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디지털&AI]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월요일 아침 8시 30분, 한 대기업 임원 회의실. 스크린에 ‘2026 중장기 전략’이 띄워져 있다. AI가 시장 데이터 10년 치를 분석해 도출해 낸 결과물이다. 논리는 정연하고, 리스크 분석은 촘촘하다. 성장 로드맵도 완벽하다.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대로 실행만 하면 되겠다.” 그때, CEO가 나직이 묻는다. “만약 경쟁사가 AI에게 똑같이 물어보면, 과연 다른 답이 나올까?”
순간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는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손에 쥔 이 완벽한 ‘정답’이, 실은 경쟁사 책상 위에도 똑같이 올라가 있을 ‘표준값’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날 이들이 목격한 것은 전략의 완성이 아니었다. 차별화의 실종이었다.
바야흐로 ‘지능의 평준화’ 시대다. 고도의 지적 능력이 전기나 수도처럼 저렴한 공공재가 되었다. 누구나 AI를 통해 평균 이상의 답을 순식간에 얻는다. 축복이자 재앙이다. 답이 흔해졌다는 것은, 시장에서 ‘정답’의 시가총액이 폭락했음을 의미해서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더 이상 경쟁우위가 될 수 없다는 얘기라서다.
여기서 벌어지는 치명적인 실수. 대다수 조직이 AI 도입의 목표를 오로지 ‘효율성’에 둔다. 하지만 AI 시대의 효율성은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다. 거대언어모델(LLM)은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싸한 ‘평균의 답’을 내놓는 데 최적화된 기계다. AI로 업무를 효율화할수록, 그 조직은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평범해질’ 위험에 처한다. 이른바 ‘자동화된 평범함’의 공포다.
그렇다면 이 평범함의 중력을 뿌리치고 솟아오를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해답은 ‘의도된 비효율’에 있다. 기계는 최적의 경로를 찾는다. 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최적화된 경로 밖, 데이터가 말리는 길을 굳이 가보는 무모함에서 탄생했다. 목적 없는 호기심,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엉뚱한 실험 같은 것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이를 ‘낭비’라 불렀다. 하지만 정답이 자동화된 시대, 이 낭비야말로 새로운 가치를 채굴할 수 있는 광맥이다.
이는 노동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한다. 성실함과 기능성은 이제 AI에게 넘겨라. 대신 '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단순히 놀고 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가?” 싶은 질문을 던지며, 기계가 내놓은 매끈한 정답에 고의로 흠집을 내자는 얘기다.
질문이 사라진 조직에서, 노동은 지루한 반복이다. 질문이 살아있는 조직에서, 노동은 탐험으로 진화한다. 이 탐험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조직은 아무리 값비싼 AI를 도입해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계가 가장 잘하는 ‘반복’의 영역에서 기계와 경쟁하는 꼴이라서다.
일의 본질이 바뀌면 AI 시대의 리더십 또한 바뀔 수밖에. 과거의 리더가 “이게 정답”이라고 외치는 사람이었다면, 미래의 리더는 AI가 쏟아내는 수만 가지 정답 앞에서 “이것은 우리 조직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라고 버릴 수 있는 철학자여야 한다.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업의 본질을 규정하는 결단. 답을 제시하는 권위 대신 “이 일의 본질적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힘. 즉 ‘생각의 깊이’가 리더의 격을 결정한다.
조직 구성의 원리도 재설계되어야 한다. 다양성은 더 이상 단순한 윤리적 구호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알고리즘 해킹 도구다. 비슷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만 모인 조직은 AI가 내놓은 ‘그럴싸한 평균값’에 쉽게 중독된다. 서로 다른 배경, 낯선 관점, 이질적인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 AI의 논리에 균열을 내야 한다. 그 충돌의 틈새에서 비로소 평균을 뛰어넘는 날카로운 ‘엣지(Edge)’가 벼려진다.
새해, 리더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AI 리포트와 혁신 계획서가 쌓인다. 그것들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그 완벽해 보이는 답들이 채우지 못하는 여백을 응시해야 한다.
“AI가 모든 답을 1초 만에 주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기술은 속도를 바꾼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질문이다. 효율적인 정답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엉뚱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