. 


‘우리 와이프’, 영어로는 ‘our wife’라는 충격적인 표현도 그래서 나온다. 혼자 사는 집인데도 ‘우리 집’이라 부른다. 심지어는 나라도 ‘우리나라’다. 내가 ‘나’로서 표현되는 게 아니라 내 주위 나와 비슷한 ‘우리’로 표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나한테 덕담을 하더라도 내 관계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면 불편하다는 거다. 이걸 모르니 나오는 실수가 이거다. “김대리는 요즘 젊은 친구들 답지않게 되게 성실하네.” 이건 칭찬이 아니다. ‘나는 요즘 젊은 직원들을 안 좋아해’라는 의미가 녹아 있어서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우리 팀장님은 (나 같은) 젊은 직원들을 안 좋아하시는구나. 결국 나도 싫어하시겠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칭찬해야 할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런 거 잘한다던데 김대리가 바로 그 친구였네.” 이게 정답이다. 이해가 잘 안 간다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쉽다. “상무님은 나이 드신 분 답지 않게 옷을 잘 입으세요.” 기분이 좋은가? 뭔가 찜찜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와 같은 관계주의 문화에서 세대간 소통을 매끄럽게 하고 싶다면 이런 시그널을 지속해서 보여주라. “당신은 나에게 당신 세대의 장점을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 리더가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5-방법을 물어라 


방법을 물어보라. 리더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화의 열쇠, 그 마지막이다. 결과를 묻지 말라는 거다. 요즘 세대한테 “잘했어” 이건 칭찬이 아니다. 소통도 아니다. 중요한 건 방법을 물어보는 거다. 골프 치는 것보다 골프 쳤던 얘기 하는 게 더 즐겁다. 군 복무는 싫지만 군대 얘기 하는 건 신난다. 


인간은 무엇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때 즐겁다. 그 이유만으로 그게 좋다. 그런데 ‘잘했어’라고 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방법을 물어봐야 그 직원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아진다. ‘열린 질문’을 활용하란 얘기. 그게 소통이다. 


▶ 리더의 자기관리-스스로를 보호하라 


이제 마지막 이야기다. 리더로서 직원들로부터 받는 상처는 사실 만만치 않다. 비단 조직 내에서의 세대 갈등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이란 게 그렇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들, 모두가 고통이다. 몸을 다쳐서 아플 때도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뼈가 부러졌든, 살점이 떨어져 나갔든 아픈 거다. 


이 통증을 느끼는 부위는 어딜까? 뇌 중심부 하단에 위치한 편도체 안이다. 뇌가 고통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진통제를 먹는다는 건 뇌를 진정시키는 거다. 진통제 겉봉에 두통, 치통, 생리통 등 만병통치의 문구들이 써있는 이유다. 통증 부위와 상관없이 뇌를 진정시키면 통증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이게 신체적 고통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정신적 고통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우리의 뇌가 신체가 겪는 하드웨어적 고통과 정신이 겪는 소프트웨어적 고통을 구분하지 못해서다. 


조직의 임원들 정도 되면 사람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는 이들이다. 나의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아니면 그냥 길에서 지나가던 사람이든 상관없다. 사람 때문에 내가 고통받았다는 건 그 사람이 휘두른 칼에 찔린 거다. 그 사람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뼈에 금이 간 거다. 다친 거다. 그러면 몸을 돌봐야 한다. 치료해야 한다. 이걸 정신력으로 이겨내겠다는 건 무모함이다. 오만함이다. 


리더라면 자기관리도 경쟁력이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오랫동안 살아야 되고, 오랫동안 일해야 되고, 40년-50년 터울의 세대와도 일을 해야 하는 인류 첫 세대 50대. 그러니 내 몸을 소중히 돌보아야 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능력이다. 다른 것 없다. 50대 리더들이여, 건강하자! 힘 내자! 오늘도 파이팅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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