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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Feb 15. 2019

[소.아.탈] 첫 번째, 눈 위에 발자국 내기

앗싸, 내가 1등이다!!

아침 알림 소리에 겨우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날은 흐린데 환한 것이 이상한 느낌이 스쳤습니다.


'눈 인가?'


눈을 참 좋아했더랬습니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환상적이었는지. 남들과 다르게 군대에서도 눈을 좋아했고요. 손이 꽁꽁 얼도록 눈을 굴려 제 키보다 큰 눈사람도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친구들과 눈싸움했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요. 건조한 눈이 내린 날이면 아무리 뭉쳐도 흩어져 버리는 눈을 보며 얼마나 야속해했는지. 눈은 많이 왔지만, 친구들과 눈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 풀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넘어 눈을 떠보니 눈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 쌓인 아침 출근 길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많이 다녀 눈이 덜 쌓인 곳으로만 골라 걸었습니다. 신발에 눈이 달라 붙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축하고 차갑고 발이 시렵고. 눈이 아무리 몰아쳐도 하루 중 눈 뜨고 지내는 시간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낸 게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토록 반가워했던 '눈'에 무감각해졌나봅니다.


아침에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눈이 덜 쌓인 곳을 골라 밟다가 한 쪽에 사람이 손길, 발길이 아직 닿지 않는 영역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하얀 눈송이가 어찌나 고요하게 쌓여 있는지. 눈 위에 첫 번째의 흔적을 남겨보고 싶어졌습니다. 출근시간에 쫓겨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 시간이었지만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눈이 쌓인 그 영역을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어떠한 발길도 닿지 않는 그 영역에 발자국 하나를 살며시 남겨봅니다. 어느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두근, 무슨 잘 못 지은 것 마냥 두리번 두리번. 이토록 작은 흔적 하나 남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탓입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 중에 아주 작은 흔적을 남겼을 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좋았는지요. 


소심하지만 아찔한 일탈, 첫 번째가 그렇게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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