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의 노래 중에 '일탈'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 전체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지 말고 일탈을 해보자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불어 경쾌한 멜로디까지. 듣고 있노라면 가사대로 하려고 하는 몸과 마음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할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 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위 문장만 보면 미친놈이 되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갑니다. 지방 출장을 가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부산이나 여수행 기차로 갈아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니.
언제나 '일탈'이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발현하지 못합니다. 이게 나의 삶입니다. 용기도 없고 기회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아왔더랬습니다. 일탈로 인한 변화로 인해 현재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심하지만 아찔한 일탈은 당장 큰 변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미세한 변화(변화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도 포함)로 사고의 여유를 가져보고자 하는 것이 소심하지만 아찔한 일탈의 목적입니다. 그로 인해 '쉼'이 나의 마음에 자리잡고, 싹을 틔워가길 희망합니다. 마흔 셋, 43, 불혹을 넘어서야 시도해보는 나의 발버둥입니다.
소심한 아찔한 일탈, 세 단어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심한 : 억지로 큰 변화를 시도해보려고 시도하지 말자는 첫 번째 제약이다. 지치지 말자.
- 아찔한 : 43년을 살아왔고, 16년을 시스템에 길들여 왔다. 미세한 시도 역시 나에겐 아찔한 경험이다.
- 일탈 : 격변, 탈피, 개화 등등의 결과를 기대하지 말자. 시도일 뿐.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여유영역을 만들어가자.
앞으로 어떤 시도가 있을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싶지 않고
시스템이 유지시켜주는 '근거없는 희망'에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온전히 나만의 시도일 뿐, 누구에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참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