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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Apr 21. 2020

인생의 '답'을 구해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답이 없기에 인생이 재미있는 거 아니겠는가 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부럽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정답에 거의 근접한 인생을 살아왔다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간이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인생의 정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지구 상에 70억 이상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만, 어쩌면 인생의 정답은 70억 개를 훌쩍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정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것일 수도 있고요. 


혹자는 '정답'을 뭐하러 찾느냐 반문합니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현재의 활동이 정답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니 애써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고민과 걱정도 덜어 놓고, 현재 가장 잘할 수 있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정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참으로 어려운 '제안'임이 분명합니다. 어찌 됐든,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저에게는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이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욕심만 부린다고 해서 그들이 될 수 없는 것이겠죠. 결국,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나를 정확히 깨닫는 것입니다. 


머릿속에는 언제나 '답을 향한 갈망'이 가득합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답'을 정확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정답이 딱 제시되는 4시 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의 답이나, 0, 1, -1 중의 하나만 고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주관식 문제의 답과 같은 유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단순 명료한 정답을 추구하지만, 정작 인생의 정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추구했던 답은 진정한 답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나'에게 답을 구한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산책을 하며 깨달은 한 가지는, 답을 누구에게 요청했나 라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은 오로지 내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이 수동형, 다시 말해 타인에 의해 결정되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답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풀지 못하니 남이 답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답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겠지만, 4지 선다 문제에서 하나만 골라주길, 내가 선택하지 못해서, 언제나 바라고 있기만 합니다. 


내가 나에게 답을 구한 적이 있었나?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답을 구한다는 것, 그것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답을 구한다는 것은 나의 인생을 슬그머니 타인의 방향에서 나의 방향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아닐까 라는. 세상에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답을 구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름을 알린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거나 잠시 대화를 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깊이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반성을 합니다. 이 나이 먹도록 뭐했나. 스스로에게 답을 구한 사람은 자신의 영역이 곤고합니다. 남이 범접하지 못한 그들만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느껴집니다. 


지금부터라도 나와 대화를 시작하고, 

나에게 인생의 답을 구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산책이 저에겐 정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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