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PT에서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날카로움을 감추고 당황함을 유도하려는 그들의 질문 앞에 당당하기

by 장아무개

좋은(...우리는 우량이라고 말하지만) 클라이언트를 만나 매년 갱신 없이 신뢰와 믿음과 충성과 은혜 속에 계약을 이어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기획자는 연간 꽤 많은 경쟁PT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매년 반복되는 입찰, PT, 프로젝트 진행의 반복과 반복 속에 지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꽤 많은 보람을 얻을 수 있기도 한다. 그래서 에이전시에 계속 근무하는 것이겠지만. (물론 인하우스에 들어갈래?라고 묻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테다.)


지금이 두 번째로 몸 담고 있는 에이전시이니까, 30대 초반의 열정을 받쳤던 첫 번째 에이전시에서도 꽤 많은 PT를 진행했다. 당시엔 PT만 하면 체해서 끝나고 반드시 소화제를 먹어야 했던 심약함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똑같다. 회사의 매출이 왔다 갔다 하는 PT, 그것도 15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우리의 경쟁력과 창의성과 실행력과 탄탄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PT는 여전히 살 떨리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아무리 많이 해도 적응이 되지 않기도 하고.


지금도 매년 10번 이상의 경쟁PT에 참여하고 있다. 한 번 PT에 참여하기 위해서 1~2주 정도는 제안서 작성하느라 아이디어를 쏟아부어야 하고, 그걸 예쁘게 정리하기 위해서 야근도 꽤 많이 한다. 거기에 함께 제출해야 하는 증빙서류도 만만치 않아서 거의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제안서 작성하는 기계가 되어 버리는 기간이 된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피와 땀과 뇌세포를 투자해 만든 제안서이지만, 성공률은 절반 이하. 떨어질 때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대표에게 꼭 하게 된다. 그게 10번 이상 반복해야 한 해가 마무리된다. 여기까지가 에이전시에 근무하고 있는 기획자의 하소연이다. 물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따낸 이후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매우 많다. 그것도 매일.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볼 때마다 그저 헛웃음을 지을 뿐이다.



싸늘하다

날카로운 질문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PT는 대부분 10분~15분 정도의 발표시간과 10분 정도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구성된다. PT발표야 준비 해대로 열심히 읽다 보면 마무리 지을 수 있지만, 문제는 질의응답. 전체 프로젝트 중에서 절반 정도는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 이어가기에 김이 새기도 하지만, 절반 정도는 꽤나 날카로운(여기서 '날카로운'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섬세한 이라는 의미가 다분하다)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 이 프로젝트에 그 질문을 했었어야 했나 싶을 정도의 질문과 함께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는 질문도 가끔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분명 온라인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프로젝트인데 전반 사업 전략, 방향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어떻게 보완하겠느냐 라는 질문들. 그걸 알았다면 콘텐츠 말고 사업기획을 하고 있겠지.


초반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황했다. (이 문장은 이후에, 그러니까 조금은 익숙해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되겠다.) '내가 왜 그것까지 생각 못했을까?'라는 자아비판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앉아 버리는 탓에, 다른 생각을 할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이 난국을 어떻게든 헤쳐나가 회사 매출에 일조하겠다는 마음이었건만, 매출 하락 그래프가 눈 앞에 보이는 듯하더니 순간 백야가 찾아온 것처럼 눈 앞이 캄캄하다 못해 하얘지기까지 한다. 그렇다 너무 당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답변이 나올 수 없는 노릇. 모르는 부분까지 억지로 답변하려다 보니 중언부언, 심사위원은 결국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질문시간을 종료한다. 더 이상 들어도 나올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나라도 그러겠다. 이런 날일수록 PT가 끝난 이후에도 미련이 남는다. 머릿속에서 질문과 내가 제대로 해야 했을 답변이 떠나지 않는다.



모르는 걸 모른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는

매출 포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초반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만약 지금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테고 그럴 때를 대비해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세상은 너무나 좁아서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치 못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다분하니, 당연한 마인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넓더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쩔쩔 댔지만, 생각보다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다. 우와, 이 업계가 좁다고 말하고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러다 보니 다시 만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더불어 '어쩌라고?'라는 배짱도 늘었고.


결정적으로 매출에 대해 목메지 않으면 프로젝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출 그까짓 거 못하면 어때, 그까짓 거 돈 못 벌면 월급 안 오르는 거지 뭐..라는 '담대함'을 품는 순간, 어떤 질문 앞에서도 담대해졌다. (물론 사장님은 아니겠지만...) 말도 안 되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심사위원 앞에서 더 이상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됨을 알았다.


지금, 경쟁PT에서 나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들어온다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모른다'라고 답변한다.


정말 모르는데, 모르는 걸 애써 아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중언부언하는 것보다 깔끔하게 모른다라고 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말을 얼버무리는 경우가 더 신뢰가 떨어진다고 본다. 물론 심사위원 중에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최대한 정성껏, 심사숙고하여 답변을 해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도 답변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질문, 우리 회사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들어오면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모른다'라고 답변을 하면, 일부 심사위원 중에는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안 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참 못된 인간이다.) 본인의 날카로운 질문이 발표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거라 예상해겠지만, 당당하게 모른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다. 괘씸죄 항목으로 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겠다. 뭐,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모르는 건 '모른다'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지금 눈 앞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주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일 수 있겠지만, 눈을 조금만 높이 들면 다양한 기회가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기회를 모두 시도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꽤 많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니 경쟁PT 앞에서 당당해지면 좋겠다. 그 프로젝트 하나에 우리의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프로젝트의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눈 앞에 있는 심사위원,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갑이 되어버린 건 아니다. 아직 갑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갑은 나다. 그들은 간절히 우리가 발표에 참여해주길 원한 을의 입장인 거다.


매번 그러면 안 되겠지만, 무리한 질문, 과한 질문,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 앞에서 애써 답변을 하기 위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당당하게 '모른다'라고 말해보자. 처음이 쉽지, 한 번 저지르면 그 이후엔 걱정 안 해도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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