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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스케치 006]함평 나비, 블루오션을 만들다

보통마케터 안병민의 통찰스케치

코 끝이 찡했다. 단순한 성공사례라고만 알고 있던 사실의 이면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땀과 애환이 켜켜이 쌓여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냥 여느 성공사례에 부록처럼 딸려 나오는 그런 정도의 얘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동네. 하지만 '어차피'가 아니라 '오히려'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들은 패배, 절망이라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자그마한 시도들이 하나씩 성공으로 쌓여갔다. 그렇게 나비는 날개를 폈지만, 자만이 불러온 아픔에 사람들은 또 한번 좌절한다. 그러나, 이제 예전처럼 허무하게 주저앉지 않았다. 전체 마을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의 들러리도 없이 모두가 주인 되는 성공적인 축제를 다시 만들어 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적'.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는 '기적'이 아니었다. 그들의 열정과 도전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당연한 '성공'이었다. 


눈치 채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1년에 명절이 설 명절, 추석 명절, 그리고 5월 나비축제 명절, 세 개라는 전라남도 함평의 ‘나비 축제’ 이야기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받아 든 책 <나비의 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게 만들었던, 울컥울컥 코 끝이 찡했던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벌써 8년 전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데는 까닭이 있다. 오늘 강연은 그 나비 축제의 핵심 프로듀서였던 전 함평군수이자 현 산림조합중앙회장인 이석형 회장이 주인공 이라서다.


“남자 나이 40 전후가 되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즉 중간 평가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제 나이 서른 아홉. 당시 저는 KBS에서 교양 PD를 하고 있었는데요. KBS에서 계속 일 하면 정년 전에 사장 한번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럼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분야, 정치를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말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짜 정치를 하려면 내가 가장 잘 아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향인 함평의 지방 단체장, 함평군수부터 도전했던 이유다. 고향이 함평인데다 함평농고를 졸업하였기에 농업과 농사꾼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터다. 농사꾼이 월급쟁이보다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 층에 의해 모든 것들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던 정치판은 그에게 한 뼘 자리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가진 거라곤 젊은 열정과 패기뿐. 튼튼한 두 발과 배짱으로 함평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냉담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이석형 회장은 그렇게 함평군수가 되었다. 


“막상 당선되고 보니 내 고향이 이렇게나 못 살았나 싶어 깜작 놀랐습니다. 군수가 되고 인수인계를 받아보니 연간 관광객 수가 불과 18만 5천에, 전국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고, 천연자원, 관광자원, 산업자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곳이 제 고향 함평이더군요. 잠이 안 왔습니다.”


당시 함평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고 절망적이었다. 여느 시골이라면  하나둘씩 있던, 그 흔한 산이나 계곡도 없었다. 강진의 다산 정약용, 해남의 고산 윤선도, 담양의 송강 정철, 나주의 삼봉 전도전, 흑산도의 정약전 등 수 많은 위인들이 귀양도 많이 왔던 남도 지방 이건만 관광마케팅에 활용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나 유적지도 함평엔 전무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틸 일이다. 농업에 문화를 접목시켜 농외소득을 창출해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른 지자체에서 성공한 사업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대표적인 특산물이나 문화유산도 없던 함평이었기에 그 어느 지자체보다도 ‘창조경영’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던 중에 찾아낸 아이템이 바로 ‘나비’였다. 


“나비가 떠올랐습니다. 방송국 PD 시절 교양 프로그램을 맡았었기에 ‘나비’라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나름 확신이 들었지요. 단순한 농사 개념이 아니라 문화, 관광, 환경의 상징으로 나비의 매력이 크다 생각했습니다. 농업을 영어로 애그리컬처라고 하잖아요. 애그리가 땅이고 컬처가 문화이니 애그리컬처, 즉 농업은 땅의 문화란 의미입니다. 과거의 농업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양적인 개념이었다면 현대의 농업은 품질의 개념을 지나 문화와 스토리 개념을 녹여 넣어 승부해야 합니다. 친환경 생산이 각광받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나비는 친환경, 고품질, 문화적 농업의 이미지를 두루 관통하는 최적의 아이템이었습니다.”


마침 교육에 있어서도 교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생태 체험 학습의 트렌드가 생겨나던 참이었다. 나비를 통한 생태 학습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이석형 회장은 그 길로 나비 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나비축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보수적인 성향의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복지부동, 땅에 납작 엎드려 움직이질 않았다. 경험도 없는 젊은 군수의 가당찮은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석형 회장은 ‘혁신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으로 자신부터 움직이고 자신부터 실천했다. 수많은 반대가 계속 이어졌지만 뚝심 하나로 밀어붙여 98년 취임 후 10개월 만인 1999년 5월 5일, 결국 ‘나비축제’를 개막하기에 이른다.


문화콘텐츠로서의 ‘나비’에 대한 그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나비축제가 시작되자 50만 명의 관광객이 함평으로 몰려들었다. 전에 없던 활력이 함평에 생겨났다.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공직자와 주민들이 가능성을 확인하고 오히려 앞장서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생태체험 관광학습’을 온 관광객들의 만족도 또한 점점 높아졌다.


“풀어놓은 닭과 돼지 등 가축 잡기 체험, 논에서 미꾸라지 잡기 대회 등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몰입해서 즐기다 보면 아이디어는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1964년만 해도 14만의 인구를 보유했던 함평이었다. 하지만 4만으로 쪼그라든 함평 인구. 이 쇠락의 공간에서 열린 첫 번째 나비축제가 성공으로 이어지니 뭔가 되려나 보다, 희망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석형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만족할 수없었다. 인력과 예산이 든든한 다른 지자체들이 언제든 ‘나비’를 빼앗아 갈 수 있는 상황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두 번째 나비축제가 열리던 2000년 4월 20일,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 녹지원 잔디밭에서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지구의 날’ 행사에서 나비 2,000마리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건 그래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2005년에는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비 엑스포를 기획하여 승인을 받았다. 이어 2008년, 세계 모든 곤충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호텔 하나 없는 함평에서 민박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나비•곤충 엑스포’를 치러냈다. 세계 곤충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행사는 첫 해 유료관광객만 126만 명, 입장료 94억 원, 부채 0원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이후 나비는 누가 뭐래도 함평의 것이 되었다. ‘나비’하면 ‘함평’이었고 ‘함평’하면 ‘나비’였다.


“2008년 나비•곤충 엑스포 할 때 말입니다. 홍보할 때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딱정벌레처럼 생긴 외제차 뉴비틀을 활용한 거였는데요. 차번호도 2008로 하고 외관도 딱정벌레처럼 페인트 칠을 해서 거리 여기저기를 다니며 홍보에 잘 활용했지요.” 


홍보 목적으로 3,300만 원을 들여 산 차인데 시골 군수가 외제차 탄다고 여기저기서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역발상의 성공적 홍보 성과에 비난을 위한 비난은 이내  잦아들었다. 이석형 회장의 창조경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러분들,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요즘 골프로 한창 잘 나가는 전인지, 신지애, 이미향 선수. 이런 선수들이 어느 학교 나왔는지 아십니까? 모두 함평 골프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우리나라에 골프 고등학교란 게 있었나? 이석형 회장의 이야기에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농업이 인기가 없으니 농업계 고교였던 함평농고도 폐교 위기를 맞았단다. 그 때 이석형 회장 귀에 들려온 소식하나. 제주농고가 골프과를 만들어 잘 된다더라는 소식이었다. 그걸 벤치마킹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비슷하게 따라가서는 결코 판을 뒤집을 수가 없다는 건 경영마케팅에서는 주지의 사실. 함평농고에 골프과를 신설한 게 아니라 함평농고를 아예 골프고등학교로 바꾼 이유다. 함평골프고등학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후 함평골프고등학교는 세계를 주름잡는 골프 선수들과 전국 골프장의 조경과 운영을 책임지는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함평농고를 졸업한 동네 수많은 졸업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혁신은 늘 어렵다.  

     

이석형 회장의 강연은 이내 황금박쥐 이야기로 이어졌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왜 우리 함평에는 관광상품이라 할 만한 게 이렇게도 없을까, 고민하던 시점이었는데요. 이게 웬걸, 99년 1월, 어느 폐광에서 황금박쥐가 발견된 겁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황금박쥐가 60여 마리 발견된 거지요. 이걸 함평의 상징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박쥐가 더러운 데 사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함평은 청정지역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겠다 싶었지요. 주민들에게 자긍심도 주면서 이익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바로 황금박쥐 황금 조형물이었습니다.”


2003년 금이 돈당 4만 원할 때였다. 중국 경제가 한창 성장하고 있으니 비단 중국 관광객 유치 차원이 아니더라도 금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금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금 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석형 회장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금으로 문화상품을 만드는 건데 이보다 더 좋은 창조경영 사례가 어디 있겠나 싶었단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반대는 넘쳐났다. 그 새 금 값은 돈당 6만 원으로 뛰었다. 정부와 의원들을 만나 기나긴 설득 끝에 30억 원을  투자받아 162kg짜리 대형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지금 이 모형은 함평의 대표적인 관광문화상품인 동시에 함평에 돈을 벌어주는 ‘출장 대여’ 상품이 되었다. 2016년 현재 금 값이 돈당 20만 원에 육박하니 투자로서도 성공한 셈이다.

     

그의 또 다른 사업 계획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 건물을 함평에 똑같이 건립하는 것이었다. 상하이,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금전적 기여를 하고 힘을 보탠 일강 김철 선생이 함평 출신이었기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기념관 건립 추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투자를 얻지 못해 사업은 난관에 부닥쳤다. 하지만 이석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관련 예산 권한을 갖고 있던 보훈처 행사를 통해 함평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야겠다 생각했다. 기회는 만드는 것이라 했다. 해마다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는 호국영령 추념식이 열린다. 이 행사에서 비둘기 대신 함평 나비 5천 마리를 날려 보내는 ‘호국 나비 날리기’ 행사를 기획•진행해 추념식에 참가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비들이 강 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생화가 꽂혀있는 묘역으로 날아가 그 위에서 너울너울 날갯짓하는 모습이 마치 영혼이 되살아난 것처럼 보여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행사 이후 보훈처의 태도가 바뀌었다. 이 회장은 함평 임시정부청사 기념관 설립을 위한 예산 10억 원을 유치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와 똑같은 모습의 ‘임시정부청사 기념관’이 그렇게 또 함평에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제가 뱀  장사했던 이야기 들려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함평군수 하면서 안 해 본 게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뱀 장사입니다. 어느 날 뉴스를 보다가 딱 무릎을 쳤지요. 2004년 4월 중순이었는데요. 신안 앞바다에서 뱀을 밀수하다 걸렸다는 뉴스가 난 겁니다. 그 때 생각했습니다. 나비  축제할 때 뱀을 같이 보여주면 어떨까? 그래서 바로 검찰을 찾아갔지요. 압수한 뱀 좀 빌려 달라 했습니다. 나비 축제할 때 별도 전시관을 만들어 뱀도 함께 보여주면 학생들에게도 산 교육이 될 거다 설득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나비 축제 때 뱀 전시도 성공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행사를 치르고 나니 뱀의 경제적 가치가 보이기 시작하더란다. 이른바 ‘뱀의 경제학’이다. 먼저 세계 최대의 뱀 생태관을 만들면 돈이 되겠다 싶었다. 두 번째는 뱀 독을 활용한 신약 사업, 바이오테크놀로지 사업이었고 세 번째가 뱀 양식이었다. 몸에 좋다고 산에 있는 야생 뱀을 마구  잡아먹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차라리 뱀을 특수가축으로 입법화하여 길러서 먹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뱀은 먹이를 많이 먹지 않는데다 뱀의 허물과 배설물까지도 한약재로 쓴다 하니 버릴 게 없었다. 기력이 쇠한 노인들에게도 큰 힘 들어갈 필요 없는 뱀 양식은 적합한 일이란 판단이었다. 그렇게 뱀 생태관은 만들어졌지만 이석형 회장의 군수 임기 이후 새로운 군수가 취임하면서 나머지 사업들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지자체들도 콘텐츠 중심의 새로운 사업으로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창조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부르짖고 다닙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업에 스토리를 심자는 겁니다. 그게 우리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 확신합니다.” 


나비축제를 위시한 함평 성공의 모든 노하우를 체화하기에 90분간의 짧은 강연은 당연히 부족하다. 하지만 적어도 몇몇 키워드는 건질 수 있었다. 블루오션 창출, 리더의 열정, 긍정적인 마인드, 새로운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1999년 5월 5일부터 진행되었던 4일간의 제 1회 함평 나비축제는 관람객 60만 명에 2억의 경비, 63억의 수입을 기록하였는데, 2008년의 나비 축제 때는 관람객 127만 명, 230억의 수입을 기록하며 2008년 최우수 문화관광 축제로 선정되었다. 단지 나비 축제 외에도 다른  부대사업들과 함평 골프고등학교 등을 통해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함평은 이후 많은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냈다. 


오늘 이석형 회장의 강연을 듣고 나니 예전에 처음 접할 때와 달리 관심의 초점이 조금 바뀌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했기에 창조경영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걸 실천했기에 창조경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건은 실행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10년도 훌쩍 넘은 사례지만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명작 고전처럼 함평 이야기도 간만에 다시 꺼내놓으니 새삼 곱씹을 게 많다.


‘블루오션 전략’은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2004년 발표한 경영 전략이다. 경쟁자가 즐비한 피비린내 나는 레드오션이 아니라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을 만들라는 게 골자다. 전국에 산재한 워터파크와 각종 놀이공원, 관광지.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던 함평으로선 그들과의 싸움은 누가 보더라도 승산 없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나비를 앞세운 함평의 진격. 그야말로 진격의 함평! 역발상의 창의력과 도전정신, 열정과 패기. 나만의 푸른 바다는 그렇게 만드는 거였다. 함평 나비축제 이야기를 다룬 이석형 회장의 저서 <세상을 바꾸는 나비 효과>에 나오는 글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닫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함평의 나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함평군과 이석형 군수가 지금까지 세상으로 날려 보낸 나비는 약 150만 마리이다. 그 나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마 꽃들을 찾아 사방천지로 날아갔을 것이다. 나비들은 꽃들과 함께 수많은 씨앗들을 맺었을 게 틀림없다. 그 씨앗들은 희망의 씨앗, 긍정의 씨앗, 자신감의 씨앗, 기적의 씨앗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그 150만 마리의 나비가 날아가기 전보다 더 아름답게 변해 있을 것이다. 지금도 함평군과 이석형 군수는 밥도 지을 수 없고 국도 끓일 수 없다던 그 나비로 유무형의 기적을 일궈나가고 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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