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는 걸까?

이번 달에도 대출이자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by 장아무개

지금도 철없긴 마찬가지이지만, 더 철이 없었던 20대 초반에는 '빚'을 내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름 어렸던 시기인지라 대출이니, 이자이니, 이런 것들에 대한 개념이 서지 않았고, 드라마에서 대출을 많이 받아 고생하는 모습만 종종 볼 수 있었던 시절. 드라마에서 가족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아버지는, 그날 집에 들어오기 전 슈퍼에서 새우깡에 소주를 그렇게 마시며 대출의 불안을 이겨내셨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빚지고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믿기도 했습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결혼 전, 아니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빚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겠죠. 아이들이 태어나고, 좀 더 넓은 집을 필요로 하고, 더 안전한 차량을 고민하고, 더 나은 교육환경을 알아보면서 때로는 갑자기, 때로는 서서히 '빚'이 늘어났습니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순식간이라고.' 대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대출을 받았던 건, 결혼 준비와 함께 전셋집을 알아보면서 였습니다. 지금 빚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었건만, 은행에서 대출서류에 도장을 찍은 순간, 참으로 암담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습니다. 너무 어렸던 거죠. 그 이후 꾸준히 빚은 늘어갔지만, 바다에 물 한 바지 더 부어 넣는다고 해서 변화가 없다고 주변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감사한 건 빚에 흔들리지 않고 나름 '잘' 살아오고 있다는 것. 그래도 가끔, 아니 한 달에 한 번, 겨우 잊을만하면 다시 흔들리게 만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김없이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대출이자 문자가 도착했을 때.


어제만 해도 와이프와 캠핑장에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지, 어떤 텐트를 추가로 구매할지, 아직 가지도 않은 캠핑이지만, 그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등등 행복한 고민을 누렸고, 주위에서 아이들이 웃음과 소소한 참견이 덧붙어져 보통의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순간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나는 정말 행복하구나 라며 잠들었습니다.


그러다 아침 출근길에 대출이자 문자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대출이자 납기일이 도래했습니다. OO계좌로 OO원을 입금해주세요.' 지난달과 똑같은 문자 내용 이건만, 문자를 보는 순간 '심장의 덜컹거림'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아, 나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었지, 조금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빚의 수렁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지 라는 걱정의 반복 끝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내가 과연 이렇게 잘 살고 있어도, 행복을 누려도 되는 걸까?"


어제 느꼈던 행복은 간데없고, 문자를 받은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며 그동안 감춰져 있던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내가 느낀 행복은 사실 불안한 유리판 위에 세워진 불안한 건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와 같은 것 아닐까. 순식간에 행복의 무게를 불안의 무게가 뛰어넘어, 순간을 잠식합니다. 이번 달에도 월급의 많은 부분이 대출이자로 나가야 하는데, 캠핑이 뭐고, 여행이 뭐고, 맛있는 음식이 다 뭐람.

대출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내 가족이 대출을 받은 건 좀 더 나은 생활을 누리기 위한 자발적인 비용이기에, 대출이자 문자를 받았다고 칭얼대는 건, 여전히 어리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대출이자 문자가 온다고 해서 갑자기 빚쟁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니 너무 소심한 것 아니냐 라고 스스로 반문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 사고가 없다면 살아온 만큼은 충분히 살아가겠지만, 그럼에도 '잘' 사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를 누릴 수 있는지, 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숙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위인들은 이러한 저의 모습을 예견이라도 했던지, '지금의 순간을 즐겨라',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줍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마다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매월 대출이자 문자를 받을 때마다 심장이 덜컹이고, 불안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그 순간을 막을 순 없을 듯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안은 순간이며 아직까지 그 불안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참으로 희한한 건, 분명 어릴 적 내가 봤다면 '억'소리 나는 빚이 있음에도, 현재의 내가 무덤덤히 살아가고 있는 건, 어느새 이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환영의 또 다른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빚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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