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향기를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묻거든,

by 장아무개

오바마,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세종대왕...

세상을 바꾼 위인을 꼽으라 하면 두 손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 주위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위인, 영웅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봐 왔고, 보고 있으며, 봐야 할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한 사람을 예로 들자면... '스티브 잡스'? 물론 실패, 좌절을 맛봐야 했던 시기도 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서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빛이 난다. 그를 위인이라 이야기 함에 있어 그 어느 누구도 반대의 변을 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흔적은 너무나 깊고 강렬하다. 비단 기술적인 분야의 선두자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인문학적 사고, 경영에 대한 날카로운 인사이트, 미래를 바라보는 예측력까지, 이미 세상을 따난 그이지만 그를 따라잡고 싶어 하는, 그러니까 그의 뒤를 이어 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아, 여기서 '위인이 되고자 함'의 의미는 세속적 명예욕과는 다르게 봤으면 좋겠다. 그것보다는 좀 더 선의의,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와 실행력으로 가득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영재발굴단'이라는 TV 방송이 있다. 아직은 어리지만 웬만한 성인조차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성취를 보여주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 역시 여물지 않아 풋내가 나긴 하지만, 미래를 기대하라는 듯 '빛'을 뿜어 낸다. 지금까지 소개된 아이들 중에서 제2, 제3의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영재발굴단을 보는 주 시청자는 누구일까? 영재발굴단에 소개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TV를 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야 하는 일반적인, 어느 한 분야에서 어려서부터 특출한 역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영재발굴단은 일반적인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꿀 영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아이들은 너희와 다른 영역에서 잘 자라고 있으니 부러운 시선으로 응원만 해주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영재발굴단을 볼 때마다, 자신을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해 마냥 안타까운 눈빛으로 TV를 뚫어져라 바라봐야 하는 우리 아이가 안쓰럽다. 보통의 아이로 자라주어도 충분히 행복하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어도, 영재발굴단을 보며 부러움을 쌓아온 아이의 마음을 돌리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세상을 바꿀 위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도 않고, 세상을 바꿀 능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꾼, 바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벌써부터 주입받고자 하는 바람도 없다.



"나는 그런 위인보다, 다음의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영재발굴단의 놀라운 아이들보다 다음의 사람이 되어 았으면 좋겠다."


출근 지하철의 창문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바람과 햇볕을 보고 감상에 젖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일상의 범상치 않음을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기억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바쁜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 나 역시 그런 상황 속에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옆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는 햇살의 존재에 감탄하며 잠시나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이면 좋겠다.


피곤에 지쳐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잠들어 고요함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는 한 밤을 지나, 동이 터오기 바로 직전의 촉촉함의 기척에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고요함으로 팽배한 그 시간과 공간으로 뭄을 열고 들어가, 잠든 동안 비어낸 생각의 틈새를 고요함으로 차곡차곡 메워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슬그머니 밝아오는 보라색 새벽의 흔적을 따라 눈길을 돌리고, 고요함과 상서로움이 서로 혼재하는 그 시공간의 일부분이 기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표정에 기분이 그대로 묻어나는, 솔직하다 못해 바보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덕목으로 '얼굴에 자신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교육을 받는 상황에서도, 순진하게 웃음을 흘리며, 바보처럼 싫다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감정의 흐름을 억지로 막아 쌓이고 쌓이다 한 번에 터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감정에 충실하고, 그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얼굴에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정점에 서기 위해 때로는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나 자신을 속여 나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는 결말을 맞이 하지 않도록, 그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의 시간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면, 과감히 세상을 포기하는 사람, 삶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대의보다는 소수의 그러니까 나를 중심으로 몇 안 되는 관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군자', '지자', '덕자'라 불리며 묘비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애를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보다는, 나에게 솔직하고, 가족에게 화목한 걸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세상을 바꿔라 강요하지 않건만, 스스로의 강박에 휩싸여 그 보다 더 많은, 넓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코스모스 밭 한가운데 우똑 솟아 있는 해바라기에 다가가기 위해 주변의 코스모스를 밟아 버리는 불상사를 만들어내지 않고, 모든 코스모스 하나하나가 소중한 존재임을 마음속에 잊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존재의 향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지만, 뭐 특출 나게 해내는 것 없지만, 보통의 사람으로 태어나 보통의 삶을 살다 머지않아 보통의 인간으로 생을 마감해야 할지라도, 지금까지 이야기 한 그런 사람이 되어, 나 스스로의 존재를 지켜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향기를 애써 뿌리려 하지 않아도 되니, 주변에 물들지 않고, 주변에 묻히지 않고, 주변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향기를 간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둘째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거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질문인데, 그 순간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 가는 건 느끼지만, 몇 살까지 살고 싶다 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나이가 되기까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행복할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아주 작은 대답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서 없이 글을 썼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의 방향성을 내가 정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억지로 뭔가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보다, 아주 희미하게 흔적을 남겨보겠다는 야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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