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을 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by 장아무개

직장생활을 거의 20년 정도 하다 보니 관리자라는 직책을 받은 지 꽤 됐다. 조직에서 관리자가 되었다는 말은, 책임은 커졌지만 그만큼 실무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해 줄 테니 조직 관리에 더 몰두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너무나 순진하게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조직의 모습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그렇다. 이 말인즉슨, 현실의 조직은, 특히나 전체 직장인의 99%가 몸을 담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관리자는 실무도 변함없이 해야 하지만, 조직 관리, 여기에 회사의 매출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아, 매출은 모르겠고 회사가 망하지 않기 위해 유지하거나, 직원의 월급을 끊이지 않고 주기 위해 프로젝트를 얼마나 더 따와야 하고, 더 따기 위해 제안서를 몇 번 더 작성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역할이지 않겠나 싶다. 덕분에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이 고민이 가실 겨를이 없으며, 때때로 또는 자주 밤잠을 설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과 실행의 한 편에서는 여전히 실무, 클라이언트를 상대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획을 하고 실제 제작에 참여도 하고, 피드백도 받아야 하는 실무의 역할도 계속하는 중이다. 작은 대행사에서 관리자의 역할이란, 참 힘들고 그러다 보니 지치는 경우가 많다.


부쩍 '지쳤다'는 말을 참 자주 내뱉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쓴 '쓸모의 유통기한'.... 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부분일까 싶은데,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그에 맞춰 나의 외적인 부분도 함께 늙어가고 퇴화되어 가건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아니 애써 안정하지 않으려는 발버둥 덕분에 몸이 더 혹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이제는 늙었으니 10년 전처럼 해서는 병이 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것. 나의 인생에서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운 한 문장이 아닐까. 덕분에 입에서 지쳤다 라는 말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뱉게 된다.


아침부터 저마다 하나쯤 사연을 가지고 있을 법한 표정으로,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직장이라는 생계를 위한 공간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지하철을 탄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한 객채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범위를 급속히 넘어서는 바람에 객차의 인구밀도가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그 상태로 한참을 가야 하건만, 그 누구도 입 밖으로 이에 대한 불평 따위를 내뱉지 않는다. 객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공감대-그러니까 모두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다는- 안에서, 불평을 내뱉는 순간 배제될 것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물론 나 역시 그렇다. 혹여나 이 그룹에서 배제될까 봐 흔들리는 손잡이를 꼭 잡고 흔들리지 않으려 하체에 힘을 준다. 그럴 때마다 발끝에 피로가 쌓이고 쌓인다. 발을 털어내고 싶지만, 꽉 채운 객차 안에서는 최소한의 행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포화 상태의 지하철을 경험하며 쌓인 피로를 발끝으로 털어내며 털래털래 계단을 올라 지하철 역사를 벗아나는 순간은 잠깐이나마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포화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객차를 해방했다는 최소한의 해방감만으로도 만족감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해방감에서 시작한 만족감의 원인이 매일 아침 반복되는 객차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단순한 원인이 아니라, 언제나 해답을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아주 크고 깊은 문제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해 냈을 때의 해방감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는 유난히 따뜻해 눈 한 번 볼 수 없는 겨울이지만, 그럼에도 애써 발끝에서 털어내지 못한 피로를 지워주는 차가운 바람이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 끝에 다다를 즈음이 되면, 겨울임을 알려주는 우중충한 하늘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게 된다. 꾸물대는 하늘은 나에게 뭔가를 전해주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걸어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삶의 무게를 다 털어내지 못한 아침,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우물대는 하늘을 향해 한 가지 소원을 빌어보고 싶다. 발끝에서 미쳐 소화해내지 못하고 피로가 매달려 있을 땐, 하얀 눈으로 남은 피로를 담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보송한 감촉의 포근한 눈. 발끝에서 시작된 피로의 잔재가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아 발 전체로 찌르르한 통증을 전해줄 때, 발바작에서 허벅지까지 푹 잠겨버리는 폭설이 내려, 그 포근함에 몸과 마음을 의지했으면 좋겠다 라고. 그러니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객차를 벗어나고 지하로 들어선 만큼 지구의 인력을 털어내 드디어 차가운 공기를 맞을 수 있는 역사 출구에 다다랐을 때, 하얀 눈이 눈 앞에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 수록 눈이 싫어진다는데, 여전히 눈을 좋아하고, 눈을 기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하얀 눈이 거리의 터럭을 감춰내어 순백의 거리로 재탄생시켜 낼 때, 그곳에 피로가 남은 발끝을 슬그머니 들이밀어 주면, 피로는 떨어내고 눈이 가진 태초의 포근함이 발끝으로 옮겨와 주길.


지쳤을 땐,

미처 피로를 털어내지지 못했을 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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