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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스케치 001] 트렌드 인사이트와 비즈니스 상상력

보통마케터 안병민의 통찰스케치

“여러분의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만들어 드리려고 합니다.”


국내 손 꼽히는 트렌드 전문가 중 하나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의 강연 첫 마디였다. 오늘 강연 주제는 트렌드다. 2016년도 이 땅에선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 김용섭 소장은 변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변화들이 현재 우리의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해 재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강조했다. 오늘 강연은 김용섭 소장과 함께 한 그 현상과 해석의 시간으로 떠나는 트렌드 여행이다.



1 마케팅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국민속촌은 50대 이상 관광객들이 주로 찾던 곳이었다. 젊은 층들에게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어딘가’였던 셈. 그런 민속촌에 변화가 생겼다. 최근엔 내방객의 80% 정도가 40대 미만이다. 과연 민속촌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센스 있는 소셜마케팅 때문이라는 분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반만 맞는 얘기입니다. 소셜마케팅도 핵심이 바뀌지 않으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소셜로 대중과 소통하는 콘텐츠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본질을 바꾼 거지요.”


민속촌은 업의 본질을 바꾸었다. 예전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정적인 컨셉이 아니라 그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동적인 컨셉으로의 변화, 이른바 ‘조선시대로의 타임머신 여행’이었다. 예컨대, 민속촌엘 가면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기생’과 ‘양반’같은 캐릭터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놀 수 있다. 디즈니 만화 속 캐릭터들이 디즈니랜드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처럼 조선시대의 캐릭터들이 민속촌을 누비고 다닌다. 조선시대 캐릭터들의 소환이다. 그러니 ‘금부도사’ 캐릭터가 내리는 사약도 관람객들이 웃으며 받아 마신다. 이런 게 콘텐츠다. 이런 게 있으니 소셜마케팅도 성공하는 거다.


“돈 줘서 만든 콘텐츠는 한계가 있습니다. 명확한 거래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 안 받는 사람들, 즉 고객들이 만드는 콘텐츠, 이게 관건입니다. 그 파괴력이 엄청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객이 콘텐츠를 만든다? 조선시대 캐릭터들이 가득한 민속촌에 스파르타 전사의 복장을 한 장난끼 가득한 고객들이 들이닥친 거다. 그렇게 민속촌의 캐릭터들과 한바탕 즐겁게 논다. 콘텐츠의 선순환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여름엔 민속촌에서 ‘얼음땡’ 놀이가 벌어졌다. 수백 명의 관람객들이 함께 즐겼던, 역대 최대 규모의 ‘얼음땡’ 놀이였다.  


“민속촌과 비슷한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 사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저출산국가’에  ‘노령화사회’입니다.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디즈니랜드 매출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디즈니랜드는 역대 매출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간단합니다. 타깃을 바꾼 겁니다.”


아이가 줄어드니 매출도 떨어지던 디즈니랜드의 승부수는 타깃 변경이었다. 디즈니랜드가 찾아낸 새로운 타깃은 노인, 즉 손주를 가진 노인이었다. 손자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적인 노년처럼 인식되게 하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노인들을 위한 50% 할인권을 제공했다. 디즈니랜드의 거리에 예전보다 다양한 고객층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버 계층에 대한 마케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구매력을 가진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의 사례에서처럼 실버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기회는 엄청나다. 노인이라고 해서 단지 요양, 건강이란 테마에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지금의 노인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옛날의 노인이 아니라서다.



2 세계의 기업, 플랫폼을 지향하다


삼성전자 로고에서 ‘전자’라는 두 글자가 사라진 게 2015년 5월부터다. 물론 사명이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대고객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삼성’만 쓴다. 이유가 뭘까? ‘전자’의 이미지가 낡았다는 거다. ‘전자’는 ‘제조’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제조’가 핵심이 아니다. 비즈니스의 핵은 ‘플랫폼’이다. ‘전자’라는 단어가 향후 미래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삼성은 과감하게 ‘전자’라는 단어를 뺀 것이다.       

             

“전장 부품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장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요. 그럼 이후에는 무얼 먹고 살 건가, 삼성전자도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입니다. 이번 CES에서도 자동차가 큰 이슈였습니다. 전자제품 박람회로 유명한 CES에서도 더 이상 전자제품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번 CES의 키노트 스피커 8명 중에 자동차 회사 CEO가 2명이었던 데 반해 전자 제조사의 CEO는 없었습니다.”   


구글이나 애플이 자동차를 만든다면 살 거냐, 라는 설문에 무려 50%의 사람들이 사겠다는 대답을 하는 요즘이다. 고객은 이제 자동차 역시 스마트카, 즉 IT 제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곧 기존 자동차 업계 플레이어들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회사를 경쟁으로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전자’라는 두 글자를 뺀 것처럼 구글도 사명을 바꾸었다. 구글이 새로 발표한 사명은 ‘알파벳’이었다. 검색이라는 영역에 갇혀있는 구글의 이미지를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비즈니스 확대를 꾀하려는 전략이다. 구글은 엄청난 문어발 기업이다. 안 하는 게 없는 회사가 바로 구글이다. 최근에는 우주자원 개발도 하겠다고 나섰다. 지구와 달 사이를 통과하는 소행성을 낚아채 그 행성에 녹아있는 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거다. 웃을 일이 아니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구글은 그 선봉장이다. 이제 구글은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단지 하나의 사업단위일 뿐이다. 알파벳의 향후 비즈니스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여기서 아쉬운 부분 하나. 구글이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혁신하는 동안 우리의 기업들은 뭐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기업의 변화는 굉장히 빠르다. 빨라야 살 수 있어서다. 애플도 이름을 바꾸었다. 애플의 원래 사명은 ‘애플컴퓨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애플’이다. 삼성전자처럼 이 역시 비즈니스 확장에 노림수가 있다. 지금은 시계에 이어 자동차도 만들고 있는 애플이 아니던가. 애플이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비즈니스를 펼쳐 나갈지 그 태도와 방향을 보여주는 전략적 결정이다. GE도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고 한창 변신 중이다. 얼마 전엔 가전사업 부문을 중국 하이얼에 팔아버렸다. GE의 행보는 산업 현장과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에 발 맞추어 새로운 답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3 IT 없이 비즈니스 없다


세계 여기저기서 우버 열풍이 거세다. 우버의 출현은 파괴적혁신 그 자체다. 차를 필요로 하는 고객과 놀고 있는 일반 차를 연결해준 것뿐이다. 하지만 우버의 등장이 택시, 렌터카, 택배업계에는 위기다.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열쇠는 고객이 갖고 있다. 마차를 자동차가 대체했듯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인터브랜드라는 글로벌 브랜드컨설팅 컴퍼니는 매년 글로벌 브랜드 순위를 선정해서 발표합니다. 그런데 한번 보세요. 전 세계 상위 20개의 파워 브랜드 중에서 IT 와 무관한 건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뿐입니다. 이제 IT를 외면한다는 건 비즈니스를 안 하겠다는 얘기나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애플과 구글을 필두로 죄다 IT 기업이거나 IT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다. 김용섭 소장이 보여주는 세상은 무척이나 다채롭다. 그는 이어 보험회사의 예를 들었다. 보험회사에서는 보험 가입자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잘 생각해보면 고객의 건강을 잘 챙겨주는 게 비즈니스의 핵심인 셈이다. 하지만 예전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상만 하면 실현되는 IT 세상이라서다. 예컨대, 보험회사에서 가입고객들에게 스마트디바이스를 나눠준다. 이를 통해 고객의 맥박, 체온, 혈압뿐만 아니라 고객의 운동량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건강관리를 보험사에서 직접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건다. 일주일에 얼마 이상의 운동을 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글로우캡’이란 제품도 재미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노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약을 먹는 노인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약을 챙겨 먹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깜빡,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 약 먹는 시간마다 알람을 울려주는 약병 뚜껑이 나왔다. 약 먹기를 잊어버린 나에게 메일도 보내주고 전화까지 걸어준다. 그랬더니 50%선에 머물던 복약률이 90%선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렇게 약병 뚜껑에도 사물인터넷을 위시하여 다양한 IT 기술이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 생각해 볼 이슈가 있다. 이런 제품은 어떤 회사에서 만들어야 할까? 제약 기업일까? IT 기업일까? 아니면 락앤락 같은 용기를 만드는 회사일까? 답은 ‘아무나’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비즈니스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젠 제약기업과 IT 기업과 식품용기를 만드는 기업이 이렇게 경쟁관계를 이룬다.


“유럽에 어느 코미디 극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줄어들어 울상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도 IT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가 됩니다. 페이퍼래프(Pay Per Laugh). 다시 말해 입장은 공짜인데 웃을 때마다 과금하는 방식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각 좌석마다 설치되어 있는 태블릿PC를 통해 관람객의 얼굴을 인식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웃을 때마다 카운팅을 합니다. 그럼 관람객이 어떻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냐고요? 그래서 과금에 24유로라는 상한선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장사가 되더라 하는 겁니다. 이젠 업종을 불문하고 IT가 답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한 후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음식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IT가 답이다. 식탁을 스크린 삼아 빔프로젝트를 통해 주문한 음식과 관련한 재미있는 영상을 쏘아주는 거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영상 관람 시간으로 바뀐다. 식당도 더 이상 맛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맛뿐만 아니라 멋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총체적인 고객경험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IT로 시작한 김용섭 소장의 이야기는 ‘로봇’으로 이어졌다.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로봇 ‘페퍼’ 이야기다. 페퍼는 소프트뱅크가 프랑스의 한 로봇 회사를 인수해서 만들어 파는 건데 가격은 2백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소프트뱅크가 주축이 되어 폭스콘(제조)과 알리바바(유통)가 합작해서 만든 회사이기에 생활용 로봇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초기 투자를 하는 거다. 페퍼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과의 협력을 통해 이미 다양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의 대출, 신용상담뿐만 아니라 네슬레에서 커피머신 영업도 담당한다. 다가 아니다. 영어 앱을 탑재하면 영어 선생님이 되고 불어 앱을 탑재하면 불어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먼 일이 아니다. 로봇,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이슈다. 이미 로봇 셰프가 만들어내는 음식을 우리는 즐기고 있다.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미래는 지금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실제 각종 데이터들을 보면 기업 수명이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10년을 버티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망하는 기업들이 일을 못해서 망하는 걸까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빨라진 산업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사실 기업이 망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인간 수명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망하는 기업이 있어야 새로 생기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새로운 판이 짜지는 겁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머리털이 쭈삣 곤두서는 무서운 말이다. "2020년에는 고속도로에서 인간이 운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무인자동차의 상용화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의 말이다. 변화는 빛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나의 비즈니스는 2020년에도 계속 유효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닥치면 이미 늦은 거다.



4 취향이 콘텐츠고 취향이 비즈니스다


특별한 취미는 밥벌이가 되기도 한다. 올드 카마니아들이 취미로 구식 차를 개조하다가 아예 남의 차를 리스토어해주며 전문가로 나서는 경우다. 특정 분야의 깊은 애정이 콘텐츠 창조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테이스테셔널’(Tastessional)이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테이스테셔널, ‘Taste’와 ‘Professional’ 이 합쳐진 말이다. 이제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있어 ‘취향’이란 개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취향이 없으니 ‘아무 거나’ 먹는다. 그러니 개성, 창의력도 없다. 하지만 이젠 중국집에 가더라도 모두가 메뉴를 통일해야 하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다. 나만의 개성, 기호, 감각, 안목, 경험이 중요한 세상이다. ‘덕후’들에 꽂혔던 부정적인 시선들은 이제 긍정과 열광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비행기 소리만 듣고도 어느 회사에서 만든 엔진이 탑재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는 사람이 있다. 경이로운 능력이다. 그 동안 음지에서 암약하던 이런 류의 덕후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프로그램이 바로 MBC의 <능력자들>이다. 내가 즐기던 나의 취미와 기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콘텐츠가 된다.


“미국의 한 사례인데요. 열 한 살 때 패션에 투신한 친구가 있습니다. 내 취향대로 옷을 입고 그걸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슬금슬금 늘어나던 방문자들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 친구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패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13살 때 세계적인 패션쇼에 정식으로 초청받기도 했고요. 나만의 패션스타일이란 테마로 책도 내고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칩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의 나이지만 그녀는 벌써 업계 경력 10년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뭘 입었는지가 곧 콘텐츠가 되고, 비즈니스가 된다. 그녀는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뿐이지만 남들에겐 패션에 대한 근사한 안목이자 취향이며 콘텐츠다. 1,000만에 달하는 구독자를 거느린 미국의 대표적 유튜브 스타 베서니 모타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MBC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5만 명이 채 안 된다는 걸 감안하면 그녀의 유튜브는 그 자체로 엄청난 미디어다. 미국의 ABC 뉴스도 구독자 수가 150만 수준이니 오바마가 그녀의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장난감을 갖고 노는 영상으로 수십억의 돈을 버는 아이들도 있다. 그저 즐겁게 장난감을 갖고 노는 영상들이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이 영상들을 보며 장난감 정보를 확인하고 어떤 장난감을 살지 참고도 한다. 그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꼬마들이 장난감 업계의 파워 리뷰어이자 테스터가 되는 순간이다. 시대가 바뀌니 콘텐츠도 바뀐다. 지금까지의 마케팅은 그 주체가 어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 물건은 아이들이 마케팅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서울 언저리에서 거주하는 평범한 30대 샐러리맨. 어릴 때부터 건축, 인테리어, 만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 세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내 집도 아닌 전셋집을 꾸민 노하우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유명해졌다. 18평형대의 방 하나 딸린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해 조금씩 집을 늘려 이사를 가며 직접 꾸민 전셋집들이 온라인을 비롯해 여러 인테리어 관련 도서와 잡지에 소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첫 저서인 《전셋집 인테리어》가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등 인테리어계의 변방으로 취급 받던 전셋집을 인테리어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시켰다. 네이버 블로그 ‘김반장의 이중생활’을 통해 공감 가는 전셋집 인테리어 노하우를 공개하며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인테리어 업계 스타로 등극한 ‘김반장’에 대한 소개 글이다. 구체적인 신원도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모두의 스타가 되어 TV에도 출연한다. 배운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쌓은 능력이 무서운 세상이다.


“혹시 VERY STREET KITCHEN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작년 3월 오픈한 식당인데요. 만리재 고갯길에 있는 식당입니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밥 먹으러 올까 싶은 동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웬만한 트렌드세터들은 한번씩 다 다녀간 성지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취향과 안목에 있었습니다.”


이 식당의 주인은 오준석이란 사람이다. 셰프냐고? 천만에. 베리의 대표인 오준식씨는 디자이너다. 오대표는 현대카드 디자인실과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및 디자인랩에서 디자인을 총괄했다. 오 대표를 포함해 식당 직원 대부분이 디자이너 출신이다. 오 대표는 음식을 소프트 산업(soft industry)이라고 정의한다. 음식과 디자인이 통하는 게 그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파스타는 흔히 먹는 국수 모양도 있지만 꼬아진 모양도 있고 다양해요. 파스타 모양만을 주제로 책 한 권을 낼 정도로 수백 가지 종류가 있어요. 음식도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파스타는 산업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요.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를 생각해 보세요. 떡 모양이 몇 가지나 떠오르세요. 떡볶이도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양한 종류의 떡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해보고 싶은 겁니다.식당 ‘베리’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실험은 음식에 그치지 않고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과 문화까지 다시 디자인한다. 이 식당은 그런 일련의 실험들이 진행되는 그들의 아지트인 셈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취향과 영감이 음식과 식당으로 전이되니 콘텐츠가 된다. 이런 사례들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리단 길이 그랬고 가로수 길이 그랬다. 이제 동네에 이처럼 뜬금없는(?) 가게가 문을 열면 가게 주인의 배경을 조사해보고 동네 건물들을 매입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매장이 명소가 되면 일대 상권이 함께 뜬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취향은 그래서 곧 비즈니스다.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알게 된 소비자는 그 취향에 맞는 브랜드와 상품에 대해선 확고한 브랜드 충성도를 가진다. 온전히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자 취향에 부합하는 브랜드라 여기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 브랜드가 자신의 취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유명브랜드라고 무조건 혹하지 않는다. 결국 브랜드의 매력도를 얼마나 높이느냐, 브랜드거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믿음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에르메스라는 명품브랜드가 카페를 차려 에르메스 잔에 커피를 담아 파는 이유다. 커피 팔아 돈 벌자는 게 아니다. 에르메스에 대한 경험과 취향을 파는 거다.  


“이탤리 밀라노에는 특별한 향수가게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브랜드가 없는 향수를 팝니다. 수많은 향수들이 특징에 따라서 진열되어 있는데요. 브랜드만 보고 향수를 구매하던 무취향의 고객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향수 취향을 판단하게 해 주는 겁니다. 다시 말해 향수를 파는 게 아니라 취향을 파는 겁니다."



5 군대식 조직 문화를 바꿔라


매년 기업들의 신년회 단골 이슈는 ‘위기’다. 그래서 “혁신하자, 바꾸자, 새로운 사업하자“ 같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말과 달리 어렵다. 이유는 뭘까? 여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A기업은 본사 직원 식당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점심시간인 12시 이전에 밥 먹으러 오는 직원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근무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 거라면 심각한 오판이다. 오히려 조직의 낡은 생각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전 직원 지리산 등반으로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세상이 아니다. 위기는 비전으로 풀어야 한다.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 나오는 명령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피존, 남양유업, 대한항공, 몽고간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업들의 수많은 갑질 사례를 보면 이제 기업의 비즈니스는 제품력이나 마케팅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조직문화다.  


혁신을 강조하는 B기업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여자모델이 제품을 들고 있는 사진을 넣어 보도자료를 뿌린다. 이런 ‘가슴마케팅’은 제품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1980년대 일본 전자회사들이 하던 방식이다. 그러니 이 회사가 이야기하는 혁신에 믿음이 안 간다. 이런 관성이 우리 조직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결국 경영진의 상상력이 문제다.


트렌드는 점이 아니라 선이다. 하나의 흐름이다. 그 흐름의 방향이 중요하다. 이제 비즈니스는 고객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트렌드가 중요하다. 김용섭 소장과의 90분간의 트렌드 여행은 나와 내 조직의 비즈니스 시나리오를 다시금 그려보는 계기로서 의미가 크다. 고객 삶의 변화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미래지향적인 통찰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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