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뜬 장님이 여기 있었네
'무탈'하게 살아왔다 라는 말은 내 인생에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보통의 중학교와 보통의 고등학교를 거쳐 무사히 보통의 대학을 졸업했다. 누구는 제대 후 1년을 쉬내, 2년 동안 어학연수를 가네 하는 동안에 바로 복학하는 뿌듯한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보통의 대학을 나와 들어갈 곳은 보통의 회사였다. 보통의 회사를 10여 년 다니면서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TV에서 소개하는 엄청난 사람들의 엄청난 인생사를 빗대어 보면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아왔구나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말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차별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인생과는 다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라고 속으로나마 외칠 수 있었던 그 '기준'은 나를 다르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다른 사람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하며 같은 퇴근길을 걸어 같은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다름 사람과 같은 걸음 속도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고, 다른 사람과 같은 시선처럼 나의 시선은 언제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이 오늘도 같은 사무실을 향하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이게 지금의 '나'다
너무 비참하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나만큼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라고 믿게끔 사회에 훈련되어 왔고, 조지오웰의 <1984>를 읽으며 경악했던 상황들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렇게 43년을 살아왔다. 아니 살아오고 있다.
지금에 와서 '난 다른 길을 갈거야!' 라고 외치며 사회 구조를 등지는 행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완전한 자유'를 되찾는 건 시간을 돌리는 것만큼 어려운(불가능한) 일이지만, 나의 '여유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여유 영역 : 마음과 신체의 여유로움을 가져갈 수 있는 행동, 활동, 소품 등으로 채워져 있는 나만의 영역
지금부터 여유 영역을 넓혀가는 '소심하지만 아찔한 일탈'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