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조용하던 클라이언트 담당자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한 건 점심식사 후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12시 55분. 그 즉시 문제가 터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챔과 동시에 트리플A형 마인드를 간직하고 있는 나의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스믈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담당자의 메일 내용을 보니 회사 직원의 잘못으로 콘텐츠 내용에 일부 오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소셜 채널 콘텐츠 댓글에 관련하여 부정적인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는 것.
클라이언트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었고, 이를 본 순간 가슴이 덜컹한 건 어쩔 수 없는 새가슴의 영역이었던 것이고. 클라이언트 담당자는 계속해서 전화를 해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고 닦달을 하는데, 그 담당자 역시 윗 상사로부터 갈굼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 눈에 뻔히 보이는지라 뭐라 할 수도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담당자가 회사 대표님 메일 주소를 참조해, 대표님까지 이 사안을 인지한 상황. 트리플A의 소심함은 가뿐히 뛰어넘는 대표님으로부터 호출이 오기 10초 전. '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인가....' 라며 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순간 잠이 확 깨며, 이거 내 이야기인가?라고 속으로 물어본 사람들이라면 100% 에이전시(대행사)에 몸담고 있는 중일 것이다. 물론 가상의 상황이긴 하지만, 위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곳이 대행사다. 클라이언트 담당자로부터 알 수 없는 메일이 도착해 메일 수신함에 (1)이 표시되어 있거나, 갑자기 메신저로 'OO님' 달랑 이렇게 보내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는 상황에선 에이전시에 속해 있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쏟아져 나오고, 머리 모공으로 시작해 목과 등줄기로 이어지는 신체의 굴곡 부위에서는 식은땀이 쉬지 않고 흐른다.
분명 전후관계를 먼저 확인해야 할 시간.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더 불을 붙이는 상황이 더해지니, 바로 대표님의 추궁. 대부분의 경영자가 '무조건' 직원이 잘못한 상황을 전제하며 가차 없이 직원을 호출하고 닦달한다. 대표님의 입에서는 한 숨이 연신 터져 나오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봐야 하는 직원은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다면,
그 회사에 오래 있는 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회사 조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경영자와 직원. 너무 당연한 건가? 피고용인, 직원은 매월 들어오는 월급을 위해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근무를 한다. 스트레스에는 클라이언트로부터 계속되는 요구를 수렴해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일 같이 꺼내야 하며, 결과물의 진행상황도 체크해 정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언제나 스트레스를 폭탄처럼 안고 살아가기에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건, 그들을 조금 안쓰럽게 생각해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위의 상황이 클라이언트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생황이라면? 많은 경영자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직원들을 믿는다, 신뢰한다. 직원들 덕분이다." 하지만 위의 상황에서 직원을 닦달하는 경영자라면, 말은 그렇게 하나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즉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경영자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위와 같이 클라이언트의 항의가 들어온 상황에서, 하지만 '담당 직원이 실수한 경우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물론 대부분의 경영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지만.
17년간 피고용인으로 살아오면서, 경영자에게 언제나 바랐던 점은 '직원들을 믿어달라'는 거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그렇지 못한 모습에 실망해 퇴사를 하기도 했다.(생각해보니 거의 대부분의 퇴사 상황이 그렇다) 아직 경영자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경영자의 마인드를 100%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직원들을 향한 신뢰는 아쉬운 부분이다. 경영자든, 직원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고, 사람은 언제나 잘한 거 90보다 못한 거 10을 더 크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직원을 믿는다 하면서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직원의 신뢰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경영자와 직원 간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직원과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고 하지만, 그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자칫 친하게 지내려다 선을 넘는 경우엔 직원과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있다. 경영자는 언제나 외롭다. 외롭지만 경영자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직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위의 상황이 와도 얼굴도 자주 못 보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설마 직원이 클라이언트와 회사에 일부러 피해를 입히려고 그러지는 않았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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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경영자와 직원, 둘의 관계를 이야기했지만, 조직에서 경영자와 직원뿐만 아니라 팀장과 팀원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나 싶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먼저 손을 건내야 다른 사람 역시 손을 내밀고 함께 손을 맞잡을 수 있다. 먼저 신뢰를 던져주는 그런 선배, 팀장, 경영자로 살아보자. 우선,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