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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Feb 19. 2019

[소.아.탈] 두 번째, 퇴근길에 뛰지 않기

퇴근시간입니다.


하루 8시간을 꼬박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자료를 수집하고, 모니터를 보며 자료를 작성하고, 모니터를 보며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다 보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것인지라, 저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겠죠. 주관적인 시각과 경험에 의거한 글이기에 이렇게 쓴 것일 뿐입니다.) 15년 이상을 직장인으로 살아오며 그 일 수 만큼 퇴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직장인이라는 삶이 끝나려면 앞으로 몇 번의 퇴근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네, 참 다행입니다.


저의 퇴근길은 꽤 깁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1시간 반 정도.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 정도 되겠네요.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생각하고 싶지만,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서만큼은 '익숙'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문구를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잘 만들었습니다. 뭔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무실처럼 활기차가 업무를 수행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퇴근을 하여 활기차게 가족과 식사를 하고, 남은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에게 환상은 실현 가능하다는 최면을 거는 마법의 문장입니다. 시스템에서 탈출하지 않는 이상, 저녁이 있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중산층 이하를 살아가는 16년 차 직장인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입니다.


1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1시간 반. 주위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저와 같은 방향으로, 저 보다 빠른 속도로 걸어갑니다. 뛰어갑니다. 날아갑니다. 딱히 퇴근해서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퇴근이라는 맹목적인 환상을 가진 직장인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습관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뜁니다. 누구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옆 사람이 뛰어가니 나도 덩달아 뜁니다. 이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뛰어서 도착한 곳에는 비어있는 플랫폼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뛰어갑니다.


서두릅니다.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해지는 시간에 '편리함'으로 다가오지만 마음속에 '조급함'만을 전달해줄 뿐인 전광판을 보며 발걸음을 빨리 합니다. 보이 현재 역에 타야 할 전철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보입니다.




그냥 보내 봅니다.


왜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제치고 뛰어가다 보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는 1등 빼고는 모두 어떤 사람(또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앞서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닙니다. 그렇게 훈련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뛰어갑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두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춰봅니다. 밝은 빛을 내며 우리를 서두르게 하는 '도착'이라는 전광판의 단어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바라봅니다. 그 새 도착했던 전철은 나를 버리고 출발해 버립니다. 아니, 내가 외면한 지하철은 자리에 없고, 상쾌한 공기로 가득한 빈 플랫폼이 나를 반겨줍니다. 비어있건만, 비어있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제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겠죠.


지금 도착하는 전철을 타면 5분, 10분 더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일부러 놓쳐 봅니다. 빈 공간의 상쾌함을 느껴 봅니다. 빼곡히 사람이 들어찬 지하철과 한 몸이 되어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험입니다.


이렇게 두 번째 일탈이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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