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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중도를 위한 속 시원한 정치 판타지

[방구석5분혁신.드라마 리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정의를 위해 싸웠다. 어느샌가 괴물이 되었다. 권력에 중독되었다. 진실을 왜곡했다. 정의를 배반했다. 한 사람이 분연히 일어섰다. '국민이 아닌 나를 위해 싸운다.' 그의 외침이 퍼진다. 대한민국이 흔들린다. 그는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괴물이 될까? 돌풍이 몰아친다. 우리는 그 한가운데 있다.


1. "왜 독재에 반대했지? 그들도 산업화를 이뤄냈는데! 왜 쿠데타에 저항했지? 그들도 가난한 조국을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이 있었어. 다른가? 그들의 명분, 당신의 명분, 뭐가 다르지? 우리가 아니면 이 나라가 무너진다는 그들의 오만! 당신의 오만! 모두 같은 갑옷을 입고 있어. 들고 있는 방패만 다를뿐."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사람들. 세상의 불의에는 분노하지만 자신의 불의에는 한없이 관대한 괴물들! 그 괴물들을 껴안고 한 시대를 마감하려는 사람의 이야기.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지. 근데 한번은 믿어보고 싶다. 진실이 이길 거라고."


2.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세상,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약속한 자들이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었어." 추악한 부패와 협잡의 민낯. "썩은 열매 한 둘 있다고 나무를 베어버릴 순 없어요."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현실 같은 드라마.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죠. 정치가 그래요." 그만큼 많은 것들이 실제와 겹쳐 보이네요.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라. 성역없이 파헤쳐라. 그런 말 하는 놈들이 성역이던데?" 돌풍 같은 대청소가 진짜 필요한 이유. "전직 대통령을 성역화 하는건 살아남은 자들의 유산 싸움 아닙니까? 그 유산! 여러분들이 사이좋게 나눠 가지세요. 저는, 부채를 감당하겠습니다."



3. 철학적 화두도 많이 보입니다. 선량한 목적을 위한 오염된 수단은 당당한가? 죽음으로 덮어버린 진실의 왜곡. 그들이 구축한 탈진실의 세상에서 그들은 영원한 무오류여야 하기에. "모욕당할 거에요 우리의 삶이.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죠. 선배,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기록해야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나무를 썩게 만드는 것도 벌레 한 마리로 시작한다.


4. "국민을 위한 정치? 아니야. 나를 위해서지.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는 나를 위해서. 불의한 자들의 지배를 받을 수 없는 나를 위해서." 국민이 아니라 나를 위해 정치했다는 주인공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내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에 이익이 되더라도 하지 않겠다' 했던 중국 철학자 양주가 겹쳐 보이는 대목. 명분을 위한 희생이 비인간적인 것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라는 철학. 드라마 '돌풍'의 주인 공 역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을 부정함으로써 헛헛한 '대의명분'의 허구성 지적. '국민과 시대의 부름 때문에 나왔다'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공허한 메시지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 "미래를 약속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어떤 미래가 오든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하는 자들이야." "느리더라도, 그래서 억울하고 눈물이 나더라도 나는 믿는다. 세상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견디면서 버티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5. 행간에서 읽어내는 노자철학. 그들이 그렇게 집착했던 권력을 외려 버리고 내던짐으로써 결국 승리하는 주인공. 권력에 중독된 뇌로서는 상상 조차 못하고, 흉내 조차 낼 수 없는 방식. 맞다, 비워야 채운다. 버려야 얻는다.


6. 속도감 있는 빠른 전개와 캐릭터 강한 선 굵은 연기들이 빚어내는 긴장감이 압권. 하지만 중반 내내 이어진 강대강의 반전 스토리가 주는 피로감이 작지 않습니다. 대신 귀에 쏙쏙 박히는 주옥 같은 명대사가 매 회 넘쳐나네요. "이 모든 게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닙니까!" "다시 시작하고 싶다. 숨 막히는 오늘의 세상, 다 쓸어버리고."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만 정 다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판타지 드라마네요. 돌풍!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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