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유통기한

by 장아무개

세상에 영원한 것이 하나 있다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아닐까?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이 글귀를 만난 순간 머릿속으로 손뼉을 탁! 하니 마주치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니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아니 우주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진리가 아닌가 싶었다. 어찌 보면 인간이 사라져도 공기 속에 자리 잡은 우리의 흔적, 언어는 영원히 남아 언젠가는 이를 발견한 어떤 존재에 의해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되는 건 아닐까? 태초의 존재의 흔적을 지금 인간이 찾아내는 것처럼.


사람은(아니다, '나'라는 존재로 한정시켜야 함이 옳다) 참으로 어리석게 태어나면서 철이 들 때까지(철이 언제 들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자신의 죽음, 수명이 다함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막 태어나서는 죽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해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고, 머리가 굵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인식을 시작할 즈음에서는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간다. 인생의 완숙기에 접어들어 주변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의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지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젊음을, 어리석음을 반성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저 서서히 때로는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을 겉으로는 애써 당당한 척 받아들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 뿐.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니 쓸데없이 우울해진다.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존경스러울 뿐이다.


우주의 시간과 은하의 시간과 태양계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과 인류의 시간과 한 개의 시간을 비교한 자료들이 꽤 많다. 물론 시간보다는 공간, 규모의 개념으로 접근한 자료들이 많지만, 이를 빗대어 보면 한 개인의 시간이 우주의 시간에 비해 얼마나 짧은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평소에는 나 혼자만의 세상인 듯, 나만을 위한 영원의 시간인 듯,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의미다. 거대한 존재와 시간 앞에 한 없이 겸손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우주보다 거대한 욕심을 품은 인간에게는 그게 참 어려운가 보다.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한 없이 확장하려는 걸 보면 말이다.



'아홉 번의 일'을 읽으며 나의 쓸모와 쓸모의 유통기한에 대해 고민 해보게 됐다.


우주의 거대함에 비해 너무나 비루한 시간을 '영위'하는 인간 이건만, 한정된 인간의 시간 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쓸모를 증명하고, 자신의 쓸모를 영원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을 때부터 조직의 삶에 익숙해진 나는, 조직을 벗어나는 걸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렇게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대리에서 과장이 되며, 과장에서 본부장이 된 지금, 과연 쓸모는 영원한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쓸모', 지금까지 영원할 줄만 알았던 나의 쓸모는 영원하지 않다.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으며, 그 유통기한의 남은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음을 너무나 자주 깨닫게 된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친구들의 문제가 아니며,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환경의 문제 또한 아니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소비해버린 시간으로 인해 '나'라는 인간의 존재가 소진되었음을 느낀다. '소진'되어 버린 나는 더 이상 쓸모 있는 인간, 조직원, 개인이 될 수 없으며, 서서히 내리막길로 다가서고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어찌 보면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쓸모의 증명'을 위해 소비한 시간 속에서, 나는 조직을 벗어날 수는 없는 조직의 한 부품이 되어버렸고,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꾸며, 당첨될 가능성이 전무한 로또를 구입한다. 이를 반복하는 사이 나를 관통하는 시간은 과거와 똑같이 하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 내가 가진 쓸모가 닳고 닳아 더 이상 쓸모로써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때가 왔을 때, 거울을 보며 늘어난 흰머리를 걱정하게 되려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스스로 쓸모의 한계를 깨닫고, 내리막길로 접어든 후에 후회하기보다 그전에 스스로 물러서라는 의미일 테다. 내가 가진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지 못한 채 젊음을 보내고, 유통기한이 있는지 모른 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열정을 태웠으며, 앞으로 얼마 남은 시간 동안 조직에서 쓸모를 근근이 이어가길 희망하는 나...가 될까 두려워 잠에서 깨고 다시 잠 못 드는 하루를 반복한다. 도대체 내가 박수를 받을 때는 언제고, 떠나야 할 때는 언제일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자신의 쓸모를 수명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 영원할 거라 믿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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